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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4~2005

사61장 4~9 여호와의 제사장

LNCK 2005. 12. 12. 08:43

만인제사장 설의 구약적 기원 - YouTube

◈여호와의 제사장         사61:장 4~9               출처

 

*부제: 만인 제사장설의 구약적 기원

 

사람들은 보통 만인제사장설의 기원을 벧전2:9절 하나만 알고 있는데,

아래 설교는 벌써 출애굽기와, 이사야61장에서부터 기원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1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절로 3절 까지는 메시야의 사역이 어떤 것이냐 하는 내용이고,

4절로 마지막 절까지는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해 구원받은 백성들은

어떤 축복을 누리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주전 700년경에 예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유명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개신교의(protestant) 종교개혁 원리를 설명한 것을

이미 이사야 선지자는 61장에 다 선포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제 1 원리는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황폐하고 윤리적으로 파괴된 교회를 다시 개혁하게 될 것인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개혁을 이끌어 갈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2 원리는 ‘전신자의 제사장 직분’ 입니다.

6절 말씀에는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을 직접 섬기는 제사장이 된다는 원리인데

이것을 루터는 전신자의 제사장 직분(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이라는

종교개혁의 위대한 원리로 선포 했습니다.

 

제 3 원리는 ‘이신칭의의 원리’ 입니다.

이사야 61장 10절에는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겉옷을 입고

천국에 당당히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의가 전가되어 죄인이 의인으로 된다는

이신칭의의 원리(Justification by faith alone)를

지금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원리, 전신자의 제사장 직분의 원리,

이신칭의(또는 이신득의)의 원리가 이사야 61장에 이미 명확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서 두 번째 원리인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1.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해석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라고 불리 울 것이라는 것은 신약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종교개혁가들이 부각시킨 원리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도 이미 이 원리를 구약에 예언했고 모세도 이 원리를 선포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5~6절에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기록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 약속 같지만

사도 베드로는 이 약속이 참 이스라엘인 신약의 교회에 적용된다고 해석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라고 기록되었고, 요한계시록 1장 6절에도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5장 10절에도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께서 이 말씀으로 설교하시면서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일이다.

둘째, 성도들의 명예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셋째, 성도들은 미래에 땅에서 왕 노릇 할 것이라는 겁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의 형인 레위지파 아론의 후손만이 제사장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약성서에도 이사야 선지자와 모세는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 될 때가 온다 즉, 참 이스라엘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될 때가

온다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인해 우리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는 진리를 신약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확증하고 있습니다.

 

 

◑2. 이 진리가 필요한 이유

 

첫째, 로마 가톨릭은 아직도 사제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된다는

‘사제 구원설(Sacerdotalism)’ 사상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상은 평신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반드시 사제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들에게 직접 오는 것이 아니라

사제를 거쳐야 온다는 것입니다.

 

이 제도는 로마 가톨릭이 자랑하는 7성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제가 성례전을 집행하면 하나님의 일정한 은혜는 성도들에게

자동적으로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례전을 거치지 않고 은혜가 온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신비주의 라고 분류했습니다.

이처럼 중세에도 신비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성례전으로는 은혜를 못 받았으나

하나님과 일대일로 직접 기도하다 보니 은혜가 오더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들이 종교개혁의 선두 주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지정된 종류의 은혜만 오는 것이고

그것들이 사제들의 성례전을 통해 자동적으로 온다는 원리가

로마 가톨릭 7성례의 기본 원리입니다.

 

이것을 ‘사효성의 원리(Ex Opere Operato)’라고 하는데

성례전이라고 하는 일을 통해서 정해진 은혜가 자동적으로 온다고 해서

‘事(일사)’ 자를 써서 사효성의 원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면 사람의 믿음에 따라서 믿음이 온다는 원리는 ‘人(사람인)’ 자를 써

‘인효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사람이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보다도

사제가 시행하는 성례전에 참여하느냐는 일에 따라서 은혜라는 효과가 온다고 하는

사효성의 원리를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영세를 받으면 자동적으로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견진을 받으면 성령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미사에 참여하면 은혜가 증가한다는 것이고

-고해성사에 참여하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며

-안수(ordination)를 의미하는 신품성사를 하면 교회가 영적으로 강화된다는 것이고

-혼인성사를 하면 교회가 숫자적으로 강화되며

-종부성사(extreme unction) 즉, 죽기직전에 사람의 몸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면

죽기 직전에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된다는 체계(system)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로마 가톨릭은 태어나면 영세를 받고 죽을 때 종부성사를 받으며

이 7성례를 가지고 평생에 구원을 주고 구원을 유지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참여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7성례를 사제가 실시하면 참여자에게 자동적으로 은혜가 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로마 가톨릭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에게 이것이 성서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마틴 루터가 사제 구원주의의 원리를 강력하게 반대했고

존 칼빈이 정죄했습니다.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95개 조항을 내건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구원이 사제에 의해서 오며 사제가 시행하는 성례전에 의해서

구원이 유지된다’는 사상에 대하여

루터가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평신도 사이에 마치 인도 카스트제도의 브라만과 같은 사제 계급이

존재해야 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로마 가톨릭은 “사제에게 가서 성례전에 참여 하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루터는 “회개하고 주 예수를 개인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시오”라고

대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로마 가톨릭과 루터의 차이는 비슷한 것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사제구원주의는 가장 사악한 악명이며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행하신 희생제도에 반하는 제도'

라고 강력한 비판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는 그리스도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하나님께로 가고 싶으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이외의 존재를 믿어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유일한 중보자는 그리스도 예수님 한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이제 누구나 예수님의 이름을 의존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 가톨릭이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지나도

교리를 바꿨다거나 성서적으로 교정을 하지 않고

여전히 그 교리를 유지하고 위세를 떨치기 때문에

우리가 이 원리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개신교 내에서도 일부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마치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있는

특별한 사제인 것처럼 자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사도라고 말합니다.

 

물론 목회자는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지만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도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는 것이고,

성도도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알기 때문에 기도를 해주고 하나님께 많은 기도가 올라가도록 하는 것일 뿐

목회자가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중재자나 영매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라거나 또는 직분이 높다고 가까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34편 18절에는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는 사람은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 했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구나’라며 자신의 죄로 인하여 슬퍼하고 마음이 상한 사람입니다.

 

이사야 57장 15절에도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는 사람은

마음이 진실하고 겸손하며 통회하고 영혼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아론의 후손만이 제사장이 되고 제사장이 제사를 드려야 사람들은

죄사함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구약의 제도입니다.

구약의 제도는 사제구원주의가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약시대입니다.

 

믿는 신자 모두가 제사장이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직접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을 신약성서는 명백히 증거하고 있고

이사야 선지자와 모세도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만 일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성도가 제사장으로서 영적인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육적인 제사는 필요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육체를 제물로 삼아

단번에 영원히 택한 백성들의 죄 값을 갚으신 제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이상 육적제사가 필요치 않고 영적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된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에는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우리가 드려야 할 제사는 신령한 제사 즉, 영적인 희생제사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령한 제사를 드리면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3. 제자장이 드려야 할 영적 제사

 

성경은 우리가 드려야 될 7가지 영적 제사를 말합니다.

 

첫째, 우리 몸을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헌신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몸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로 20절에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 값을 치루고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에다 술, 담배 등 몸에 해로운 것을 집어넣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너무 많이 먹어서 몸에 무리가 가게 하지 마시고,

몸이 아플 때는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료를 받아 우리 몸을 잘 관리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는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찬미 즉, 찬양이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리실 때 열심히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셋째,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편 141편 2절에는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손들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저녁 제사 같은 영적인 제사입니다.

기도안하는 사람은 제사를 안 드리는 제사장입니다.

 

넷째, 주의 일을 위해 재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에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요 3:16).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은 자꾸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구제, 선교, 예배를 위해서 드리는

영적제사에 참여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빌립보서 4장 18절에도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입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바울에게 헌금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예물을 드리는 것도 영적제사인 것입니다.

 

다섯째, 주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덕을 선전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 하는 전도를 말합니다.

이번 구정 명절에도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면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가며 부활한다는 것을 전하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명절에 제사지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제사지내는 것은 조상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성경이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 성령의 전인 우리가 귀신에게 인사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른 가족들이 제사지낼 때 ‘하나님, 귀신이 우리 집에 못 오게 하시고

귀신에게 엎드려 절하는 우리 가족들이 다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증거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족들 가운데 믿는 사람이 나오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섯째, 가정에서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가정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의미를 가진

'Focus on Family'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엘리 제사장과 다윗 왕이 자녀교육에 실패함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큰 문제가 생겼던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가 신명기 6장 6절로 7절에서 한 말씀을 기억해야 됩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라는 것은 신앙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교회에 안 나오면 야단 쳐서라도 교회에 나오게 해야 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 가정과 후대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믿음이 없다 할지라도 교회에 보내야 됩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철이 들면 인생을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닫고

교회에 나오게 됩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제사장으로 자녀들에게

신앙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일곱째, 직장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제사입니다.

칼빈이 말한 직업 소명설은 근대 이후 경제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막스 베버는 “칼빈이 말한 개신교의(protestant) 윤리가

자본주의를 일으켰다”고 말했습니다.

골3:장 23절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우리가 직장생활을 할 때 그 일을 하나님께 받은 소명으로 알고

하나님께 하듯이 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에서 ‘역시 강남중앙침례교회 다니는 성도는 달라’

라는 칭찬을 듣고 교회 다니는 성도를 추천하면 또 받아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직장일도 영적인 제사장으로 영적인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알고

성실하게 주께 하듯 수행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성도들 각자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교리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개신교의 축입니다.

그러나 이 교리는 이론만으로는 소용없고 실천을 해야 됩니다.

제사장이 놀고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가지 영적 제사를 기억하고

날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신령한 영적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