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보좌 창6:8, 히6:19 설교 정리
◑1. 은혜를 입은 사람 노아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8)
노아가 자기 시대에 귀한 사명자가 된 것은, 그의 열심 이전에 “은혜”가 있었다.
“노아의 때와 같으리라”고 했는데, 그래서 우리도 노아처럼 은혜 입음이 필요하다.
▲은혜의 보호가 필요한 현 시대
주변에 너무 많은 가정들이 이혼하는 슬픔을 겪고 있다.
부부지간도 은혜입음이 필요하다.
자녀들도 인터넷 중독, 학원 폭력, 마약(미국) 등에 24시간 노출되어 있다.
은혜 없이는 자녀들의 안전은 전혀 불가능하다.
내 안에도 타락한 본성이 남아 있다.
그런 가운데 노아처럼 우뚝 서려면 - 은혜로 보호받음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매일 주님께 드려야 한다.
◑2. 은혜의 보좌를 구약으로 풀어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1. 속죄의 자리
신약 히브리서의 ‘은혜의 보좌’throne of grace는 구약에서 ‘속죄소’를 뜻한다.
왜?
히브리서 문맥을 읽어보면, 대제사장이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갔는데,
구약에서 대제사장이 나아가는 목적지가 지성소의 속죄소이다.
속죄소(출25:20, mercy seat)는 지성소 안 법궤 덮개 위를 일컫는다.
두 그룹cherubim 천사의 양 날개 아래이기도 하다.
제사장이 일년에 한번씩 들어가 짐승의 피를 손가락에 묻혀 7번 뿌렸다.(레 16:14)
죄를 용서 받아야 은혜가 임한다.
오늘도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나가는 것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뜻이다.
*‘은혜의 보좌’를 시은소(施恩所, 베풀 시)로 칭하기도 한다(찬247장).
한글 성경에는 그냥 ‘은혜의 보좌’throne of grace로 번역되어 있다.
▲2. 하나님과 대면의 장소
1년 1차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피를 갖고 들어간다.
이 날, 하나님은 속죄소 두 그룹이 날개 사이에서 영광의 구름(쉐카이나) 사이에서
1년에 단 한 차례 당신의 모습을 영광의 빛 가운데 현현/임재해 보여 주신다.
신학자들은 예수님 변화산에서 변화된 모습을 속죄소의 쉐카이나와 동일시한다.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레 16:2)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출 30:6)
이와 같이 속죄소(은혜의 보좌)는 하나님과 영광스런 대면의 장소이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광중의 영광이다.
베드로가 변화산을 떠나기 싫었던 것처럼....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고(히4:16), 노아가 은혜를 입은 것은...하나님과의 대면이다.
◑3. 은혜의 보좌란?
▶1, 심판자리가 아니라는 뜻
성도들이 잘못했을 때, ‘너 이리 와봐' 해서 매 때리는 곳이 아니다.
심판의 보좌, 징계의 보좌가 아니다.
'은혜'란 -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다.
우리가 죄를 범한다든지 베드로처럼 넘어졌다든지 한다면 죄송스럽다.
또 어떨 때는 징계가 두렵기도 하다.
그러면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등을 돌리려고 할 때가 있다.
주님께 나오려고 하기보다 점점 더 멀어지려고 하는데,
우리가 이 은혜의 보좌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은혜의 보좌는 우리가 연약함이 있을 때,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오라고 말씀하시는데,
성경은, 마음을 열고 담대히 용기를 가지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자고 촉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구약시대 대제사장은 벌벌 떨면서 거기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제 주님은 우리에게 담대하게 나아오라고 하신다.
▶2. 연약한 자가 은혜를 받는 자리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굳은 결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늘 필요할 때마다 나가서 힘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늘 필요할 때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때를 따라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제사장에게 갔는가?
그들이 연약한 가운데 있을 때에 제사장에게 간 것이다.
우리도 우리 연약함이 있을 때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야 한다. 이것이 율법이 아닌, 은혜의 신앙생활이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신 길이다.
은혜의 보좌는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셔서, 지성소 깊은 곳에 들어가셔서
영혼의 닻을 지성소 깊은 곳에 내리시고 배를 움직이지 않게 하실 때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히 6:19)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앞에 나가셨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통해, 그 길을 통해,
나 같은 죄 지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은혜의 보좌는 하늘 높은 것도 아니고 어느 특정한 장소가 아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열어 놓으신 길을 따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 장소가 바로 은혜의 보좌이다.
▶4. 나의 은혜의 보좌
지성소에서(휘장은 없어졌음) 신령한 떡을 먹으며
신령한 기도의 향연을 피어 올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등대의 빛을 발하는 곳이 은혜의 보좌(히4:16) 앞이다.
가정에서도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곳이면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다.
한 밤중 외로움 속에서 고달픔을 안고 아픔을 호소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부르짖을 때, 여러분이 앉으신 그 침상이 여러분의 은혜의 보좌가 된다.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그리스도께 참회하고 가까이 나아갈 때
은혜의 보좌는 여러분 마음속에 있다. 부엌이나, 서점에나 장소에 상관없이...
그러나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크게 역사하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배를 통해 은혜 받는 처소가 바로 ‘은혜의 보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