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로 키우자 (삼상 3장 1-11)
◑1. 말씀이 희귀한 당시 상황
그 시대적 상황은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고 흔히 보이지 않더라. 삼상 3:1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다는 말은 - 희소가치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듣지 못했다.
그리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삼상 3:1
이 때, 이상은 비전이라는 영어로 번역되어 있다.
In those days, the word of the LORD was rare; there were not many visions.
▲말씀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
시대가 그렇게 된 가장 깊숙한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가?
왕이 없어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왕이 없는 것은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
(오늘날에도) 정치를 잘못해서 그렇다 하지만, 이 또한 증상에 불과하다.
진짜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비전이 그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순간
사람들은 각기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영적인 암흑기, 영적인 춘추전국시대가 된다.
우리 시대를 묘사하는 것 같지 않은가?
잠언 29: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하는데
영어로는 people perish 백성이 망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한국에, 하나님의 메시지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비전들이
이 땅을 잘 몰고 가는 힘의 원동력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교회도 많고, 종교적인 모임과 대회도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지만
그래서 말씀은 많은 것 같은데
진정한 여호와의 말씀의 선포와 하나님의 비전의 나타남들이
오늘 우리 사회에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이 사무엘 시대 뿐 아니라 이 시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당시 영적 지도자의 상황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아...’ 삼상 3:2
이것은 엘리의 신체적 퇴보를 말하는 것 같지만,
당시 그의 영적 상태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무엘을= 말씀의 회복을 기대하자
그 상황에서 소년 사무엘만이 어두운 세상에 가느다란 빛처럼 비추고 있다.
그래서 사무엘 3장의 말씀은, 어두운 시대에 소망의 말씀이다.
우리 시대에도 사무엘처럼, 말씀의 회복이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란다.
저는 여러분이 사무엘과 같은 존재가 되길 기도한다.
여러분의 자녀가 사무엘과 같은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을까.
3:1절에 이미 그 절망 가운데 소망의 말씀이 제시되고 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
오늘 저는 사무엘이 반응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깊이 생각해 보고 싶다.
◑2. 사무엘의 포지션(서 있는 자리) : 여호와 앞에
사무엘의 포지션은 여호와 앞에서 섬기는 포지션이었다.
삼상 2장 11-12절 말씀을 보면,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포지션을 갖고 있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 섬기는 것을 우습게 알았던
시대에,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다.
삼상 2:18, 참고 3:1
이것은 조류를 역류하는 자세였다.
사무엘은 꾸준히 여호와 앞에서 세마포 에봇을 입고 섬겼다고 표현한 것은
사무엘의 가치관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부모 여러분, 이런 기도를 하시기 바란다.
세상에서 왕따 되어도 좋으니까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것이 자기의 포지션이라는 것을
깨닫는 아이가 되게 해 주옵소서, 사무엘처럼.
여러분의 자녀는 누구 앞에 섬기고 있는가?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섬기고 있지는 않은가?
학원 강사 앞에서 입시라는 제사를 드리며 섬기고 있지 않는가?
▲사무엘이 이렇게 하나님을 잘 섬긴 가장 큰 요인을 살펴보면..
- 자기 부모를 따라 했다.
성경에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 번제 드릴 때,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그 때 꼭 한나와 엘가나가 나타나고 있다.
사무엘은 아직 사춘기를 맞이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지켜봤던 것이다.
예배 때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예배에 오셨어.’
이것을 사무엘이 알고 있었다. 그 부모의 신앙을 따라서
자기도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포지션을 지켰던 것이다.
부모가 지키는 포지션을 사무엘이 지킨 것이다.
여러분이 예배에 참석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리는 모습은
자녀들에게도 같은 가치관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엘리 제사장의 가족들과는 대조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습관적 신앙도 필요하다
사무엘이 이렇게 여호와 앞에서 섬길 때
사무엘은 아직 영적으로 거듭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 드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은 아직 없었다.
사무엘은 그냥 삶의 습관과 패턴이 신앙적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깊은 의미 없이 교회에 다니는 우리 자녀들과 똑 같다.
그냥 세 살적 습관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요지는, 그런 습관적 신앙이 -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직 인격적으로 못 만난 아이라 할지라도
꾸준히 습관적으로 예배드리고, 성경 읽으면 →사무엘처럼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 자녀에게는, 부모 믿음의 유산이 전달되는 것이다.
▲사무엘처럼, 어릴 적부터 훈련시켜라
이것은 꾸준히 하셔야 된다. 사무엘처럼 어렸을 때부터,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하셔야 된다.
아이가 너무 어리니까...“괜찮아, 너는 예배 안 드려도 돼, 나가 놀아!”
그러지 마시라!
◑3. 사무엘의 자세 : 공경, 경청
사무엘의 위치(포지션)가 하나님을 섬기는 위치였다면
그 자세(스탠스)는 깨어서 부르심에 공손히 반응한 것이었다.
사무엘은 비록 아이였지만 깨어있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삼상 3:3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뜻은 무엇인가?
성막 안 휘장 밖에는 등불이 있었다.
이 등불은 밤새 켜져 있었고, 아침에 동이 트면 등불을 껐다. 출 27:21
그러므로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다’는 - 새벽이라는 뜻이다.
아마 사무엘이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워 잤던 이유는
동이 트면, 그 등불을 끄는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사무엘의 이런 성실함이 본문에 담겨있다.
그런 매일같이 불편한 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날로 치면, 여기서 새벽기도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에게 - 동 트기 전, 새벽에 임했다.
▲새벽에 말씀이 들린다
‘나는 새벽에 못 일어나요!’ - 사실은 자기가 안 일어나고 싶은 것이다.
못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기 가치관이 ‘굳이 일어날 필요 있나?’
- 그러면 못 일어난다.
아침형, 저녁형 등 생체 리듬도 있겠지만,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여러분에게 도전을 드리고 싶은 것은
새벽형 인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침 일찍 일어나 더 많은 일을 하자 - 는 것 보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 는 데 있다.
꼭 교회에 까지 나오라고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시면 한 시간을 성경 읽고 기도하며
주님과 먼저 교제하는 시간을 제일 먼저 가지신다면
여러분은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그런 시간을 가진다면 더욱 좋겠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까지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무엘이 음성을 들었던 이유 - 권위에 대한 공경심
조금 머리 큰 십대 자녀를 두신 분들은 이 말을 잘 듣고 전달해 주시라.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전제조건이 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 - 못 들을 뻔 했다.
그는 세 번을 듣고도, 그것이 하나님 음성인지 몰랐다.
엘리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못 들었을 것이다. 삼상 3:9
여러분, 내가 사무엘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자.
지금 사무엘이 십대, 요즘의 중, 고등학생 정도 나이라고 보는데
그 당시 밤에 자는데, 새벽 3시에 자기를 부르는 음성이 들린다고 하자.
마음속에 ‘엘리 제사장이 부르나보다’ 하는 마음이 들어도
아마 계속 자는 척 할 것이다. 잠이 많은 한창 성장기 때,
새벽에 깨어 일어나는 것은 얼마나 고단하겠는가!
그런데 사무엘은 세 번 씩이나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를 부른다고 생각한 엘리 제사장에게로 군말 없이 갔다.
사무엘은 진정으로 권위를 공경하고 인정했던 아이였다.
▲여러분은, 기도하시며 자녀 양육하실 때
이런 사무엘의 모습을 기대하셔야 한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어떠한 영적 권위에 기꺼이 순종할 줄 알았다.
아마 세 번 부름 중에 한 번 정도만 뛰어가서 “부르셨습니까?” 응답했다면
예의 바른 아이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엘리가 반복적으로 지겹게 세 번씩이나 불러도
군말 없이 그의 처소로 달려갔던 ran 것이다. 그 새벽에! 삼상 3:5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공경하는 마음=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조건이다.
이것은 부름에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공경하는 것은 -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하나님을 공경 안 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무반응’ 이라는 경솔함이 있다.
새벽이 아니라, 낮에 정신 말갛게 깨어있어도
부모가 부르는데 전혀 대답하지 않는 아이들!
이런 우리 아이들의 ‘무반응의 경솔함’이 →사무엘처럼 바뀌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 -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목사님이든지 부르시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부르셨어요?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대답 = 책임감 = 공경
responsiveness = responsibility = respect
사무엘은 반응하는 아이였다.
영어로 대답, 반응을 responsive(ness) 라고 한다.
이것은 책임감 responsible(-sibility) 과 어원이 같다.
즉, 부르면 잘 대답하는 아이가 = 책임감 있는 아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무엘은 책임감 있는 아이였다.
자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고,
그런 반응과 책임감은 또한 공경심respect에서 나왔다.
▲주의 종을 공경한 사무엘
엘리가 좋은 제사장이 아니었다는 것 - 우리가 너무 잘 안다.
그러나 한나도 바르게 인도해줘서 - 기도응답 받게 해 줬고
사무엘도 바르게 인도해줘서 - 바르게 주님 음성을 경청할 수 있게 했다.
엘리 같은 불성실한 제사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제사장도
여러분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여기 저기 돌아다니지 마시고, 하나님이 보내 주신 그 곳에서 충성하자.
◑4. 말씀의 회복을 사모하자
저는 오늘 말씀의 핵심을 여기서 찾는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신다.
사무엘은 처음에는 잘 깨닫지 못했지만, 4번째 그 음성에 반응하게 된다.
저는 이것이 ‘성경적 하나님의 계시의 패러다임(표준)’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라고 잘 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며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요 1:1
이렇게 우리는 태초부터 하나님=말씀으로 이해하고 있다.
마지막에도 예수님은 내가 속히 올 것이다 말씀하시고
성도들은 마라나타 오 주여 오시옵소서 반응했다.
그렇게 태초에 말씀으로 시작했다가, 계시록에서 말씀으로 끝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그 말씀은 반드시 반응(사무엘의 선포, 백성의 순종)을 나타낸다.
이것이 계시의 패러다임이다.
말씀이 임하기만 하면, 그 말씀은 헛되지 않고,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역사를 이룬다.
*말씀이 임함 → 말씀의 선포 → 말씀에 순종이 순차적으로 일어난다.
▲사무엘이 받은 축복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삼상 3:19
이것이 사무엘이 누린 축복이다.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제대로 선포되는 복이다.
말씀 회복의 복이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잣대는 무엇인가?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요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거기에 있다.
말씀 선포가 제대로 일어나고, 그것에 반응하게 될 때
거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신다.
▲사무엘이 한 것은, 그 말씀에 귀 기울였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10
오늘도 이렇게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말씀의 회복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사무엘과 같은 마음으로
또한 우리 자녀들이 어린 사무엘처럼
성실하게 자기 자리(직분)를 지키는 포지션(위치)과
말씀을 경청하려는 스탠스(자세)와
그 말씀을 그대로 가감 없이 전달하려는 액션(실천)을 가지면
자기 개인의 삶에 여호와의 말씀이 회복되고
그가 속한 교회와 사회에 여호와의 말씀이 회복되어져서
영적 암흑기(사사기)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여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는다.
<인터넷 설교 정리, 06.05.21. *원제목 : 성경적 자녀양육 ③
http://febc.febc.net/formation/formation.php?pid=357&p_name=past_broadcast&from=febc.febc.net
[주제별 분류] 행복한 가정 http://blog.daum.net/bible3/8483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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