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이 시대의 영웅 뉴스위크 기사 스크랩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그때 내가 대답하였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사6:8
군의관 재딕 소령(앞줄 왼쪽 두번째)이 이라크에서...
*"병사를 살리려고 지옥에 뛰어들다. on Call in Hell"
(뉴스위크 2006년 3월 22일판) 발췌, 요약
▶개요
리처드 재딕은 평범한 군의관으로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하루아침에 덜컥 이라크 파병 군의관으로 지원했다.
2004년 여름부터 그가 이라크 팔루자 지역에서 펼친 부상병 치료 활동으로
적어도 30명의 미군들이 죽을 목숨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이라크 전체 복무 기간은 2년인 듯)
그에게 특이한 점은, 부상자를 기다리지 않고 찾아간 의료방식이다.
부상병들이 병원에 후송되어 오기 전에 이미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는 전선 한 복판으로 뛰어 들어갔다.
날아오는 총알 사이에서, 그는 부상병들을 치료했다.
그래서 죽을 목숨들을 살려 낸 것이다....
▶이라크 군의관에 자원하다
리처드 재딕 Richard Jadick 은 미군 군의관 비뇨기과 전문의였다.
이제 소령이 된 그가 하는 일은, 주로 신병을 뽑는 업무였고
만 38세 나이로 봐서도,
일선 전투 현장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하기에는 약간 늙은 나이였다.
그런데 이라크에서 군의관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그에게는 결혼한 부인 멜리사(소아과 전문의)가 있었고
그 부인은 첫 아이를 임신해서 9개월째 되던 때였다.
“누구를 보내야 하느냐?”고 부대 의무위원회가 물었을 때
그것은 재딕에게 이라크로 보낼 하위직 군의관을 추천해 달라는 뜻이었다.
재딕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내가 가겠소!”
(그는 차마 부하를 이라크 전쟁터에 보내기 싫었던 것일까...?)
뉴스위크 誌는 이 기사의 머리에 이런 성경 구절을 달고 있다;
"Whom shall I send? And who will go for us?"
And I said, "Here I am. Send me!" 이사야 7:8
▶이라크 팔루자로 떠나다
2004년 여름, 첫 아이가 태어난 지 닷새 뒤에
재딕 소령은 이라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재딕이 배치된 곳은, 이라크에서도 가장 저항세력이 거센 팔루자 였다.
그곳 지휘관 브랜들 중령은, “우리는...악마들과 싸운다!”라고 말할 정도로
저항 세력의 공격에 피해를 입어 이미 절반 미쳐 있었다.
▶후송하기도 전에 죽는 군인들
재딕이 현지에 도착해서 파악한 것은
부상당한 군인이 한 시간 내에 병원에 후송되어 수술을 받으면
(팔 다리가 잘려도) 목숨은 건질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전투 중에 발생한 부상자를
즉시 야전병원에 후송할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헬기는 격추될 위험이 컸고,
교전의 치열한 현장에서,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부상자를 실어 나를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부상당한 군인은 6분~15분 사이에 현장에서 죽어나갔다.
동맥 출혈의 경우엔 단 3분 만에 죽어버렸다.
▶지옥의 현장으로 뛰어들다
보통 의무대나 의무병은 전선과 떨어진 후방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이런 시스템을 과감하게 바꾸었다.
그는 8연대 1대대 의무병 54명을 데리고, 팔루자 인근 최전선으로 들어갔다.
무전이 왔다. 해군 특전대원이 부상했다는 것이다.
그는 교전 현장(부상 현장)으로 엄호병과 함께 직접 찾아 갔다.
사방에 총소리가 난무하고, 화약 냄새와 연기가 자욱했다.
골목길을 갈 지(之)자로 달리면서
부상당한 군인이 누워있는 곳으로 직접 달려갔다.
그는 신속히 응급조치를 취하고, 들것에 실어 부상자를 옮기게 했다.
다시 무전기가 지글거렸다.
시내 중심가에서 해병대원 두 명이 기습공격을 받아 부상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다른 교전 현장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앰뷸런스를 타고 갔다.
총격은 점점 더 가까이에서 들렸다.
적의 로켓 포탄이 앰뷸런스를 한 방에 날려버릴까봐 내내 걱정이었다.
그는 ROTC 복무 경력도 있고, 해병대 통신장교로 근무한 경력도 있었지만
실제 전투를 접해보니 “겁이 나서 죽는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울고 싶었다. 자신이 겁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 전진해야 하는데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망설였다. 돌아가 버릴까...”
그런 갈등끝에 그는 앰뷸런스에서 내려 다시 몸을 숙이며 달려갔다.
엄폐물 뒤에 누워있는 부상병에게로 갔다.
한 병사가 총에 맞아 허벅지 쪽이 열려 있었다.
그는 급하게 출혈을 막고 소독을 했지만, 더 이상 그를 돌볼 수 없었다.
더 급하고 더 위독한 다른 부상자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숨넘어가는 사람은 아예 포기하고
약간 경상을 당한 사람은 무시하고
그 시간에 나머지를 구한다'는 개념은 말이 쉽지 막상 실천은 너무 어려웠다.
Forget the mortally or lightly wounded, Save the rest!
부상자를 치료하는 순간에도 총알이 주위를 날아다녔다.
그러나 자기의 죽음보다, 그 순간에는 부상자의 죽음이 더 걱정이었다.
이제 부상자를 앰뷸런스에 태우고 돌아가려는 순간
끼익 소리가 나더니 로켓포 한 발이 차 지붕을 스쳐 지나갔는데
다행히 터지지는 않았다. 불발탄이었다.
앰뷸런스 안에서도 응급조치는 계속되었다.
차는 부상병들의 피로 흥건했다.
안타깝게도 차 속에서 숨을 거두는 군인도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의 군복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다른 험비 지프차가 도착하더니
다리에 총상을 당해 온 몸이 형광등처럼 하얗게 질린 군인이 누워있었다.
벌써 몸에 피가 절반 이상 빠져나간 현상이었다.
어떤 때는 놀라운 보람도 있었는데
부상으로 의식을 완전히 잃었던 군인이 후송되어 와서,
주사를 맞고 치료를 받은 후에
점차 회복되어 눈을 뜨고 되살아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군인이 전선에 재투입되어
결국 전사하는 일도 있었다.
▶재딕 소령은 전투 현장에 좀 더 가까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앰뷸런스를 무장시키고, 거기에 좀 더 많은 의약품을 실었다.
그리고 팔루자 시내 낡은 건물로 이동해서 즉석 야전병원을 차렸다.
사상자 행렬은 아침부터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의료 기구를 제대로 소독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창문 바깥에선 계속 총알이 날아다니는 소리, 박격포 터지는 소리가 났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적응이 되어 차츰 무감각해졌다.
수류탄 파편에 얼굴을 맞아 턱과 입 부분에 구멍이 뻥 뚫린 병사
머리에 총을 맞아 두개골이 파손되고 눈알이 튀어나와 매달려 있는 병사
(안타깝게 그는 조치도중 죽었다.)
그래서 시신이 쌓여가기도 했다.
총알이 헬멧을 뚫었지만 살짝 머리 피부만 스친 운 좋은 병사도 있었다.
▶팔루자는 드디어 2004년 12월 중순 경에 안정되었다.
팔루자 전투는, 베트남 전 이래로 미군의 최악의 시가전으로 꼽힌다.
해군 특수부대원이 적어도 53명 이상 숨지고
이라크 저항세력도 약 1천6백 명 가량 숨진 것으로 집계된다.
재딕은 다음 해 1월 중순에 청동무훈 Bronze Star 훈장을 받았다.
▶타인을 살리려고 죽음의 전장 터로 스스로 뛰어든 재딕의 용기는
오늘날 우리가 꼭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할
십자가 정신, 즉 희생정신의 영원한 모델 이다.
그가 크리스천인지, 아닌지 여부는 기사를 통해서는 알 수 없지만
만약 크리스천이 아니면
크리스천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요,
크리스천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그에 관한 다른 기사와 사진을 찾기 무척 힘들다....
진정한 영웅의 또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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