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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출1:7~22 2014.08.31.
출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서론
출애굽기 1~13장의 무대는 애굽입니다. (14장부터는 광야 행진)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받고 있는 현장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고난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를 예표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아직 출애굽을 경험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는 하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여호수아 24:23절에 “여호수아가 가로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우상숭배도 많이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이전에 애굽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세상에서 우상숭배하고 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예표한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구원받기 이전에도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구원받기 이전에 여러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주신 경험을
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도 중학생 시절 대천 앞바다에서 수영을 배웠는데,
한참 수영을 하다 일어섰지만, 발이 닿지 않아 물을 잔뜩 먹고 겨우 살아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왜 죽지 않았는가를 생각해 볼 때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예수님을 믿기 전에 각종 질병에서 건져주신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기 때문에 살려주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많은 전도자들을 통해 복음을 듣게 하시고,
수차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권고하셨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건져내시는가?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창15:13~14절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대로 하나님은 400년 동안
그들로 애굽에 머무르게 할 것이나, 때가 되면 내가 애굽을 징치하고
너희를 건져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400년이라는 정해진 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400년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애굽에서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할 때, 그들은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출1:12절도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학대와 번성입니다.
◑1. 바로의 학대는 어떤 것인가?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8절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요셉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를 지식적으로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요셉에 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은 왕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왕조가 바뀌었죠. 셈족 왕조에서, 함족 왕조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히브리어로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의미가 있고,
‘모른다’는 것은 반대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요셉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가진 왕이 등장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바로는 그를 왜 미워하였을까요? 그것은 애굽의 정치 변화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이 총리를 할 때는 애굽의 왕조는 15, 16대 구왕조라고 불리는 힉소스 왕조였습니다.
힉소스 왕조는 셈족으로 유목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셈족이 애굽의 북쪽에 거주하고 있다가
살기가 어려워져서 발달된 전차와 마병부대를 이끌고 애굽을 쳐들어 와서 점령하게 된 것입니다.
셈족이 함족을 점령한 것입니다.
그래서 셈족이었던 요셉이 총리가 된 이후에도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힉소스 왕조가 다스리고 있었을 때에는
유목민족으로 번식하며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7대 왕조가 들어서면서 함족들이 재기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18대 왕조의 창시자 아흐모세 1세에 이르러서는 셈족 왕가를 애굽에서 축출하게 되었습니다.
함족이 왕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흐모세의 후대 왕들은 셈족인 요셉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셈족들과 대치국면 속에서 서로 갈등하게 된 것입니다.
아흐모세의 후대 왕들은 투트모세 1,2,3세로 이어졌습니다.
그 가운데 투트모세 2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돔과 라암셋에 국고성을 지으라고 핍박했던 자입니다.
그리고 출애굽 당시의 바로는 투트모세 3세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출애굽 당시 바로는 람세스 2세였다는 견해가 다수였으나,
출애굽의 연대가 BC 1446년이기 때문에 BC 13세기 인물인 19대 왕조의 람세스 2세가 아니라
18대 왕조의 투트모세 3세라는 주장이 지배적인 견해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는 모세였고, 그 당시 애굽 왕 바로는 투트모세였습니다.
둘 다 같은 모세이지만 하나는 그냥 모세이고, 다른 하나는 투트모세였습니다.
▲그러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9~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출 1:9~10).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하는 이유는 인구증가를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구가 더 늘어나면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우려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는 두 가지가 두려웠습니다. 첫째는 셈족과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셈족을 지원하게 될 테니 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었고,
둘째는 그렇다고 이 사람들을 애굽에서 쫓아버리면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가서도 안 되고, 남아서 외적들과 연합해서도 안 되었기에
이들의 인구증가를 막는 방안을 냈던 것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쉽게 컨트롤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두 가지 핍박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첫째는 노동을 강요한 것입니다. 본문 11~14절에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는 그들에게 고된 노동을 시켰습니다. 국고성은 곡식을 저장하는 국가 창고를 말합니다.
바로는 나라의 곡식을 저장할 수 있는 곳으로 비돔과 라암셋을 선택하였고,
그들에게 흙을 짓이겨서 벽돌을 만들고 농사를 짓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낮에 고되게 일하고 난 후 저녁에는 피곤해서 금방 곯아 떨어져 잠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피곤해서 잠이 들면 출산율을 낮출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된 노동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산율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의 첫 번째 정책이 실패한 것입니다.
둘째는 더욱 잔인한 핍박정책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기를 낳으면 산파들이 산모의 분만을 도와주었는데,
당시 애굽에 히브리 산파가 1,000여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십브라와 부아는 그들의 대표, 우두머리였던 거죠.
본문 15~22절을 보면 바로가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산을 할 때 남아면 죽이고 여아거든 살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유아학살’(Infanticide)을 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산파들이 바로의 말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에 그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들을 살려주었습니다.
10개월 품고 키운 아이를 힘들게 낳았는데, 남자아이라고 그를 죽인다면
그것이 인간으로서 가능한 일입니까? 보통 잔인한 일이 아닙니다.
산파들이 다 살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히브리 남자아이들을 살려주었느냐?” 그랬더니 히브리 산파들이
“히브리 여인들은 워낙 건강해서 애굽 여인들과 다릅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는다는 소식을 듣고 가면 벌써 다 낳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물론 이들의 말은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의를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는 성경구절로 이 구절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사건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바로의 명령까지도 거역할 수 있었다는데 강조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출 1:21).
여러분도 집안을 왕성케 하고 싶다면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바로는 더욱 잔인한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히브리 여인들이 남아를 출산하면 아이를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바로의 이 명령을 통해서 이스라엘 인구를 감소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의 두 가지 핍박정책은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잘 달래고 위로해서 “바로야, 왜 그러느냐? 한 번만 봐줘라!
내가 이 백성을 통해서 메시아를 보내야 되는데, 네가 그렇게 하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비위를 맞추어 그와 타협하고 그의 마음을 잘 구슬려서
소수라도 가까스로 빠져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와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일말의 타협의 여지도 없는 것입니다.
12절에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퍼져나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면 학대할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바로가 감히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번성케 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에게 성경을 주시고, 이 민족을 통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아무리 바로가 이를 막으려고 해도,
마귀의 사주를 받았다 할지라도 이를 막아설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의 핍박 정책은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2.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NIV 영어성경을 보면
“The more they were oppressed, the more they multiplied and spread.”
바로가 핍박을 할수록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번성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최근에 대한민국이 마귀의 놀음판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매체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귀가 사주를 하고, 바로가 핍박을 해도 더욱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도 말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교회는 절대로 마귀의 장난질에 놀아나지 않습니다.
출1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들 즉, 하나님의 교회는
핍박을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이 번성케 하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두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1) 첫째는 핍박이 올 때에 기도하였습니다.
출3:7~8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그것을 듣고 내려오셔서 건져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핍박이 올 때에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도들도 형통할 때는 잘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식들이 형통하면 새벽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벽기도를 나오기 시작하면 뭔가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로 기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둘째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셈족 중심에서 함족 중심으로 왕조가 바뀌고 정치상황이 변동되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출애굽기 1장을 설교하면서 제목을
‘변화하는 시대를 위한 굳건한 믿음’(Firm Faith for Changing Times)이라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히브리 산파들이 바로의 명령을 어기게 되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남자 아이들의 생명을 살려주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두 가지는 바로 기도와 믿음이었습니다.
기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핍박과 고난이 와도 도리어 승리할 수 있는 원인이 됩니다.
마귀는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21세기에도 가장 핍박받는 종교가 있는데,
바로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입니다. 성경대로 믿지 않는 기독교는 핍박받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만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이라크의 무슬림들은 이라크 전역에 흩어진 60여개의 교회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이라크에 1,500만명에 달했던 기독교인구가
지금은 겨우 4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기독교 인구도 800만명이라고 하지만,
적화되면 기독교인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시리아에도 이슬람교 내부 수니파와 시아파가 서로 싸우기 시작하면서
300만명에 가까운 난민이 남쪽 요르단으로 내려갔다고 하는데,
그들은 싸우는 와중에도 밤에 기독교인들을 색출해 몰살시킨다고 합니다.
밤에 자다가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도 힌두교로 개종을 거부한 그리스도인에게
휘발유를 뿌려 불에 태워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최근 인도에서만 400개 이상의 교회가 파괴되고, 4,000개 이상의 기독교 가정이
공격을 받았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성경을 읽다가 첫 번째로 적발되면 1,000달러의 벌금형을 받고,
두 번째 적발되면 3년 간 투옥된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성경을 읽는다고 감옥에 집어넣는 나라가 있습니다.
오픈도어 선교회가 발표한 기독교 박해 순위 1위는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이 바로 북한입니다.
그래서 북한을 ‘부카니스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북한은 자유가 없고, 교회라고 세워놓았지만 그것은 선전용이고 쇼와 같습니다.
21세기 대명천지에도 휘발유를 뿌려죽이고, 자고 있는 사람을 몰살시키는 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이슬람 국가들과 공산 국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핍박을 받았을 때 기독교인구가 줄어들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의 기독교인들은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교회가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드릴 때 하루 종일 앉아서 말씀을 듣고 싶어 하고, 찬송도 세 시간씩 부릅니다.
이슬람교도들도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숫자가 증가하고 있고,
아프리카의 교회들도 놀라운 수준으로 부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핍박 중에도 하나님의 교회를 성장시키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마귀가 강한 핍박을 해도 하나님은 마귀의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십니다.
빌1:12절에 “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복음이 이제 막혔구나 생각했지만,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들어가고 난 이후
더욱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연구하고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기뻐했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교회를 핍박하고 멸절시키려 해도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망하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핍박을 받아도 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이 교회를 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출18:11절에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출애굽을 다 살펴보더니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크신 하나님이 이기셨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1장에 “핍박을 받을수록 번성하더라”는 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이 원리를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
우리의 삶에 때로는 고난이 와도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좋은 목적을 이루신다고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이 와도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난이 와도
도리어 그것이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현세에서 많은 핍박을 당해 생명과 재산을 잃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핍박이 와서 죽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1세기 말에 이런 질문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 믿다가 목 베임을 당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집안 망하고 본인 망하고 다 망한 것 아닙니까?”
이 질문에 대한 사도 요한의 대답이 요한계시록 20: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계 20:4).
그들은 모두 비참하게 죽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모두 살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망한 줄 알았는데 왕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고난과 핍박이 오고 괴로움이 와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고난과 핍박이 결코 우리를 죽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원로목사님의 동생이신 김윤기 목사님을 참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런데 이 예배당을 건축할 때, 목사님이 사례비가 없다보니 소원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 냉장고에도 고기 좀 있었으면 좋겠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 건축을 하다가 그만 목사님이 나무에 있는 못을 밟아서
출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성도님들이 병문안을 오면서 그렇게 고기를 사가지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냉장고에 고기가 있게 되었다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받는 고난과 핍박은 하나님이 만 배로 갚아주십니다.
주님을 위해 고생하고 수고하고 고난 당한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마5:10~12절에 말씀하신 대로, 하늘의 큰 상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환란은 잠시 있는 것이고,
가벼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광은 영원하고 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민23: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론
예수님을 믿다가 고난이 와도 염려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 가운데 정치적 변화와 상황의 변화를 통해 고난이 닥쳐올지라도
출1장에 나타난 히브리 산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분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고난이 변하여 복이 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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