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에게 존경받은 빈자의 친구 엡6:5 출처보기
그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었고, 예수파였다. 모두를 포용했다.
빈자들을 사랑하고 헌신적으로 그들을 돌보았지만 좌파는 아니었다.
또한 부자와 사회구조를 비판하지 않고 우파를 포용했다....
서구인의 이성적 판단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글을 번역하고, 올려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부자들은 마더 테레사에게 경의를 표시했습니다.
왜 세계의 부자들은 유독 마더 테레사를 그토록 사랑했던 걸까요?
대자본의 매스컴들은 왜 무수한 지면과 시간을 들여
그를 본받아야 한다고 야단이었을까요?
왜 자기 나라의 빈민들에게는 냉담하기로 악명 높은 저명인사들이
마더 테레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걸까요?
▲빈자들은 예상 밖으로 마더 테레사에게 크게 경의를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1백만 명의 빈민들이 길거리에 늘어서 그녀의 장례식에 애도하리라던
매스컴의 예측을 배반하고, 왜 실제로는 그 5%도 안 되었는가요?
가난한 이들은 왜 그의 은혜를 모르는 것일까요?
▲사회 구조를 혁명적으로 개혁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를 그토록 유명하게 한 감동적인 메세지는 무엇인가요?
왜 살아있는 성인이라 불렸으며 그토록 많은 인도주의 상과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가요?
장례식 전날 그의 후계자인 니르말라 수녀는 "가난은 아름답다"던
마더 테레사의 견해를 재확인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테레사는 가난의 원인이나 사회 환경을 바꾸는 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테레사에게는 "가난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었고, 따라서 그는 "가난을 올바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심을 믿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가난한 사회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투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세계 각지의 부자들이 다투어 찬양한
마더 테레사의 메시지였습니다; "가난을 받아들여라!"
그들 부자들에게는 참으로 거룩한 메시지로 여겨졌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정의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와 그가 켈커타에 세운 '사랑(Charity 자선)의 선교회'는 빈민, 죽어가는 이들,
또한 고아들을 돌보는 데에 자신들을 희생했지만,
그들을 조직하여 권리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게 하지 않았고,
의료, 교육, 최저임금, 노동조합 등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불가촉천민에 대한 카스트적 차별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유력한 부자들은 그를 사랑했습니다.
교황 바오로 2세는 그를 포옹했고,
바티칸의 국무장관이 그의 장례 미사를 주관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많은
해방신학의 신부와 수녀들은 가톨릭교회로부터 추방, 억압을 당해 왔습니다.
▲해방신학의 입장
토지 없는 소작민들과 가난한 도시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중남미 해방신학의
투쟁적인 신부와 수녀들은, '가난과 질병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마더 테레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가난의 원인은 인간의 필요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경제체제
이므로, 그들은 그 체제의 근본적 변혁을 위해 빈민들을 조직하고 지원합니다.
▲우파도 포용한 예수파
마더 테레사는 해방신학의 노골적인 반대자일 뿐만 아니라
아이티의 두발리에 같은 <독재자의 친구, 지지자>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도 교황 요한 23세와
60년대의 제2차 바티칸공회의 좀더 자유적인 사고에 대한 반대자로서였습니다.
아일랜드가 유럽 유일의 이혼 및 재혼 금지 헌법 규정을 철폐할 것인지
국민 투표를 했을 때에는 서둘러 달려가 가난한 아일랜드 여성들에게
'변화는 죄악'임을 강론하기도 했다.
▲좌파의 도시에서 非좌파적으로 활동함
'자선의 선교회'본부가 있는 켈커타는 약 3백 년 전에 영국 동인도회사가
세운 식민주의의 중심지이자 아편무역항이었지만,
그 식민주의를 끝장낸 폭발적인 민중운동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주민 1천 1백만의 공업 도시이자 인도 최대의 항구도시이며
주민의 약 3분의 1이 슬럼(빈민가)에서 살고
2백만 명 이상이 '홈리스'로 떠도는 빈곤의 도시로,
또한 인도에서 가장 크고 전투적인 노동자 계급이 총파업을 조직하곤 하는
저항의 도시입니다.
생활수준을 개선하고 부당한 사회에 양보를 강제할 가능성만 보이면,
수십만, 수백만이 거리로 나서 시위를 벌이곤 하는 도시입니다.
▲존경받는 테레사
이렇게 계급의식이 높은 도시에서 빈민들은 '가난을 받아들이라'는
마더 테레사의 메세지에 보내는,
특히 서방 언론의 갈채를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부자와 권력가들이 그를 '성인'으로 떠받들 때,
캘커타와 세계의 빈민들은 자신들의 가난을 축복하는 대신에
그것을 끝장낼 방도를 궁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Workers World http://www.workers.org/ 97.09.25일자에 실린 글 번역.
*관련글: “14. 기독교와 사회변혁”
바울의 사회변혁이 기존 체제의 무조건 부정이 아니라, 인정, 포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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