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선교, 아웃리치, 전도여행 조각글 모음 2 엡6:15, 눅10:17 조각글모음 1 보기
※여러 설교에서 <단기선교, 아웃리치, 전도여행>주제의 조각글들을 모아보았습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앱6: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새번역)
이 말씀의 뜻은 ‘언제든지 복음을 전하러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라’ 이다.
여러분, 영성이 병들면.. 전도 안 한다.
믿음이 병들면.. 선교지 소식을 듣고도, 눈에 눈물이 글썽거려지지 않는다.
만약 우리 영혼이 시들어 있다면.. 현장에 나가서 발로 뛰어야 한다.
개인전도, 교도소전도, 병원전도, 긍휼 사역을 발로 뛰다보면.. 내 영성이 회복된다.
해외선교현장에 나가서 발로 뛰면.. 축 쳐진 내 믿음이 되살아난다.
우리는 맞춤전도, 러브소나타(일본선교) 등을 통해 온 세상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것들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것들을 포기하면.. 우리 영성이 시들고, 죽기 때문이다.
여러분, 영적 전쟁의 핵심은 ‘복음전파’에 있다.
복음을 전파해서 마귀에게 빼앗긴 영혼들을 되찾는 것이.. 영적 전쟁의 승리이다.
우리 각자와 우리 교회가 ‘복음 전파’의 최일선에 서 있게 되기 바란다.
♣눅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흩어질 때는, 다들 불안불안한 표정으로 흩어졌습니다.
우리가 수많은 아웃리치 팀을 파송하고, 캄보디아 등지로 파송해 보면
갈 때 표정들은, 모든 두려움과 긴장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내가 괜히 간다고 그랬나?’, ‘지금이라도 안 갈 수 있을까?’
이런 표정들이 섞여 있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에 우리 애들은, 우리 직장은 어떻하지?’
그런 복잡 미묘한 표정들을 가지고 떠나지만
그러나 갔다 올 때는 표정이 다릅니다.
본문의 제자들처럼 흥분합니다.
처음 가보는 나라로, 동네로 나가니까,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그래서 아웃리치 팀들이 돌아오면, 서로 고생한 것을 자랑합니다.
모기가 물어뜯고, 수돗물도 잘 안 나오고,
이런 데서 5일, 6일간 불편한 음식 먹으면서,
불편한 잠자리 감수하면서 고생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는, 그 고생을 했는데도, 얼굴이 평화로워요.
기쁨이 가득차 있습니다. 희한한 일이죠.
본문의 70명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고생을 많이 하고 돌아왔는데도, 그들이 기쁨에 넘쳐서 돌아왔습니다. :17
여러분, 힘든 일을 해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 큰 기쁨이 임합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도 살아도 누릴 수 없었던 기쁨이,
힘들고 불편한 환경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가득 찹니다.
이것은 개그콘서트 보고 얻어지는 기쁨과는 전혀 다른,
상상을 초월하는 하늘의 기쁨입니다.
누가는 70인의 제자들이 어디가서 얼마나 오래,
누구에게 사역했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이 제자들이 모두, 마치 새로 발견한 것을
부모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한 어린아이들처럼, 흥분해서 돌아왔다는 겁니다...
전도의 기쁨, 선교의 행복입니다.
♣아웃리치를 제대로 하고 오면, 영적인 승리를 경험합니다.
우선순위가 분명해집니다. 문제가 이제, 문제가 안 됩니다.
가기 전에는 여러 가지 자잘한 문제들이 많았는데,
아웃리치 현장을 제대로 체험하고 나면, 쫙 정리가 됩니다.
이전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의 이름의 권세입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 앞에서 어둠의 권세가 무너지는 것을 말로만 듣다가,
자기가 가서 직접 체험한 겁니다.
그것을 체험한 사람은, 그 흥분을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가기 전에는 반신반의 했는데, 현장에 나가보니까, 예수님의 이름이 능력이거든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이거든요.
주님의 이름만 붙잡고 나가면, 안 되는 게 없거든요.
어떤 악한 귀신도 다 쫓겨나갔습니다.
아웃리치 갔다 오면, 딱 예수님의 이름만이 강렬하게 내 인생을 덮어버립니다.
그 전에는 여러 가지 이름들이, 내 생각 속에 많았습니다.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도 있고, 뭐 여러 가지 이름들이 많았는데 싹 다 정리되고,
오직 예수의 이름만이 구원받을만한 이름, 어둠의 권세를 묶는 이름,
온 천하만물이 찬양하실 그 이름을, 딱 가슴에다 새기고 돌아오는 겁니다.
해 본 사람은 알거든요.
자기가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현장에 가 보면, 내가 계획했던 대로 안 되는 게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오직 기도하며 100%순종하면,
우리 주님의 이름이 높임 받으시는 것을, 현장에서 보게 됩니다.
‘이런 것을 체험해 보고 싶다.. 그런데 가본 적이 없다.’ 하시는 분은
인도네시아 아웃리치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도나 선교 현장을 순종해본 사람은,
말씀의 능력, 기도의 능력, 예수 이름의 능력을 압니다.
그 전에는 이론을 알다가, 그때부터 피부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 분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아웃리치를 갔다오고, 전도하고 선교하고 온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우리 교회에, 그렇게 사역현장에서 얻은, 예배의 감동이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인 여름휴가는, 단기선교로 가는 분위기
이번 여름에도 한국 교회에서도 얼마나 많은 단기 선교팀,
수만 명의 단기 선교팀이 열방으로 갔잖아요.
요즘은 우리 크리스천들은 ‘휴가 때 해외여행 가자’
그런 사람들이 거의 없어졌어요.
크리스천들은 단기 선교를 가요.
크리스천들이, ‘해외여행 가서 놀고 오자’ 그런 사람들 없어요.
그런 사람들은 숨어다니면서 얘기해야 돼요. 떳떳하지 못해서요.
모든 한국 교회가 단기 선교를 동참해서
‘가서 어려운 나라들에 봉사하자, 복음 전하자’,
단기선교를 하기 때문에 이게 한국에 보편화 되어서
그냥 돈 쓰면서 즐기고 오는 이런 여행은, 거의 사라져갑니다.
그런 기독교인들은 숨어서 다녀야 해요. 창피스러워서.
누가 그래도 예수 믿는다 하는,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참 신실하게 주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이
어디 해외여행을.. 신혼여행조차도 단기선교 가는 판에. 무슨 해외여행이에요?
주변에 그런 사람 본 적이 없어요.
한 십년 전부터는, 다 단기 선교를 가요. 한국에서 매년 수만 명이에요.
감사하죠. 아직 우리 한국 교회가 살아있습니다.
한국 교회,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 있다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그래도 신실한 자는 더욱 신실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더욱 그렇지 않아요.
마지막 때는 그렇게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가라지와 알곡, 염소와 양으로 딱 구분되어 지는 거예요.
방법이 없어요. 자기가 자기 길을 택해 가는 거지요.
이렇게 막 지구적으로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세요.
♣1900년대 접어들어 조선 땅에 전도활동이 자유스러워지면서
그의 본격적인 지방전도 활동이 시작되었는데,
언더우드는 매우 독특한 전도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지방전도여행에는 한국인 동역자들을 대동하였는데
이들 가운데는 두서너 명으로 구성된 코르넷 연주자와 *호른과 비슷한 금관악기
환등기 기사를 꼭 대동하였습니다.
일단 전도집회 장소에 도착하면 우선 천막을 치고
그 앞에 대형 크기로 그려진 예수 초상화를 걸어 놓은 후
나팔수를 앞세워 주변 동네를 다니며 전도지를 돌리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운집하면
코르넷 연주자의 선도로 찬양가를 힘차게 부르고
이어 환등기를 돌려 마치 무성영화 시절 변사(辯士)의 구성진 소리로
그림 설명이 시작되면서
참석자들의 마음을 한껏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더우드가 참여한 지방전도여행이 특별히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미국인 언더우드 자신이 지방민들에게
더없는 호기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시골에서 말로만 듣던 ‘파란 눈’(벽안碧眼)의 ‘코쟁이’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코쟁이 외국인’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을 모으기에 충분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방전도여행을 떠나면
적어도 하루에 짧게는 40리길, 길게는 60리 길을 걸으며
전도여행을 강행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남다른 전도방법을 살펴볼 때 매우 조직적인 두뇌와
사업가적 기질을 지닌 ‘수완가’였다는 점 등
그의 개인적인 특징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안식년이면 본국에 돌아가
미국 전 지역 교회를 돌며 한국선교를 위한 상당한 후원금을 모금해 왔는데
우리나라가 일본에 국권을 강점당한 1910년 한 해만도
선교지원금으로 17만 불을 모금하였다고 합니다. (L. H. Underwood 증언)
또한 그는 남다른 친화력과 뛰어난 조직력의 소유자였으며
일에 대한 추진력이 대단하였습니다.
즉 성경 보급과 판매를 위해 서울 중앙(새문안교회)에
도매서(都賣書, 宋淳明 장로)를 두고
지방 매서인 조직을 갖추고 있었던 점이며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어려움에 봉착했던 한글성경 번역사업을 기필코 해 낸 일,
이 밖에 수십 개 선교단체의 책임을 맡아 그 소임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가 뛰어난 조직가로서 인화력과
일에 대한 남다른 추진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처 https://rfcdrfcd.tistory.com/15976397
♣케네스 배 선교사 <북한 단기선교> 시작하게 된 간증
*2009년, 정식 선교사로 대련에 정착
제가 정착한 곳은 대련이라는 중국의 동북지역의 한 도시입니다.
대련에서 단동까지는 차로 약 4시간 걸립니다.
그래서 많은 선교팀들이 왔을 때,
‘단동을 한 번 가서, 북한 땅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예배했으면 좋곘다’
그래서 제가 많이 모시고 가서, 북한 관련 일들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1년 정도 지나다 보니,
저희가 단동, 대련에서 ‘제자훈련학교’를 개설하게 됩니다.
‘제자훈련학교(DTS)’는 3개월동안 먹고 자고 하면서 공부하고,
두 달 동안 전도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중국인 대상으로 그 학교를 열려고 했는데,
저희가 어디서 학생들을 데려올 수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DTS 5개월 동안 먹고 자고 하는 사람들을 광고할 수도 없고,
아직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때이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보니까 DTS 학교는 시작을 해야 되는데,
3주 후면 학교가 시작되는데, 등록한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이번에 DTS학교를 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제 마음에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면 주님께서 학생들을 보내 주셔야겠습니다.
보내주시면 몇 명을 보내주실 것입니까?’
하고 여쭈니, 그러자 제 마음속에 ‘18명’이라는 숫자가 새겨졌습니다.
제가 칠판에 18명이라고 쓰고,
제가 지금까지 만나본 중국 사람의 모든 이름을 칠판에 다 썼습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물음표(?)도 썼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모르는 사람이 올 것이다’ 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이 보내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렇게 3주를 기도했더니 학교가 시작하는 날, 18명의 학생이 왔습니다.
13명은 중국인, 4명은 한국인 선교사,
1명은 한국인 선교사를 따라온 북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북한 사람은, 예수 믿은지 기껏해야 한 달 밖에 되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 제가 이 사람을 받아야 될지, 말아야 될지.. 잘 몰랐습니다.
왜냐면 중국사람 대상으로 하는 학교인데, 이 한 분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3중 언어로 학교가 진행되어야 되고,
그리고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생기게 되니까
'예수도 잘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아침 8시부터 밤10시까지 하는 학교를
3개월 동안 견뎌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분이 나이가 50될 때까지 주체사상으로 무장되어서 사신 분이,
과연 이 기독교식 교육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그 분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18명을 보내 주신다 하셨고,
그 18명 중에 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상대로 이 분이 굉장히 어려워했고요. 저희도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한 분의 북한 분을 품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고,
함께 살면서 지낸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그가 변화되고 치유되고 회복되며
주님을 알아가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고,
학교과정이 다 끝났는데, 이 분이 돌아가지 않고,
그 외의 성경학교, 선교학교 등 다양한 학교 과정을 마치고,
1년 동안 저희랑 같이 지내다가
‘이제는 북한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고 얘길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서 뭘 하시겠습니까?’ 했더니,
‘돌아가서 제가 우리 동네에 정말 너무나도 많은 꽃제비 아이들이 있는데,
아무도 돌보지 않습니다. 우리 동네는 우리 지역에는 고아원도 없습니다.
가서 제가 집에서 아이들을 데려다가 기르고 입히고 양육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잘 키우겠습니다.’
자기 집에서 고아원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하고 축복해주고, 후원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것이 2009년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2010년 단동 개척
그러고 나서 저희 센터가 대련에서 단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2010년에는 이제 그곳에서 진을 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많은 훈련과정을 하는 도중에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저희가 바라만 보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했을 때,
주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서 나진 선봉에서 일하시는 선교사님의 초청을 받아서,
제가 북한 땅을 처음으로 2010년, 10월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들어가 보니, 마침 서방 사람들을 위한 관광이 개설되었다고 얘기했습니다.
나진 선봉은 경제 특구로, 많은 외국인들이 와서 투자할 수 있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외국인 관광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중국 사람들 일부와 러시아 사람들에게만 열려있던 관광을,
서방세계, 그 외 누구한테도 열어주었는데,
우리 남한 여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는데, 데려오되
저희는 좀 다른 관광을 해도 되겠습니까?’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그래서 제가 ‘저희는 우선 학교에 가 보고 싶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가 보고,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도 해 보고 싶습니다.
약 한 시간, 두 시간 씩 문화교류 차원에서
아이들과 한 마디로 프리 토킹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그런 외국어를 공부하는 학교가 있다고 하면서,
아직까지는 한 적이 없지만, 열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제가 산에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산에 올라가서 나진 선봉을 바라보며 기도하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산에 가도록 허락받았습니다.
장마당에도 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장마당이란 나진에 한 집에 한 명씩은 다 나와서 장사를 합니다.
수 천 명이 거기서 일하고 있는데, 거기서 떡도 사 먹고, 물건도 사고,
거기 나와 있는 아주머니들 하고 얘기도 하고, 이럴 목적으로 얘기를 하니까,
‘원칙적으로 관광객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열어주겠습니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해수욕도 하게 해 달라,
아이들과 공원에서 롤러스케이트도 타게 해 달라 했는데,
제 모든 조건을 수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 다음날 아침에,
제가 호텔 밖에 있는 뜰을 걷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내 백성이 눈이 멀어서 그들이 보지 못하며, 그들의 귀가 먹어서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이 봉해져서 벙어리가 되었다.
이제 내가 그들의 눈을 열어서, 내 영광을 보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의 귀를 열어서, 내 음성을 듣게 할 것이고,
그들의 입을 열어서 내 이름을 송축하게 하리라. 내가 그들을 회복하리라.’
2005년도에는 제가 압록강 지류의 배 위에서 서서 저를 사용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2010년에는 북한에 들어와서 나진에서 북한에서 제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주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민족이 4백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이제 광야 생활을 40년을 마치고 요단강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성이 '여리고 성'입니다.
그들이 숫자와 군사력으로 압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그 음성에 순종해서 하루에 한 번씩 그 성을 돌았더니,
일주일 째 되는 날 7번을 돌고 함성을 질렀더니,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린 것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약 3백명 정도의 기도의 용사들을 모집해서
10명 20명 단위로 이 땅(북한)에 와서
그 도시를 다니면서, 산에 올라가서, 학교에 가서, 해변에 가서,
시장에 가서, 기도하고 한다면
과연 여기에 있는 어둠의 장벽이, 영적인 장벽이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나진에서 단동에 돌아와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4가지를 하십시다.
첫째는 북한에 가십시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고,
한 번 보는 것이 여러 선교사님 간증을 듣는 것보다 낫습니다.
가서 직접 보시고, 하나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둘째는 가서 보기만 하지 말고, 가서 기도하십시다.
기도할 때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기도할 때 회복과 치유가 일어날 것이며
기도할 때 예배가 살아날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가 선교하는 목적은, 그곳에 예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예배 받기 원하십니다.
여러분, 그래서 제가 기도할 뿐만 아니라, 우리 예배하십시다.
우리는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우리끼리 가서 북한에서 예배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우리끼리 가서 기도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넷째는, 가서 사랑하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십시다.
우리가 말로 복음을 전할 수 없고, 성경책을 주고 올 수도 없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둠에 가게 되면, 빛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그들이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서 그들에게 웃어주고, 대화하고,
모든 행동에서 그들이 예수의 흔적을 발견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제가 권면을 했더니,
정말로 2011년부터 2012년 딱 1년 동안
17개 나라에서, 300명의 기도의 용사들이 모집되어서,
북한에 (관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중남미, 북미, 유럽, 아시아 다양한 곳에서
300명이 (아마 YWAM) 23번에 걸쳐서
북한에 들어가게 되었고, 제가 18번을 직접 인솔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https://rfcdrfcd.tistory.com/15976545
♣저 젠센 프랭클린 목사는 최근에 아이티에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제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아이티인 저들은 저만큼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며
저들은 저만큼이나 자기 자녀들을 많이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은 여러분과 저만큼이나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다들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아이티라는 환경에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 그들이 비참하고 힘든 상태로 살고 있다는 거죠.
그들은 ‘낮은 골짜기’에 살고 있습니다.
살아있기는 하지만, 마른 뼈다귀와 흡사하게 살고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제게 임하셔서
여러분께 전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높은 장소에만 우리의 시선을 두지 말고
낮은 장소, 골짜기, 마른 뼈들이 가득한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임하셔서
우리를 낮은 골짜기로,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곳으로 인도하기도 하십니다.
아프리카에서 절대 빈곤 가운데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라고 하십니다.
거기서 부모들이 모두 에이즈로 죽어서,
고아로 남게 된 아이들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에이즈 베이비’라고 불립니다.
저들은 ‘낮은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에서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Free Chapel 교회가 그들을 지금 돕고 있지만,
그 마른 뼈가 가득한 낮은 골짜기로
우리를 데려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가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낮은 골짜기’는 아프리카 빈곤국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미의 아마존에도 있고,
심지어 미국 내에도 있습니다.
경제적 빈곤 말고도, 각종 중독과, 가정 파탄으로 인해서
낮은 골짜기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다 있습니다.
제가 기도할 때마다 주님이 제게 감동을 주십니다.
‘저들이 낮은 장소에 있단다’
낮은 장소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뼈들이 과연 살 수 있겠느냐?’
이 말의 의미는,
‘에스겔아, 네가 저 뼈들을 살릴 수 있겠느냐?’
즉, 우리가 저들을 살릴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려는 말씀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죽어가는 누군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가 순종할 때,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민감할 때,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늙으면 바톤 터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단기선교 · 비전트립 이런 것도 젊었을 때 가능하지요.
나이가 들어서 어느 정글에 들어가서 텐트치고 거기에서 머무는 거,
이거 여러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젊었을 때는 텐트를 치고 하는 여름수련회를 자주 다니면서 설교를 했는데
지금은 오라고 부탁을 해도 못 갈 겁니다.
지금 이 나이에 텐트에서 자고, 설교하고...
해야 된다면 하겠지만, 아마 부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내 생전에 다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데, 인생은 짧고 신앙은 깁니다.
그러므로 내 살아생전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
미처 다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그것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됩니다.
다윗이 살아생전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자 했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아들 솔로몬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성전이 세워질 수가 있었던 것이고
모세는 살아생전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을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세대에 가서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기 원했지만
살아생전 스페인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복음을 들고 스페인뿐만 아니라
더 멀리 있는 지역까지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하느냐.
다음 세대에 이르러서야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천사가 말하기 저가 주 앞에서 큰 자가 되며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눅1:15~16
♣백문이 불여일견
이슬람을 알려면,
이슬람 선교지를 방문하거나 단기선교를 가 봐야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듯이
이슬람에 대하여 서적과 세미나 및 설교를 통해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이슬람 국가를 방문하여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요사이는 단기선교가 무척 성행하고 있다.
또한 현지 방문 기도운동도 하고 있다.
지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직접 이슬람권에 단기선교로 가서
그 땅을 밟으면서 기도도 하며
이슬람에 대하여 직접 피부로 느껴 보는 것도
이슬람을 아는 것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슬람 선교에 앞장서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서구교회는 이미 테러의 타깃이 되고 있기에
직접적인 이슬람선교는 사실상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면 누가 저 13억의 이슬람을 향하여 나아갈 것인가.
주님은 우리 한국교회를 이 시대에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한국교회는 소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이 일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출처 https://rfcdrfcd.tistory.com/15977092
♣목사 선교사로서 갈 수 없는 나라도 평신도는 다 갈 수 있습니다.
목사 선교사는 비자를 안 주는 나라가 84개국입니다.
그러나 평신도들은 어디나 갈 수 있고, 언제나 갈 수 있고
비자 받기도 쉽습니다.
자녀들이 다 자라서 자유롭고
교회에서 친구들이 많으니까 기도그룹도 만들기 쉽고,
후원그룹도 만들기 쉽습니다.
단기선교 할 수도 있고, 장기선교 할 수도 있고, 순회 선교 할 수도 있고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지구상에 수 십 억이 아직도 있다면,
우리끼리 이렇게 잔치해서 즐겁게 살면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대학생인데 왜 아프리카에 가 있니?
왜 아프리카에 단기선교로 가 있니?’
알바해서 자기 돈으로 비행기 표 구해서 아프리카에 단기선교 가는
대학생들도 있습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시고 인도해 주셔서 그렇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그런 것입니다.
♣제 자신도 감동을 받은 프로그램입니다만
이번 여름에 작년에는 우리 교회 청년들이 약 한 8백여명이
국내로 아웃리치를 갔습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작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모아서 준비를 해서
약 1천여명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일대로
미국, 맥시코까지 단기선교를 1천 명이 떠났습니다.
그 1천명이 어떻게 해서 떠날 수 있었겠느냐,
그것이 바로 그런 헌신 공동체에 대한 개념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갑자기 하자고 하면 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헌신자 스쿨, 열린 이웃,
끝임 없이 이러한 도전과 연습,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날 우리가 “단기 선교를 떠납시다”라고 말했을 때
1천 여명이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지요.
대학생이 150명, 청년들850명, 54개팀, 23개국 나라에
약 한 11일에서 20일 정도 전부 아웃리치를 떠났습니다.
저는 이것을 굉장한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개교회가 말이죠,
1천 명이 청년들이 아웃리치를 떠날 수 있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더 놀라운 일은 돌아와서 그들 중에 2백명이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물론 당장 다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중에 몇 십명은 이미 선교 훈련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로 순종하고 헌신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것뿐만 아닙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선교사로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선교사로 갈 수는 없습니다.
선교사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 10%로나 20%정도의 사람일 겁니다.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자기 직장을 선교지로 보는 겁니다.
그래서 월급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직장을 복음화 하기 위하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과 그런 철학과 사명을 가지고
그 직장에 들어가서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희 교회가 시도하고 있는 순종과 헌신 프로그램입니다.
정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자기의 삶을 헌신하도록 유도해주는 것이죠.
우리 온누리 교회의 이상은 마음을 드리는데 있지 않고, 몸을 드리는데 있습니다.
몸까지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받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헌신 없는 교회, 헌신 없는 공동체, 순종하지 않는 교인들,
교회가 순종하지 않고 헌신하지 아니하면
교회는 딴 생각을합니다.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기 시작하고 분열하고 싸우는데
사람들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을 하고 순종하고
거룩과 순결을 추구하다 보면
놀랍게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들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두 가지 큰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온누리 이미지’라는 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누리 인들은 이런 성품을 가졌으면 좋겠다하는 성품의 이상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상설교에 나오는 8가지
그리스도의 성품을 우리의 이미지로,
우리의 성품으로 생각을 하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온누리맨의 생활 양식으로,
롬12장에 나타나고 있는 크리스챤의 삶의 양식을 우리의 지표로 삼아서
이런 두 방향으로 온누리 교인들이 성장하고 헌신하고 순종하고
거룩과 순결의 삶을 살도록 유도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분의 교회에 *목회자 세미나 상황
그런 성도들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끌고 가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누리 맨들이 갖고 싶은 이상과 목표입니다.
이렇게 추구하다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과 순결을 우리 자신의 삶에서 만들어 주실 뿐만 아니라
그리고 우리 자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순종과 헌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타이틀 있는 목사가 있고 타이틀 없는 목사가 있다.
나는 타이틀 있는 목사고 여러분은 타이틀이 없는 목사다.’
우린 다 똑같다는 것이죠.
부름도 헌신도 똑같은 것이고 수준이 같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선교사고 누구는 선교사 아니고’ 라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예수를 믿었다면, 그리스도를 알았다면
우리는 그 정도까지는 가야한다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전 교인들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은 변합니다.
*출처 https://rfcdrfcd.tistory.com/15977907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님이 있었는데
한번은 단기선교팀이 한국에서 와 가지고
그 선교사님 사역을 보고 이렇게 질문을 했어요
'선교사님, 선교사님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말로 좋아해서 하시는 거 같아요 그렇지요?
정말 이 선교하는 걸 좋아서 선교하고 계시지요?'
그랬더니 당연히 '예' 라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이 선교사는 뜻밖에 정색을 하고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와 우리 가족은 이곳에 사는 걸 원치 않습니다
이 날마다 날마다 불어오는 광야의 흙먼지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식들 제대로 교육 못 시키는 것도, 나는 날마다 고통스럽습니다
저녁에 해가 넘어가면 위험해서 밖에 마음껏 외출 하지 못하는
이 환경이 나는 너무 싫습니다
때때로 고국이 그리워서 미칠지경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잠시 있다가 가지만
여러분이 가고 난 다음에 그 후유증은 저희 가족에게 너무 큽니다
저는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풍토병이 나는 싫습니다 미래가 불안합니다” (*이런 면도 있지요. 양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어본 사람이 실망한 거예요
근데 뒤이어서 이 선교사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나 나는 선교를 이곳에서 하면서
절대로 이곳의 이 생활이 좋고 원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분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내가 뭔가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 분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버티는 겁니다!”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위선적인가요?
억지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어느 날 사람들이 자기에게 실망을 주면
그곳을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해서 그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어떤 일을 만나도 시험 들지 않습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대륙에서 선교할때 제법 유명해지니까
제2의 허드슨 테일러를 꿈꾸면서 선교사로 지망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때 면접을 할 때 허드슨 테일러는 질문을 합니다.
당연히 이런 질문 하지요.
'당신은 어째서 이곳에 와서 선교하려고 합니까?'
그러면 지원자들은 거의 이렇게 답변을 했다고 그래요.
'예 선교사님, 주님의 명령으로 주님께서 선교하라 하셨고,
제게 불타는 열망이 있어서 선교 하려고 합니다!'
정답이죠. 근데 허드슨 테일러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이 그런 동기로 선교를 한다면, 앞으로 어려움이 온다던지
고통이 온다든지, 혹은 죽음의 위협이 올 때 당신은 못 버틸 겁니다.
당신은 어떤 동기보다도 <주님을 사랑해서> 선교사를 지망해야 됩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믿는 대상이신 그분을 영원히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하기 때문에 믿음을 버릴 수 없지요
그런 믿음이 저와 여러분께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제(이상준 목사)가 2009년 9월에, 밴쿠버에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양재 여호수와 청년부 담당하면서
온누리교회 대학 청년부를 맡게 됐어요.
한 9천 명의 청년들이 10개 예배공동체로 나눠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제가 9월에 도착했으니까, 7~8월에 한 4천명 정도의 청년들이
여름에 아웃리치를 국내로 다녀온 뒤였어요.
목회자들이 모여서 아웃리치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보고를 듣는데
그다지 감동과 감격이 없는 거예요.
왜냐면 온누리교회는 매년 정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아웃리치를 나가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이게 너무나 익숙한 프로그램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근본적인 어떤 '구령의 열정,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기 위해서 몇 가지 프로그램들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거지 전도>였습니다. 복음을 위한 무전여행이죠.
10개 청년부 공동체의 1백명 되는 리더십들만 먼저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제비를 뽑아서, 충청도, 강원도 등 한 2~3시간 되는 거리에
사람들을 보냈어요.
갈 때, 가는 차비만 주고
식비 라든지, 숙소비용이라든지, 돌아오는 차비.. 아무것도 안 주고
그냥 4~5 명씩 묶어서 보냈어요.
그런데 늘 프로그램을 잘 짜서,
하루 종일 큐시트까지 짜서 사역을 하던 친구들이니까,
'아니 뭐 아무 계획도 없이.. 돈도 안주고.. 핸드폰도 없이'
처음엔 황당해했지만, 취지를 설명해주고, 이제 그분들은 순종해서 떠난 거죠.
그런데 어떤 팀은,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기 전에
한 자매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옆의 아주머니하고 인사를 하게 됐어요.
근데 그 아주머니가 본인들이 가는 그 지역에 사는 분이었어요.
권사님이고, 가기 전부터 하나님의 사람을 예비해주신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가서 마음 편하게 전도하고, 저녁에 권사님이 밥도 해주시고,
그 집에서 전도하고, 대접받고 온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그냥 내 계획을 실천을 했던 거지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몰랐던 거잖아요.
'본부에서 모든 팀에게 핸드폰을 팀별로 한 대씩만 가져가게 하고
밤 아홉시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아서 숙소를 제공받게 되면
본부에 보고를 하십시오.' 그래서 본부에 보고할 때만 전화기를 쓰게 했어요.
그런데 파송한 20 여개 팀이 다 보고가 들어왔는데
한 팀만 밤9 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숙소를 못 정한 거예요.
근데 그 팀이 이제 밤 9시가 넘었는데
'결국에는 우리가 노숙을 해야 되겠구나'
지방에 내려와서 시골 길에 들어섰는데, 뭐 아무도 없잖아요.
캄캄하고 가로등 불빛만 보이고...
그래서 이 사람들이 이제 밤9시가 넘어서 시골길을 가다가
저 멀리서 교회 십자가 불빛이 보이니까
'저기에 교회가 있나 본데, 가서 교회문이 열려있으면 거기 들어가서 자자'
감사하게도 교회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서 한 사람씩 장의자를 잡고, 거기서 쉬려고 했던 거에요.
근데 9시 반경에, 그 캄캄한 시골에 있는 예배당 문이 삐걱 열리더니
한 여집사님 들어오신 거예요. 서로가 깜짝 놀란 거죠.
그 시간에 사람이 나타났으니까요.
그런데 이 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더 놀라운 거예요.
그 분은 토요일 저녁마다 최애 드라마가 있어서, 늘 그 드라마를 보는 시간인데,
그 날은 성령님이 계속해서 '예배당으로 가라' 강권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 드라마를 봐야 됩니다'
'아니다, 예배당으로 가라, 예배당으로 가라!'
그래서 드라마를 보다가,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중간에 집을 나와서 예배당에 온 거예요.
'기도를 시키시려나?' 그런 마음으로 예배당에 와서 보니
전도팀 청년들을 만난 거예요.
그래서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늦은 시간에 밥을 차려서 먹이고
밤새 서로 간증하고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다고 보고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잖아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그렇게 불만이 가득했던 청년들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고백을 하면서 오더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를 공급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만남의 축복을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중국 길림 시로 20일간 단기선교 갔다가, 평생 북한선교 몸담게 되다
1998년 8월 8일, 중국 길림성에 있는 장춘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소지품은 옷가지 몇 벌, 성경 한 권, 성경1천절 암송노트,
열여덟 개로 된 빠른 통독 테이프 2세트.
비행기 좌석에 앉고 부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생전 처음 만나게 될 북한 형제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북한 사람들이면 빨갱이인데, 뭐가 빨갱이일까?
눈알이 빨개서 빨갱이일까?'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비행기는 어느새 장춘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마중 나온 형제와 함께 곧바로,
주광호 선생과 그가 모아놓은 몇몇 북한 형제들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
길림 시로 갔다.
장춘에서 길림으로 가는 차창 밖에는, 옥수수 밭과 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마치 어릴 적 고향 풍경 같이 정겹게 느껴졌다.
몇 시간 후, 다 낡아서 우중충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여
동 호수를 찾아 긴장된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아파트 문이 삐걱하고 열리며,
키 175 센티 정도의 어깨가 떡 벌어진 형제가 얼굴을 내밀었다.
무장공비를 연상케 하는 눈빛 사나운 이 사람이 바로 주광호 선생이었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으로서 북한 고위층의 비자금을 관리하다가
중국으로 도망나온 사람이라고 들었다.
'어서 오시오, 최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광호 선생이 먼저 인사를 건넨 후, 자기 뒤에 서 있는 4명의 북한 형제들과
조선족 감 형제를 소개해 주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먼저 거실바닥에 무릎을 꿇고
무사히 도착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15평 남짓 해 보이는 아파트는, 방 3개에 조그만 부엌 겸 거실이 있었다.
장판도 깔지 않고 천장과 벽에도 전혀 도배를 하지 않아, 집안은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다.
(중국은 이렇게 임대를 하고, 세입자가 장판도 깔고 도배를 한다)
형제들은 하나같이 시커먼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눈빛에서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살기가 뿜어져 나와,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있고, 몸집들도 우리의 초등학생들만 했다.
잔뜩 움츠리고 않아 한 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안 되어 보였다.
같이 예배를 드리자고하며 일부러 더 활달한 목소리로 내 소개를 했다.
'한국에서 온 최광 선교사라고 해요.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출처 https://rfcdrfcd.tistory.com/15980335
♣아웃리치를 다니다 보면, 그 지역에 영적인 강한 진(진지)으로 인해서
교회들이 눌려있고, 목회자들이 눌려있고
성도들이 눌려있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해외도 마찬가지죠. 샤머니즘과 이슬람과 불교와 공산주의,
분열과 전쟁과 어둠의 영에 사람들이 묶여있고
나라와 민족들이 눌려있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너무나 힘든 경우이죠.
제가 파파뉴기니에 몇 년 전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이런 얘기들을 들었어요.
선교사님이 부족 마을에서 사역을 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만 하려고 하면
누군가가 다쳐서 실려 나가는 거에요.
그래서 차를 선교사님밖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교사님의 차를 타고 대도시로 나가야 되니까
예배를 결국 못 드리게 되고, 성경공부를 못하게 되고...
그 선교사님 자녀가 아주 어려서부터 부족 마을에서 컸는데
그 아이는 그냥 귀신이 있다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인정하더라고요.
그 곳에서는 그게 일상적인 삶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예배를 드려? 성경을 봐?
내가 너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사단이 이렇게 압박해오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크리스천들은 놀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사단이 지레 겁을 먹고 있구나!'
그래서 사단이 막 난리를 치는 거예요. 설레발을 치는 것입니다.
그때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서
선포하고 승리하는 것이죠. 그렇게 마귀를 대적할 때, 큰 승리를 얻는 것이에요.
그러나 그 눌림을 극복하고, 승리할 때.. 놀라운 열매가 있습니다.
아래에 그 예를 봅니다.
제가 전국을 다니면서 참 희한한 현상을 보게 돼요.
일부러 정말 강심장인 분들인데, 해인사, 법조사 등 전국의 주요 사찰이
자리를 잡고 있는 산기슭에 들어가서 목회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거기서 교회 세우고...
근데 그 지역에서는 사찰 근처의 광범위한 땅도 다 불자들 땅이에요.
땅도 안 내주고, 막 쫓아내려고 하고...
온갖 실제적인 영적인 공격을 당하면서도
그런 주요 사찰 근처에서 들어가서 교회 세우고, 목회하는 분들이 있어요.
여러분, 영적 공격을 당하는 횟수로 보거나, 그 압박감으로 보자면
이런 분들의 목회가 어려워지는 게 정상이 아니겠어요?
근데 참 놀라운 것은, 물론 뭐 다른 곳, 다른 지역이 더 쉽다고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런 어려운 곳에 있는 분들이 놀라운 부흥을 체험합니다.
왠지 아십니까? 그 압박을 당하니까, 더 힘을 내야 되는 거예요.
더 영적으로 분발해야 되는 거에요. 더 살아있어야 하는 거예요.
이게 참 놀라운 것이죠.
사단이 공격하는 만큼 더 강해져야 하니까..
더 기도에 힘쓰고 더 깨어있어서.. 실제로 더 강해지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알 것입니다.
청어 장사가 지방에서부터 서울까지 청어를 차에 실어서 운반하죠.
처음에 산지에서는 신선하고 팔팔하게 살아 있는데
서울에 올라오니까, 그 사이에 청어들이 다 시들시들 죽어있죠.
그런데 청어의 천적인 메기를 한 마리 집어넣으면
그 메기 때문에 한두 마리는 물려 죽어요...
그런데 그 메기 때문에, 눌려서 지내면 안 된다는 거죠!
♣데이비드 플랫 / 인도와 중동 단기선교 간증
http://blog.daum.net/rfcdrfcd/15976402
♣아마존 정글로 1주일간 전도여행 떠납니다 / 김철기 선교사
https://rfcdrfcd.tistory.com/15980949
◑발전을 위해서, 다소 경계하는 관점에서의 글
♣전도여행을 할 때는 예수님이 이런 지침을 주셨다.
‘너희는 전대도 가지지 말고, 두 벌 옷도 가지지 말라’
그런데 제자들이 3년 내내 전도여행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특정 기간 그렇게 했다.
그러니 평소에는 전대도 필요하고, 두 벌 옷도 필요했다고 본다.
그래서 과거에 학생선교단체가 이것을 본 따서
‘거지전도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여름에 한 때 그렇게 한 것이다.
1년 내내 거지전도여행을 하고 다닌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제는 전대와 주머니를 가질 것을 당부하셨다.
눅22:35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즉 전도여행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
예수님이 처음에,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셨는데 모든 필요가 다 채워졌다.
이것은 ‘특수한 상황에서 적용되는 특별법칙’이다.
사실 제자들이 3년반 동안 늘 이렇게 전도여행만 다닌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여름수련회 가듯이, 아마 어쩌다 한 번 이렇게 전도여행을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중에 본문에서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라고 하신 것은 ‘일반적 상황에서 적용되는 일반법칙’을 말씀하신 것이다.
특수한 상황이 아닌 평소에는
일반법칙, 자연법칙, 상식에 순응해서 사는 법도 배워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단기선교 갔다와도 아무 변화 없습니다!
무분별하게 떠나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도 과거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뭔가 봉사를 하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봉사를 아예 안 한 것보다는 나았지만
무엇을 하는 것이 저를 변화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변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늘 무엇을 하려고 했던 저의 과거를 후회합니다.
왜냐면 별 소득이 없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doing이냐 being이냐 둘 중에 선택해야 되는데
doing이 being을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그 반대입니다. being에서 doing이 나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면 어떤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게 너무 소극적인 생각이 아니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요..
그러면 우리가 먼저 된 교사로서, 약3:1
내 기독교 세계관을 먼저 정리하고,
내가 먼저 분투해서 싸워 이기는 삶을 살고,
그 다음에
‘내일은 환란과 유혹이기에, 어떠한 환란과 유혹이라도 견뎌낼 수 있는
학생, 성도로 준비시키는 것’이.. 오늘날 교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너무나 많은 고등학생들
‘방언 받았습니다. 단기선교 다녀왔습니다.’ 많이 이야기하지만,
고등학생들의 70%이상이, 졸업과 동시에, 교회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엔 ‘방언 받았습니다. 단기선교 다녀왔습니다’ 하는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죠.
대학교가서도 자기 믿음 못 지키는데, 무슨 마지막 날의 환란을 감당하겠는가요!
여러분, 정말 그 어떤 시대보다도
교사로서의 사명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