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11:1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행 25:23)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
▲1.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한 바울
아그립바 왕은 크게 '위의'를 베풀었습니다.
'위의' 라고 하는 것은 전통적인 의식을 할 때 갖춘 예식을 말합니다.
당시 가이사랴와 예루살렘의 최고의 귀족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총독 베스도 역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관복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호위하는 천부장과 백부장들 역시 화려하게 차려입었을 것이고,
그리고 번쩍번쩍한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 누구든지 이 자리에 들어오는 사람은
이러한 분위기에 압도를 당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휘황찬란한 장소에 한 죄수가 끌려들어 왔습니다.
그는 키가 작달막한 유대인 천막제조업자였습니다.
그는 쇠사슬에 결박되었고 옷과 외모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왕과 귀족들과 천부장 백부장이 입은 화려한 예복과 비교해 보십시오)
그러나 초라하게 보이는 이 사람 앞에
도리어 모든 사람이 압도를 당하고 있습니다.
쇠사슬에 묶여 있는 죄수가 오히려 지체 높은 양반들에게 큰 소리를 칩니다.
바울은 얼마나 당당합니까.
오늘 나는 높은 빌딩과 화려한 옷과 높은 지위에 압도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존경은 해야지만 압도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충만하고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까?
▲2. 나처럼 살기 바랍니다!
아그립바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행 26:29)
바울은 여기서 한 술 더 뜨고 있습니다.
그들의 지위와 복장과 세도에 전혀 눌리지 않았을 뿐더러
한 술 더 떠, 도리어 여러분들이 자기처럼 살기 원한다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아니, 자기처럼 출세도 못하고 가난하게 살아라는 것입니까?
정신 나간 발언이 아닙니까?
도대체 무엇이 바울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부활하시어 살아계신 주님이 자신을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전 생애를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바울이 행 26:18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먼저 예수를 만난 이후 어두움에서 눈이 뜨여졌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 인생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니
모든 것이 달리 보인 것입니다.
▲고무신 신고도 당당함
가나안 농군학교를 창설하신 김용기 장로님이 1988년도에 소천 하셨습니다.
지금 교장은 김범일 장로님으로, 둘째 아들입니다.
김범일 장로님은 어렸을 때부터 많은 일을 하고 자랐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고되게 일을 했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학교에 가는 것이 소원일 정도였습니다.
학교에 다니면 공부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니 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주장이 주경야독(晝耕夜讀)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늘 일을 했고 ‘언제 한 번 일을 안 해보나?’가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출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범일 장로님께서 가나안농군학교를 자원해서 맡게 된 계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무신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1966년에 김용기 장로님께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 상은 필리핀 대통령이 주는 것으로
당시 아시아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상 중의 하나였습니다.
수상식에, 통역을 겸해서 아버지를 따라 김범일 장로님이 동행 했습니다.
출국을 얼마 앞두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여쭈었습니다.
“아버지! 수상식에 참석하려면 옷도 한 벌 맞추고, 구두도 한 켤레 사셔야죠?”
그러나 아버지는
“신발은 무슨 신발? 신던 신발을 신고가면 되지!”
라고 말씀하시며 신발 바꾸는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시상식이 있던 당일, 수많은 사람들이 식장에 있었습니다.
기자들은 김용기 장로님의 신발을 비추고 플래시를 터트렸습니다.
아들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김용기 장로님은
자신이 고무신을 신고 온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은 농부라, 농사를 지으려면 고무신을 신어야 하기 때문이고,
대한민국은 몹시 가난하기 때문에 고무신을 신을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 고무신을 신지 않아도 되는
부자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소망해서
고무신을 신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연설을 듣고 난 후 모든 사람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갑자기 위대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바뀐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그대로 아버지입니다.
아들의 아버지를 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바뀌기 전에는 아버지가
고무신을 신고 수상식에 참석하는 것이 그렇게 싫었고 창피했지만,
눈이 열리고 나니 아버지가 그렇게 자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눈이 뜨여지자,
아버지의 일을 이어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김용기 장로님도 그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을 것입니다.
“고무신 신은 것 외에는 너도 나같이 살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처럼 살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어찌 아그립바 왕과 둘러선 고관들에게만 한 말이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들려 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소유한 자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자입니다.
돈으로 주고 살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가진 자들이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요,
승리한 인생이요. 성공한 사명자인 것입니다.
능력의 근원이 예수가 내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예수 없는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이 아무리 고관대작이고 부자고 지식인이고 스타라 할지라도
당신도 나처럼 살아라! 고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긍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인터넷 설교 중 발췌 06.02.12. *원제목: 나처럼 살아라
1966년 필리핀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김용기 장로는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이 지구상에 핵폭탄이 있는 한 인류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멸망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조물주의 지혜와 총명,사랑만으로 인류의 평화가 가능합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인류에게 빈곤을 몰아내자, 평화를 수립하자, 영생을 얻자는
세가지 구호를 높이 외치고 싶습니다”
★너도 나처럼 최용덕 작사, 작곡
나의 친구여 내 말 들어보렴 나의 이기쁨 알고 싶잖니
나의 친구여 내 말 들어보렴 나의 이 소망 알고 싶잖니
나는 무어든 할 수 있단다 내게 주어진 일들
가난한 것도 외로움것도 모두 참을 수 있고
견딜 수 없는 슬픔 있어도 다시 웃을 수 있어
내맘에 주님을 모신 이후로부터
나의 친구여 내 말 들어보렴 나의 이기쁨 알고 싶잖니
나의 친구여 내 말 들어보렴 나의 이 소망 알고 싶잖니
전엔 천국은 어느 곳에도 없다 말했었지만
이젠 이렇게 믿을 수 있어 주님 계신 천국을
우린 언제나 우울했잖니 아무 까닭도 없이
그러나 이제는 너도 나처럼 될거야
너의 맘속에 예수님 모시면 항상 행복해 너도 나처럼
항상 행복해 너도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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