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부(富)에 대해 헷갈림 계2:9 편집자 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계 2:9)
▶2003년, 필리핀 세부를 여행하다가 사제 서품을 불과 2주 앞둔
가톨릭 예비 신부들 그룹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사제 서품을 앞두고 받은 특별 휴가라고 했다.
나는 농담조로 “지금이 장래를 결정하는 마지막 남은 기간이니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보라고 주는 휴가”라고 그들을 놀려댔다.
KFC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나누며 이런 저런 얘길 나누는데
우연히 자기들 allowance(용돈)가 한 달에 한국 돈 1만 원이란다. *500페소, 당시 환율로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한 내가 기회를 봐서 넌지시 물어본 것이었다.
한 달에 단돈 1만원(500페소)! 현지 물가를 감안하면 한국돈 약 5만원!
정식 사제가 되면 좀 더 많이 받겠지만, 그래도 너무 작았다.
나는 “여러분들은(일행 6명)은 성당에서 집도 주고, 옷도 주고,
밥도 주고, 더군다나 부양가족도 없으니 뭣이 걱정이요?” 라며
얼떨떨한 순간을 황급히 빠져나가려고 별 의미 없이 지껄여댔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의 말이 언제나 귀에 왱왱거린다.
“예수님은 공생애 단지 3년 사셨지만, 우리는 앞으로 평생이요!”
3년 가난은 참겠지만, 평생 가난은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필리핀 개신교 목회자도 만나보니 한국과 상황이 대동소이했다.
대부분 작은 미자립 교회들이 많았고, 주일헌금으로는
교회 임대료(월세)도 못 내는 곳이 많아서 아예 사례비는 없었다.
어떤 개신교 목회자가 했던 말이 역시 귀에 왱왱거린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 일년에 한 번이라도 오붓이
맥도널드에서 외식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맥도널드(대중 음식점)에서 일년에 외식 한 번 하기도 어려운 세상!
참기 어려운 가난이 아닐 수 없었다.
▶한 3년 만에 서울 교외 지역을 자동차로 돌아보니
과거 논밭이었던 곳에, 곳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유치원 아이들은 서로 “너네는 아파트 몇 평이냐?”를 스스럼없이 묻고
중고등학생들도,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평수끼리 논다고 한다.
그래서 아파트를 아직 보유하지 못했거나, 평수가 작은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못 받았다고 갈등하거나 불평할 수 있겠다.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계 2:9)
그런데 주님은 가난한 서머나 교인들에게 부자라고 치켜세우신다.
그리고 부자인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향하여는
“너는 스스로 가난한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책망하신다.(계 3:17)
뭐가 잘못된 것인가?
주님과 우리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보는 관점이 틀린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 5:7)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계속해서
불로 연단하여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고 하신다.(계 3:18)
이 금은 “믿음”을 뜻한다.(벧전 1:17 참조)
결론은 유구무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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