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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3장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LNCK 2006. 1. 11. 16:46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사야43:장          출처1,  출처2

 

42:장에서 새로운 일을 고하신 하나님은,

이제 새로운 일을 행하시겠다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언서는 이중 삼중적 계시가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예언이지만

이차적으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진 예언이며

삼차적으로는 마지막 때에 되어질 예언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 너는 두려워 말라           사43:1~7

 

택함 받은 자들이 왜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지, 3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나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1~3절)

 

▲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 성경은 ‘야곱아 너를’부터 시작하지만,

히브리어성경(영어성경들도 역시)은 ‘그러나 이제(but now)’로 시작합니다.

즉 앞에 나온 것과 반대되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직전 단락 42:18~25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으려고 하지 않고,

아무리 보여주어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속이 답답하여 터지기 일보직전입니다.

 

그 정도라면 우리는 뒤돌아서서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다시 위로하고 격려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but now 야곱아 너를..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은 앞장의 마지막 내용과 관계가 있습니다.

앞에서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심판의 하나님이 아닌 

소망의 하나님으로 알고 바라보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향하여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에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유다 백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상황적으로는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아직 끝이 아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2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

둘째,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시고, 당신의 소유를 삼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

 

▲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이는 극심한 위험이나 재앙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 은유로서(시66:12 참조),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익숙한 표현이었습니다.

특히 물 가운데로 지난다는 것은, 출애굽의 모티브와 연관됩니다.

 

‘물’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건넌 홍해나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건넌 요단강을 떠올리게 하고,

‘불’은 광야를 지날 때에, 한낮에 내리쬐는 작열하는 태양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처럼 물과 불은 문자적일 수도 있고, 극한의 환란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우리말에도 이것과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산전수전(山戰水戰)’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도무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고난의 산을 만나기도 하고,

결코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환란의 강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그 산을 넘게 해 주시고,

그 강을 건너게 해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심지어 다른 열방을 희생시켜서까지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고 하십니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바사 왕 고레스의 애굽, 구스, 스바 정복 계획과 연관됩니다.

하나님은 고레스에게 이 열방들을 공략하도록 허락하는 대신 

유대인의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을 돕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는 내 것이라”    :1

“네 구원자임이라” 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3

 

택함 받은 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관계성은 신뢰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나를 구속하였고 나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의 바탕에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세상에 그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지금도 조성하시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온전히 믿는다면.. 그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세상의 더러운 흙탕 물속이라 할지라도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세상의 험한 강을 건너며 살아갈 때

세상의 악하고 더러운 물이 나를 침몰시킨다 할지라도

절대로 나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의 불같은 고난 가운데서도,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온전히 의지한다면

그 어떤 고난의 불도, 나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여러분!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 되심을 믿으십니까?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을 속량물로 주었고

구스와 스바 까지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장차 이루어질 과거의 일은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일은 바사 고레스 때에 이루어졌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바사 제국에게 주었습니다.

 

실제로 바사의 군대가 이스라엘 땅에 진입한 것은

이스라엘 자체에 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애굽과 구스를 포함한 북아프리카를 정복하려고 하였습니다.

 

애굽과 구스와 스바는 BC 527년에 고레스의 아들인 캄비세스에 의해 정복당하여

바사의 한 주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택한 자를 위해서는 그 어떤 것을 희생해서라도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지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의지는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시어서 택한 자들의 속량물로 삼으신 것을 볼 때에도

택한 자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지를 택함 받은 자들이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택하심 받은 나를 속량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의지를

진실로 깨닫는다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 같은 천한 죄인을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는 사실을 진실로 깨닫는 자가 된다면

나의 앞에 태산이 있으면 어떻고 깊은 강물이 있으면 어떻습니까?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의지를 내가 확신했는데 그 무엇이 두려울 게 있겠습니까?  

  

세상이 주는 두려움에 잡혀 살아가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망이 나를 둘러치고 있다 할지라도 두려울 것 없습니다.                               

 

<둘째, 나는 하나님의 보배롭고 존귀한 자이기 때문에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4~6절)

 

▲4절,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내가 ... 사랑하였은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월등하게

선하거나 의로워서가 아니라, 오직 당신의 주권적인 사랑에 기인하여 그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하신 것입니다. (벧전1:7, 19 참조).

 

▲5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절,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하나님이 택한 자를 얼마나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잘해서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족해도,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는 다른 민족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애굽을 희생시키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택하심 받은 자들이라면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우리를 위해 세상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라도

지켜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택한 자들이 세상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모두 모이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중해 각지로부터

멀리 아프리카 인도에 이르기까지 흩어져 있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 같은 자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수많은 백성들을 앗수르 수도 니느웨로 끌고 가서 나라 전체에 분산시켰습니다.

 

바벨론에게 멸망 받은 남유다도 빈천한 자만 남겨놓고

모두 다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왕하24:14) “저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 일만명과

모든 공장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어찌 이 때뿐입니까? 헬라 제국에도, 로마 제국에도

멸망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디아스포라” 되어 전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흩어져서 떠돌아다니던 이스라엘 민족이

1948년 5월 14일 독립하여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토록 예수를 부인하던 유대인들은 지금 서서히 그 땅에 예수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고

생명을 바쳐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증가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상영된 “회복” 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유대인들은 서서히 예수가 누구이신지 자신들이 누구인지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또한 아무리 예수를 부인하고 땅 끝까지 도망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이 떠나지 않는 한 언제인가는

예수님 품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택한 자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이기 때문에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7절)

 

▲7절,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하나님의 창조 목적, 특히 땅 위에 그의 택한 백성을 두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이는 에베소서의 한 구절을 상기케 합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1:5, 6)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잘 들으세요.

우리가 보배롭고 존귀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원할 때 귀한 존재이지

만약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다면

하나님은 그런 자를 절대로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죽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세상 속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모습인데

그런 자에게 그 어떤 영광이 나타나겠습니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원수 마귀가 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미혹하고,

더 나아가서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두렵고 떨리게 해서 타협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먼 신앙생활을 하게 할 것입니다.

 

(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가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내가 누구이고 어떤 자인지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유다는 하나님의 증인이다.         사43:8~13

 

하나님은 재판의 형태로 이스라엘과 열방을 소집해 놓고

참된 구원자가 누구인지 밝히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으로 소환되었고,

열방들은 우상의 증인으로 소환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과 열방이 함께 소환된 상황에서

하나님은 먼저 열방을 향해 증언할 기회를 주십니다.

 

▲8절,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소경이요...귀머거리인 백성’

이 백성을 이방인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는데, 옳지 못합니다.

42:18, 19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9절,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히 이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본절은 법정적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으며, 열방이 다 모였다고 할지라도

장차 하나님이 세계 각처에서 이스라엘을 시온으로 모으실 것과

과거 이스라엘이, 열방들로부터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증인이란 없다..

라고 단언합니다.

 

열방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증언할 게 있어야 하는데 할 게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증언해줄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증언 할 자가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열방 민족들에게 소경이요 귀머거리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 받은 자들에게, 소경이요 귀머거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얼마나 많이 본 민족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못하고, 소경처럼 귀머거리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경과 귀머거리들을, 하나님의 증인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택함 받은 자가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회복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생명을 내놓고 예수를 전하는 증인들이 있는데

그들을 “메시아닉쥬” 라고 하는데 약 5천~2만명이 있습니다.  

 

▲10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스라엘은 오래도록 영적 소경과 귀머거리 상태였으나,

새롭게 회복된 다음에는 하나님의 증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증인으로서의 사명은, 구속함 받은 성도의 제1차적 사명이기도 합니다(행1:8).

 

▲11절,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문맥상 본문은 두 가지 뜻을 나타냅니다.

첫째, 10절의 '내가 그'라는 표현과 함께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 주권을 나타내며,

 

둘째, 이스라엘이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나타냅니다.

 

잘나고 똑똑한 자를 증인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소경과 귀머거리들을 부르시고 택하셔서, 하나님의 증인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세상에서는 잘나고 똑똑한 자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탕자 같은 자들을 더 사랑하시고 약하고 천하고 무식한 자들을 택하시어

증인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구원 방식입니다. (고전1:26-29)

  

▲12절,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 중에 다른 이 없었나니’                                                       주1)

이러한 비밀을 깨달았다면 이제 증인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12절에서 다시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고 또 다시 강조하십니다.

그렇게 나를 증인으로 삼으시고 택하신 자가 누구이신지 다시 강조하십니다.

13절의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3절, 과연 태초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모래처럼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택하신 하나님이 나를 증인으로 부르시고 택하셨는데

누가 막을 수 있고, 누가 그 일을 방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택하심 받은 자들은 담대히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진정한 구원자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담대하게 전하는

하나님의 증인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3.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사43:14~21

 

▲14절,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내려가게 하리라’

보냄을 받는 자가 생략되어 있으나, 문맥상 고레스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사와 메대를 통하여 바벨론을 치셨고,

그때 재난의 위경 속에서 탈출을 꾀하던 도망자들을 멸하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 바벨론의 귀족들은,

서로 먼저 도망치기 위하여 배에  오르기를  경쟁하며 아우성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경된 이스라엘을 증인으로 세울 것임을 말씀하신 후,

본 절에서 그들을 얽매는 바벨론 세력을 멸망시킬 것을 약속하시는데,

이 멸망 사건은, 과거 애굽을 멸하신 일을 능가하는 놀라운 일입니다.

 

▲15절,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창조자'란 특히 이스라엘을 택하사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셨음을 나타냅니다.

(고후5:17, 갈6:15, 엡2:10, 15, 4:24).

 

'너희 왕'이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사

영원히 통치하시겠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16절,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17절,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바벨론으로 사람을 보내어, 그들이 도망가도록 한 후에

택하신 자들을 인도하여 돌아오게 하는 새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150년 후에 바사 고레스를 통하여 이러한 새로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21절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우리 또한 바벨론 같은 원수 마귀의 손에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원수 마귀의병거와 군대를 무너뜨리시고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라고 소리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모두 다 이루셨습니다. 이러한 비밀을 깨닫고 믿는 자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이전 일...옛적 일’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16, 17절에 기록된 

애굽으로부터의 구원 및 그 대적의 멸망을 가리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영화가 흥행을 하고나면, 2편, 3편이 계속해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에 후편 영화를 광고하면서 이렇게 카피 문구를 넣곤 합니다.

“전편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바로 그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잊힐 수 없는 최고, 최대의 사건은 ‘출애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잊으라고 합니다.

더 엄청난 일을 행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에서는 바닷물을 가르셔서 길을 만드셨다면,

이제는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시고, 물이 없는 곳에다 강을 만드시는 것과 같은 일,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행하시겠다고,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19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행하실, 옛적 일(:18)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새 일에 대한 묘사인데

이 묘사가 그려내는 내용은, 메말라 죽어 있는 상태에 생명의 물이 쏟아짐으로써

다시 생명이 회생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때에

광야와 사막을 완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베풀어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이자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암시합니다.

 

▲20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들짐승...나를 존경할 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베푸실 은혜의 생수는 

심지어 들짐승들까지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이는 구속의 은총이, 택함 받은 백성들뿐만 아니라

피조계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암시합니다. (롬8:21).

 

42장에서 새 일을 고하신 것이 메시야의 구원을 선포하신 것이라면

43장에서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행하며 살 것인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탕자를 변화시키듯이, 반드시 그가 변화되도록.. 하나님이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19절에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되묻고 계십니다.

광야의 길이 나고 사막에 강이 생기듯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는 세상이 올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코 새로운 역사가 창조될 것을 알고 계십니까? 모르고 계십니까?

 

(계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는 일에 동참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놀라운 새 일을 행하셔서, 그의 백성으로 구원을 체험케 하시는 목적은,

그들로 하나님을 찬양케 하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증인의 사명과 그 맥을 같이합니다(12절).

 

7절에서도 언급하신 말씀을 또 다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고 있는 자는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아니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내게 사명을 주시고, 복을 주신 것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이 ‘오직 예수’ 신앙입니다.

오직 예수 신앙이 되어있지 아니한 가운데 나타내는 하나님의 영광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오직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하나님의 탄식            사43:22~28                 <탄식> 관련글 모음

 

▲22절,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 하였으며

 

‘너는 나를 괴로워하였으며’

-긍정적 해석으로는 ‘너는 나를 위하여 수고하였다’이고,

-부정적 해석으로 ‘너는 나에 대해서 피곤해 하였다’입니다. 

문맥을 볼 때, 후자의 해석이 합당합니다.

 

▲23절,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 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 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기본적인 제사 예물조차 드리기를 아까워하고 귀찮아하는

불신 상태에 대한 책망입니다.

이는 성전 마당만 밟을 뿐인 형식에 치우친 제사와  함께(1:11-14) 

이스라엘의 타락한 종교상을 꼬집은 말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가, 하나님께 흠향되어질 수 없다는 사실은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요4:23).

 

▲24절,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하나님이 제사 제도를 주신 까닭은,

하나님이 인생의 죄악을 사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제사는, 짐을 지우는 수단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스라엘은 그 의미를 망각한 채

제물을 바치는 의식 자체에 몰두하거나, 제물을 마련하는 비용에 연연함으로써

죄사함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였고, 이러한 죄의 짐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22~28절까지의 문맥은, 지난날에 이스라엘이 행했던 죄악을 지적하고

징벌을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용서와 사죄를 언급하는 본 절은, 다소 어색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죄악이 그토록 심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실현하시기 위해

곧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백성들을 회개시키시며

또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사죄의 은총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기 위해 삽입된 구절입니다.

 

▲26절,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서로 변론하자’

지금까지 진술된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지 그른지 따져 보자는 뜻입니다.

 

▲27절,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시조’(始祖) 

문자적인 뜻은 '첫 아비' 혹은 '이전 아비'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을 아담으로 보나

문맥이 이스라엘 전체의 죄악을 지적하고 있으므로,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이룬 야곱을 가리킵니다.

 

‘교사들’ 

문자적인 뜻은 '중재자', '해설가', '통역관' 등이며 

여기서는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특히 선지자들)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28절,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욕을 보게 하며'의 문자적인 뜻은 '더럽게 하다'이지만

'찌르다', '살해하다'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성소의 어른들'은 

1) 예루살렘 제사장들 중 지도급 인사들,

2) 이스라엘의 왕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들이 있습니다.

 

.....................

  

주1) ‘너희 중에 다른 이 없었나니’

여기 신(자르)는 '이방인', '낯선 자'를 뜻한다.

'자르'의 이러한 문자적 의미를 중시할 경우, 본 구절의 번역은 이와 같습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낯선 자(외인)가 아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 행사를 통하여 밝히 알려진 분이시지

결코 낯선 외인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구원을 예언하시고 실행하심으로써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충분히 계시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증거할 증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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