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에 대한 송사 신 19:15~19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딤전 5:19~20
▲해석1 : 범죄한 자들 = 장로로 본다.
장로는 오늘날의 장로보다, 목사에 더 가까운데
범죄한 목사는,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이것은 전통적 해석이다.
▲해석2: 범죄한 자들 = 위증자로 본다.
①이렇게 보는 이유는, 문법적 ‘수(數)의 불일치’ 때문이다.
본문의 장로는 ‘단수’인데, ‘범죄한 자들’은 복수이다.
문법적으로 ‘수의 일치’가 일어나지 않는다. → 두 개가 동일체가 아니라는 뜻.
(헬라어는, 국어와 달리, ‘수數의 일치’가 문법적으로 매우 엄격하다.)
바꾸어 말해서 ‘수의 일치’가 일어나려면, 곧 ‘장로 = 범죄한 자들’로 보려면,
19절 서두가 장로들(복수형)이 되든지
20절 서두를 ‘범죄한 자’(단수형)로 고쳐야 한다.
어쨌든 ‘수number의 일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본문은,
장로(an elder)는 - 단수이며,
범죄한 자들(them )은 - 복수이다. ‘수의 불일치’이다.
그러므로 ‘범죄한 자’는 - ‘위증자’를 가리킨다는 주장이다.
문맥상으로 그렇게 볼 수 있다.
②최근에 성경을 읽다가 신명기의 병행 구절을 발견했다;
(그 발견이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 동기)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 신 19:20
이 구절은 전체 문맥을 보면 위증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신 19:15~19
이 신명기의 말씀은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는
딤전 5:20절 말씀과 병행된다고 볼 때
그렇게 보는 이유는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가 동일하게 나오기 때문.
이것은 ‘장로’보다는 ‘위증자’에 대한 경고일 가능성이 더 크다.
(성경은 성경으로 푼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해석이 맞는다면,
‘모든 사람 앞에 공개적으로 꾸짖을 사람’은, 장로가 아닌, 위증자인 것이다.
(지금까지 성경해석학적 관점이었음)
▲이 해석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다른 신학서적을 참고 못 했음)
어쨌든 장로든지, 위증자이든지 모두 조심해야 하겠다.
그런 생각(위 글)을 하면서 신명기를 계속 읽어 가는데, 이런 구절이 나왔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리암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찌니라 신 24:9
인간적으로 모세는 비난받아야 마땅했지만
하나님은 지도자 모세를 보호하셨다. 미리암이 좀 심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다윗도, 베드로도, 바울도 다 보호되어졌네...
참, 성경은 ‘기름부음 받은 자 치기를 금함’을 장려한다.
인간의 이성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성으로 다 알 수 없는, 신중해야하고 조심해야 하는 여지가
신앙 세계에는 반드시 있다.
▲성경의 일관된 원칙은(예외도 물론 있다)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실 때, 대개 악인을 들어 사용하신다.
의인을 들어서, 악인을 심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심판자의 자리에 서는 것은 - 내가 버림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두고 보시라! 그가 아무리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내 손에 심판받은 후에, 그 다음차례는 내가 심판받을 것이다.
저는 과거에 그런 실패를 몇 번 경험했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너무 정의로운 나머지, 심판자의 입장에 스스럼없이 서는
그런 위험한 일을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약 자기에게 예수님 정도의 도덕성이 있다면, 겁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심판한 그대로 심판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 <김지윤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http://blog.daum.net/bible3/8002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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