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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서>에 대한 2가지 오해

LNCK 2006. 4. 1. 08:21

◑성경 <여호수아서>에 대한 2가지 오해        수1:5~18      설교일부녹취

 

▲1. <여호수아서>는 그의 용맹한 리더십 모델이.. 그 주제가 아니다.

 

여호수아서 하면, 보통 우리가 가지는 제일 첫 인상은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하는 찬송가 가사처럼,

굉장히 용감하고 용맹스러운 군인 상이 떠오른다.

 

여호수아 하면, 그런 강한 군대, 용맹한 장군의 이미지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그의 진취적 자세와 업적..

말을 타고 진두지휘하는 용맹하고 노련한 장군의 이미지가.. 머리속에 그려진다.

 

그래서 <여호수아서>에 관한 책이나 설교는,

주로 리더십의 교본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여호수아서는, 어디에도 리더십의 매뉴얼(교본)으로서

여호수아를 소개하고 있지 않다.

 

<여호수아서>는, 뜻밖에, 굉장히 연약하고 불안한 인물로 그려짐으로써

수1장의 여호수아서가 시작한다.

 

1장 전체를 읽어보면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두려워말라, 강하라, 담대하라’이다.   1:6, 7, 9, 18절

그 외 구절들은, ‘강하고 담대하라’는 표현에 연관된 부속 구절들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는 메시지가,

1장 전체를 도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친구에게 ‘걱정하지 마. 두려워하지 마!’ 하고 말하는 것은,

그가 지금 심히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이다.

멀쩡하게 잘 있는 사람에게 ‘걱정 마. 두려워하지 마!’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우리가 기대하는 용맹스런 여호수아의 이미지와는 달리

‘아, 여호수아도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어떤 문제를 만나면 심히 두려워하고, 연약한, 힘듦을 느끼는 보통 사람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이와 같이, 성경은, 인간의 위대성에 초점을 맞춘 책도 아니고

‘이 사람을 본받아라’는 식의 위인전 식으로

그 사람을 본받는데 초점을 맞춘 책도 아니다.

 

성경은, 반대로,

오직 이런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와 비슷한 연약한 인간들을..

하나님이 그를 붙잡으셔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어떻게 드러내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호수아를 본받아라. 여호수아의 리더십은 어떤 리더십이었는가?’

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건 인간의 자기 관점이지, 성경이 말씀하는 관점은 아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위인전기, 이런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도, 자기도 모르게 ‘위인 전기’ 읽듯이 읽는 경향이 강한데,

성경은 그런 책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담고 있는 책이지, 인간의 ‘위인 전기’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성경에서 취해야 될 ‘인간에 대한 관점’이 있다면,

‘인간은 결코 자기 의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는 죄인이구나!’ .. 하는 관점이다.

모세, 다윗, 바울을 보면서.. 그 위대한 사람도 ‘원래는 죄인이구나!

그런데 하나님이 구해주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셨구나!’ 하는 관점이다.

 

우리가 모세, 다윗, 바울(여호수아 포함)을 통해서, 그들의 인격과 믿음을 배울 때가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예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서의 모세, 다윗, 바울이지,

<인간 모세, 다윗, 바울>은 아니다.

 

여호수아도 저와 여러분처럼

어떤 위기와 문제를 닥치면

그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스스로 초라해지며, 불순종이 있었고,

또 한 때는 우리가 똑같은, 보통 인간의 모습도 일부 보여준다.

 

▲2. 두 번째 오해는, 점령이 아니라, 순종이다.

 

‘가나안’ 하면, 천국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천국을 차지하는 방식에 있어서,

전쟁을 하고, 적극적으로 분투하고 싸워서, 이겨서 취해야 한다.. 는

그런 개념을.. 여호수아서를 통해 취한다면.. 그건 오해이다.

 

가나안 땅은, 여호수아가 싸워서 점령한 면이 있지만,

그 이전에, 그 땅은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땅이다.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순종해서 나아간 것이지,

뭘 적극적으로 얻기 위해서, 전쟁해서 나아간 것이 아니다. 

 

가나안 천국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순종해 가는가?

하는 싸움이 시작되는 땅이다.

 

이건 물리적인 힘으로 점령하는 곳이 아니다.

가나안이란 땅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땅이다.

 

그 땅은 점령해서 얻는 땅이 아니라, 순종해서 얻는 땅이다.

우리가 개념을, 분명하게 달리 해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자꾸 가나안을 점령, 싸워서 이기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또 자기 삶의 현장에서나/국내전도나/해외선교도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

 

일례로 직장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에서.. 고부간의 갈등에서,

여호수아처럼 싸워서 이기는 개념으로 기도하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처신한다.

이것은 오해이다.

 

※신약에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차지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 말씀의 1차적 의미도 ‘순종하는 식의 침노로 차지한다’는 식으로 이해해야 옳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그 구절을 ‘마귀의 세력이 천국을 침노하듯이 차지하는구나’

(너희들은 그래서 안 된다)는 식으로 반어법적으로 해석한다.

성경 전체 맥락에서 볼 때,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

 

아니다. 여호수아서는 그런 (적극적 사고방식 적인) 교훈을 주는 책이 아니다.

가나안은, 이미 약속을 따라 언약을 따라 주신 땅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천국을 차지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과 그 뜻에 <순종>해서 차지하는 것이지,

뭘 발로 밟아나가서, 싸워 이겨서

자기 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그 1차적 뜻이 결코 아니다.

 

가나안에서 땅은 얼마나 우리가 철저히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순종하느냐를 드러내 보여주는데, 가장 적합한 책이다.

‘리더십’에 관한 책이 아니고, ‘적극적 사고’에 관한 책도 아니고,

순종에 관한 책이다.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우리는 그의 정복활동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순종해서 나아갔나.. 를 보아야 한다.

 

◑여호수아의 두려움은?

 

과연 여호수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그 두려움, 연약함은 과연 무엇일까, 살펴보고자 한다.

 

▲1. 모세가 누구인가? 이스라엘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여러분이 아직 어리고, 대학생이고, 가정을 꾸려나갈 처지도 안 되었는데,

갑자기 가장이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상상해 보라.

 

모세가 소천하고 나서, 그런 비슷한 충격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던 것이다.

 

모세는, 성경에 보니까, 시름시름 앓다가 죽지 않았다.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신34: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120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는데, 모세는 왜 갑자기 죽었는가?

자기 임무/사명이 다 하였기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어쨌든 백성들이나, 후계자인 여호수아 입장에서 볼 때는,

졸지에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이다.

자 이것이, 백성들과 여호수아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던 두려움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나?’

이 엄청난 가나안 점령이라는 대과업을 앞두고, 이제 어떻게 하나, 우리는 큰일 났다

하는 두려움과 근심에, 그들은 사로잡혔던 것이다.

 

▲2. 여호수아가 두려워했던 두 번째 이유는,

여호수아만큼, 모세의 처절한 고통을 함께 했던 사람은 없었다.

누구보다도 이 백성들의 아주 못된 악한 모습을, 참모로서 옆에서 쭉 지켜보았다.

‘그 백성들이 얼마나 모세를 힘들게 했든지..’

 

수가 틀리면 돌맹이 던지며 협박하고, 도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난리 치고,

이것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다 겪었던 사람이 여호수아다.

졸지에 이 백성들을 자기가 떠맡아야 했다.

 

모세가 한 때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제가 이 백성들을 낳았습니까?’ 하며 하소연했다.

 

이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봤던 여호수아의 심정은,

이 백성의 완악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여호수아는,

급작스런 모세의 죽음 앞에서

댕그라니 남겨진 백성들을 보고,

 

또한 점령해야 될 가나안 땅은,

철옹성처럼 강한 군대로 조직하여 기다리고 있는 땅이었다.

쉽게 점령할 수 있는 허수아비 같은 성이 아니었다.

 

어찌 여호수아인들, 그도 보통 사람일진대, 두렵지 않았겠는가!

이런 여러 가지 두려움이 밀려 들어왔다.

 

아마 지금 이 가운데도, 대학교 졸업은 앞에 두고 있는데,,

아무 길이 안 보인다는 청년들이 많을 것이다.

자기 스펙도 시원찮고, 집안이 빵빵한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고민이 한꺼번에 몰려 올 수가 있다.

 

또 30~40대는 사회에서 아래 위로 치이는 세대이다. 뭐 되는 일이 별로 없다.

애들은 커 가고, 나이는 급속히 먹어 가고,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고,

얼마나 힘드는가. 이럴 때, 여호수아의 심정 같지 않겠는가.

 

그래서 1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강하라.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를 떠나지 아니하겠다.’

이 단어들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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