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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빼기 3은 뭘까요?

LNCK 2019. 12. 29. 11:57

5 빼기 3은 뭘까요?          시78:70-72            이기남 목사

 

 

5 빼기 3은 뭘까요?

선생님! 퀴즈 하나 낼 테니 맞혀 보세요.”

초등학교 4학년인 한 꼬마가 수수께끼라며 갑자기 문제를 냈다.

5 빼기 3은 뭘까요?

선생님은 한참을 궁리했다.

별의별 생각을 다한 뒤에 글쎄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꼬마 녀석이 선생님은 바보예요. 이렇게 쉬운 것도 못 맞혀요

하며 깔깔 웃었다. 선생님이 알려 달라고 하니 과자를 주면 알려 주겠다고

해서 과자 한 봉지를 건네주었다.

 

굉장히 쉬워요. 5 빼기 32예요.”

선생님은 피식 웃음이 났다.

 

꼬마는 또 물었다. “그럼, 그 뜻은 무엇일까요?

 

! 이건 또 뭐야?혼자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녀석 하는 말이 걸작이다.

 

오해를 타인의 입장에서 세 번만 더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는 뜻이랍니다.”

순간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무릎을 쳤다. “맞아!

 

이후 어디에서 무슨 말을 듣든지, 어떤 사건을 보든지 ‘5 빼기 3’을 생각하게 됐다.

오해로 인해 얼마나 가슴 아파했던가? 오해로 인해 얼마나 많은 다툼이 있었던가?

 

오해는 어디서 올까? 이해하지 못함에서 오겠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왜일까? 내 입장에서만 생각해서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해할까?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되겠지.

 

누가 내게 욕을 할 때는 그럴 만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자.

이해가 되면 분노가 사라진다. 이해가 되면 내가 편해진다.

5 빼기 32! 삶을 새롭게 하는 커다란 힘을 가졌다.

 

2 더하기 2는 뭘까요?

꼬마는 신이 나서 퀴즈를 하나 더 냈다.

2 더하기 2는요?선생님은 가볍게 알아맞혔다.

4지 뭐니?

 

맞았어요. 그럼 그 뜻은요?하고 되묻는다.

또 한참을 궁리하다 모른다고 했더니, 그 꼬마는

이해하고 또 이해하는 게 사랑이래요!라고 말한 뒤 깔깔대며 뛰어간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해하고 또 이해하는 게 사랑이라.’

이것을 깨달으면 올여름 땀 흘리며 얻은 가장 큰 보람 중 하나일 것이다.

올 가을 여러분도 5 빼기 3으로 마음을 넓히고,

2 더하기 2로 멋진 사랑을 해보면 어떨까?

 

이런 폭넓은... 5-3=2, 2+2=4의 철학으로 살았던 사람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바로 다윗이다.

 

1. 인격과 실력을 둘 다 갖춘 다윗

다윗에게 사울은 왕이었다. 아버지였다. 그리고 원수였다.

다윗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 장애물이었다.

그 장애물이었던 사울이 드디어 길보아 전투에서 패하여 중상을 입고

자기 칼에 엎드려 80년 삶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난다.

 

사울이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이다. 사울은 다윗에게 스승이었다.

원수라는 모습으로, 정적이라는 모습으로 찾아온 스승이었다. 반면교사였다.

힘들고 어려운 상대였다. 피하고 싶은 상대였다. 그래서 도피했다.

그렇다고 사울이 다윗 곁을 쉽게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에게서 배워야 할 교훈을 터득했을 때, 사울은 다윗의 곁을 홀연히 떠나갔다.

어찌됐던 폭군 사울의 죽음은 이제 다윗의 기나긴 광야 생활,

도망자 생활의 끝을 의미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던 다윗의 도망자 생활은

이제 새로운 역사의 새벽을 위한 어둠이었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혹독한 광야,

고통스러운 인생의 겨울을 통해 하나님이 빚어내신 지도자 다윗.

 

성경 시편은 다윗의 균형 잡힌 리더십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한다.

다윗은 깨끗한 인격과 탁월한 실력으로 그의 백성들을 다스렸다.’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게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인격)으로 기르고

손의 공교함(실력)으로 지도하였도다.(78:70-72)

 

100점짜리 인생만 귀한 것이 아니다

그 집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나 백점 맞았어!

아들이 신나서 외치는데 엄마는 이렇게 물었다.

그래, 네 짝은 몇 점 맞았니?

 

그랬더니 백점 맞았다고 외치던 아들 목소리가 다소 줄어들었다.

걔도 백점 맞았어.’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문제가 쉬웠나 보구나.’

 

이것이 오늘날 한국 엘리트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치 교육의 현주소이다.

100점짜리 인생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100점을 맞아야 성공하고 출세하라는 법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80점짜리 인생도 귀하고, 90점짜리 인생도 귀하다. 부모가 생각을 바꾸어

먼저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그들을 그리로 인도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100점짜리 신앙만 귀한 것이 아니다.

80점짜리, 90점짜리 신앙도 귀하다. 100점짜리 신앙인만 일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십자가를 통째로 지는 것도 아니다.

믿음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은사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신다. 다양한 사람을 사용하신다.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전12:14, 18-20)

 

다윗을 따랐던 30인의 용사, 4백인, 6백인들도 모두 다윗 같은 백 점짜리 인생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각양각색,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한 몸을 이뤄 냈다.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머리가 되려고 하면 안 된다. 비록 머리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면 된다.

 

2. 원수를 사랑한 다윗... 예수님을 보는 듯...

다윗은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먼저 생각했다. 비록 원수였지만 기름 부음받은

왕 사울에게 손을 댄 아말렉의 병사를 그 자리에서 쳐서 죽인다.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하고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삼하1:14-15)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보고 진심으로 울었다. 드디어 원수가 죽었다.

그렇게 자신을 죽이려고 3천명의 군사를 동원했는데.

기나긴 도망자의 생활이 끝났는데. 모든 올무에서 해방됐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했던 원수 사울의

죽음을 보고 다윗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진정으로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

원수를 향한 사랑 때문에 흘린 값진 눈물이었다. 온 종일 금식했다.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삼하1:12)

 

원수를 위한 사랑 때문에 흘린 값진 눈물의 극치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이었다.

예수님은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주님은 눈물보다 더 귀한 피를 쏟으셨다. 원수를 살리기 위해 대신 피를 흘리셨다.

이것보다 더 값진 사랑의 피는 세상에 없다.

 

인물됨의 크기와 인격의 크기는 무엇을 위해 울며, 누구를 위해 눈물을 흘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대부분 믿음의 사람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울었다. 예수님이 위대하신 것은

죄인을 위해서, 원수를 위해서, 온 세상을 위해서 우셨기 때문이다.

 

3. 다윗은 조급하지 않았고, 용서로 포용해서 국민 통합을 이뤄 냄.

유다 왕이 된 다윗이 가장 먼저 실행한 일이 무엇인가?

사울 왕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지내 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용기와 선행

을 격려하고 칭찬한 일이다.

 

본문 5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가로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찌로다.”

 

야베스 사람들의 용기있는 선행을 보고 다윗은 굳게 다짐한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어둠의 역사를 끝내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하나님의 리더는, 용서의 사람이어야 한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사울의 저항세력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 저항세력의 중심에 아브넬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사울의 군대장관을 지냈던 아브넬,

그러니까 사울의 장군들 중 최고 우두머리였다. 그는 사울이 죽자마자,

즉시 사울의 남은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하고

북쪽 이스라엘의 사울의 남은 잔당들을 모아 다윗을 대적하려고 준비한다.

이윽고 다윗은 남쪽 유다 지파의 추대를 받아 헤브론에서 왕으로 즉위한다.

 

사울의 남은 잔당들이 세운 왕국과의 통일 전쟁으로 7년 반이나 되는 세월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도망자 생활까지 합치면 도합 16년이나 되는

기나긴 세월을 하나님을 믿고 기다렸던 것이다.

 

여기서 다윗이 얼마나 놀라운 인내심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힘든 광야 생활을 끝내고 이제 사울이 죽어 왕이 되는가

싶었는데, 왜 또 이렇게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하나?하면서

역정이라도 낼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결코 조급하지 않는다.

 

성공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성공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믿음의 사람 죠지 뮬러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결코 하나님을 앞서가려 하지 말라. 결코 성령을 앞서가려 하지 말라.

결코 기도를 앞서가려 하지 말라.’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기 전에 헤브론에서 남쪽 유다를 먼저 다스리는

왕으로 7년 남짓을 보내야 했던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다윗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성경은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3:1)라고 기록하고 있다.

 

악인은 흥한 것 같지만 가만히 두어도 점점 쇠퇴하게 되어 있다.

결국 아브넬은 다윗에게 항복하고 만다. 과연 다윗은 큰 인물이었다.

 

용서의 사람답게 아브넬의 항복을 쾌히 승낙한다.

아브넬은 요압의 시기로 결국 암살당하고 만다. 이에 다윗은 요압을 크게 꾸짖고,

아브넬을 정중히 장사지내고 통곡하며 애도한다.

 

용서의 사람만이 새 시대를 여는 참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용서의 사람만이 무력으로는 절대 얻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존경을 얻어 낸다.

용서의 사람은 사람들을 감탄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감동시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잔혹하고 집요했던 사울과 그의 추종자들과의 기나긴 전쟁은 그렇게

다윗의 승리로 끝을 내린다.

그동안 사선을 넘나들며 수많은 부하들과 백성들이 천지가 떠나도록

승리의 고함을 지르고 있을 때, 다윗은 털썩 땅 위에 주저앉았다.

 

그의 뺨을 타고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의 입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찬양이 터져 나왔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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