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 성공의 성경적 이해 창39:2 펀글 정리
'형통'과 '성공'은 의미가 거의 같은 말이다.
영어로는 success 또는 prosperity이다.
◑1. 형통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창 39:2)
영어성경엔 형통을 성공prosperous/successful 으로 번역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렸지만 형통한 자가 되었다.
‘노예’와 ‘형통’은 서로 매치가 안 되는데....
성경에는 “원통”했다가 아니라, “형통”했다로 기록하고 있다.
노예의 ‘원통’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형통한 자라고 말한 이유는
→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므로’에 있었다.
형통이란,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 아니냐? → 이것이 형통의 시금석이다.
▲오늘 내 삶의 정황이 형통한가? 아니면 위기인가?
그 판단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
자기가 형통하다는 사람은...
돈 잘 벌고, 좋은 대학 다니고, 취직 잘 되고, 결혼 빨리 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여부에 관계없이, 세상적 기준으로 판단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형통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면
그는 형통한 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다.
자기는 진짜 형통하면서도.... ‘나는 늘 위기 속에 살고 있다’는 사람이 있고,
자기는 진짜 위기 가운데 살면서도.... ‘이만하면 나는 형통하다’고 미혹 받고 있다.
오늘 내가 가짜 형통속에 안주하고 있다면, 진짜 성경적 형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고난 속의 형통을 보여주라
기도해서 단순히 고난이 사라지는 것 - 그것이 축복이 아니다.
성도가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복이요, 형통이다 .
성도가 불치병을 앓으면, 객관적으로 보면, 분명히 어려운 고난의 상황이다.
그러나 그 고난의 과정 속에서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극복하고, 믿음으로 찬송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깊은 절절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을 보면서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고난을 저렇게 이겨 나가는 구나...’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볼 때, → 원통이 형통 된다.
많은 사람이 고난이 오면 피하는데 집중한다.
고난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데, 너무나 약해져 있다.
◑2. 성공
▲진정한 성공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온다
성도는 이 땅에서 백 배의 축복(성공)을 받지만, 그것은 핍박(십자가)과 겸하여 받는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희생의십자가)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성공)
핍박(고난의십자가)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막 10:29~30)
▲십자가를 빼고 성공을 외치면 → 성공주의(反십자가주의)에 치우친다.
"큰 일 해야 된다. 크게 성공해야 한다"고 자꾸 설교하면 안 된다.
"십자가 지라, 희생하는 삶을 살아라, 비록 작은 일이라도 충성해라"가 옳은데....
물론 성경에도 성공, 출세.... 이런 가르침이 있다. 그러나,
“큰 일하고 성공하라”는 설교에 “십자가를 통해서”가 빠지면 소위 “성공주의”가 된다.
늘 십자가를 집어넣을 수는 없더라도, 기본 사상적 배경에는 깔고 있어야 한다.
세상의 성공주의 사조는 십자가 빠진 성공(출세, 돈 잘 벌기)을 가르친다.
그러나 기독교는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성공)을 가르친다.
짧게 말하면 No Cross, No Crown !
▲그렇다고 꼭 잡초 같은 패배자 인생으로 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무엇으로 살든지,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희생하고 자원해서 십자가 지는 것이 복음이다.
좋은 대학 붙고, 상류층에 진입하고, 귀족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가 결코 아니다.
십자가를 뺀 성공과 비전을 외치면, 세상 철학이지, 기독교는 아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후에 커서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인다’(눅 13:19)
위 말씀에는 ‘땅에 떨어져 죽으면 = 십자가 후에)’ 라는 문귀가 생략되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와 병행해서 보라.
믿음만 있으면 -십자가 없이도- 열매 맺으리라는 고정관념이 생기면 안 된다.
적극적 사고방식이 이런 ‘십자가 빠진 성공’을 주장한다.
미국의 일부 티비 방송설교자들의 ‘믿음지상至上주의’도 좋지만,
십자가에 대한 강조점이 일년 내내 빠지면, 그것은 복음은 아니다.
우리의 추구 방향은 성공적 삶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성공적 열매는 자연히 뒤따라온다.
▶내가 만약 예수님이라면....
주로 팔레스틴에서 왔다 갔다 하기보다는 더 멀리 애굽과 소아시아 너머로
인도까지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가시적 성과를 위해 초대교회 건물 건축도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한 가지 일은 빼 먹고 나서
애교로 봐달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 십자가를 지는 일!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포커스는 십자가였다.
그래서 4복음서에는 이 십자가 사건을 부피적으로 1/3에서 1/2까지 지루하리만큼
길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요 12:23)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초점은 성공이 아니라 십자가이다.
굳이 성공을 말하고 싶다면(성공도 인생에 필요하다) ‘십자가를 통한 성공’이다.
아무리 (세속적 의미의) 성공이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라 할지라도
‘자기 부인이 없는 자아 성취’ 또는 ‘십자가 없는 성공’은
좌우로 치우친 극단적 복음(또는 비복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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