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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97:1-12 누울 자리 본 뒤 다리 뻗고 살자

LNCK 2006. 5. 30. 19:16

 

◈누울 자리 본 뒤 다리 뻗고 살자              시97:1-12               -09.07.13.설교스크랩-

 

▲2절,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처소에 대한 언급이 나와요.

그런데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다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로서는 막혀있습니다.

접근이 금지되어있고 비밀에 감추어져있고 신비 속에 가려져있습니다.

 

구름과 흑암 속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지각이 내 삶을 다스리시고

내 삶을 하루하루 구체적으로 가정의 일이나 학교 일이나 교회 일이나

하나님의 다스림은 계속되는데

그 다스림의 계획이 우리한텐 비밀에 부쳐져있고

우리의 지각으로 우리의 인식으로 붙잡을 수 없게 돼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통치계획,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계획들이 알려지지 않고

하나님이 흑암 속에서 구름 위에서 계획하신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알 수가 없어요.

 

양들이 목자를 그냥 따라가는 것처럼

목자가 무엇을 구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데 그냥 따라가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실 때

우리를 향하신 통치계획들은 내일 일조차도 우리는 몰라요.

 

그러니까 불안하잖아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실까?

혹시 나에게는 좀 안 좋은 일을 계획하고 계시는 건 아니실까?

 

▲2절b,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우리의 지각으로 알 수 없고

흑암과 구름에 둘러쳐져있어서 접근이 금지되어있는 통치자의 계획,

통치자의 계획을 수립하는 그 장소, 보좌, 접근금지에요.

 

그러나 염려할 거 없다는 것이에요.

의와 공평이 그 보좌를 둘러치고 있기 때문에.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기 때문에.

통치하시는 임금님이 앉아계신 보좌는.. 그 기초가 의와 공평이에요.

 

의와 공평이 뭡니까?

<의>는 창조 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뒤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보시기에 좋은 것'이 <의>에요. 하나님 마음에 드는 것이 의에요.

'하나님 마음에 안 드는 것,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 그게 <불의>에요.

 

그러므로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보기에 좋은 식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게 아니라

당신이 보시기에 좋은 식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 <의>입니다.

 

그리고 <공평>이라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다’ 라는 그 말을

모든 개인에게 똑같이 적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 A집사님은 돈이 많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왜 이렇게 불공평하게 다스리십니까?

아, 돈이라는 게 내가 쫓아가서 되는 게 아니고

돈이 나를 쫓아와서 벌린다는 속담도 있는데

그러면 왜 저 사람에게는 돈이 쫓아가게 만들고

나는 돈이 안 쫓아오게 만듭니까?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따지잖아요. 이게 잘못된 거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내게 돈이 없이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어요.

그래서 내게 돈을 안 주십니다.

A집사님에게 돈이 많이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좋다는 그 기준만큼은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이게 공평이지

나도 돈이 있고 너도 돈이 있어야 되는 게.. 공평이 아니고

내가 좋은 대학 들어가고 너도 들어가야 되는 게.. 공평이 아니라는 겁니다.

 

▲3절, 불이 그의 앞에 나와서 사방의 대적들을 불 사르시는도다.

누가 <대적>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요..

하나님의 공평을 믿지 않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공평이 뭡니까?

지금 내 상황이 세상사람 모두가 다 비웃는 상황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최적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내 상태, 내 영적인 상태, 내 건강상태, 모든 걸 볼 때.. 마찬가집니다.

 

예를 들어 몸살이 났다. 그러면 몸살이 나서 꼼짝을 못하잖아요.

그러면 이 상황이 계속 진행되다가는 더 큰 간암이라든지 뭐 간경화,

이런 식으로 진행될 것 같으니까 몸살을 통해서

(주님이) 내 몸안에 쌓여진 스트레스와 피곤의 독기를 빼내시는 겁니다.

그래 몸살이 난 이 상태가 너무 아프고 불편하지만 최적의 상태에요.

하나님 보시기에 지금 이 타이밍에.. 좋은 것(몸살)을 주시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믿지 않는 게 누구냐?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에요.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믿지 않는 겁니다.

 

내 처지가 왜 티코만 타고 다녀야 되느냐?

어떤 사람은 벤츠 600을 타고 다니는데 난 왜 티코만 타고 다녀야 되느냐?

이게 바로 공평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공평을 믿지 못하는 거예요. 왜요?

공평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내게 최적의 상태를 주십니다.

옆에 사람보고 괜히 마음이 들썩 거리지 마세요.

 

▲4절,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어둠이 깔려있을 때 밤하늘에 번개가 비치면 전광석화와 같은 짧은 시간이지만

번개가 비치면 온 세상이 갑자기 환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실 때 나를 사로잡아서 움직이시는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번갯불’과 대비되고 있는 이 ‘어둠’은 뭘 말하느냐?

내가 내 삶을 마음으로 끌어안습니다. 내 자식을 끌어안아요.

그리고 자식을 끌어안은 채로 내가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하지 않습니까?

내 사업을 마음으로 끌어안고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습니까?

이게 다 어둠을 자아내고 있는 거예요. 다.

 

그런데 위에서 치고 내려오는 게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사로잡아서 통치가 시작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늘에서 말씀이 들리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으셔도 되요. 사실.

 

오직 하나님의 통치 말씀은 번갯불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에요.

하늘에서.

 

※하늘에서 비추는 번개의 예

제가 오래전에 곽선희 목사님 설교 가운데 당신의 그 생애역정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얘기하는 걸 들은 기억이 나요.

 

1950년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곽선희 목사님께서 한 17살쯤 되셨을까요?

그때 공산당에 의해서 곽선희 목사님의 친아버지께서

산속에서 총살을 당하는 것을, 이 아들이 숲속에 숨어서 직접 목격을 합니다.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이는 그때

이 17살 된 젊은 혈기의 젊은이가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총으로 쏘기 직전에)

나가서 막으려고 하는 생각,

모든 생각이 막 교차하고 있는 가운데

그 많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막 끊임없이 머리 속에 돌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이

짧은 한순간 음성이 빠방하고 들리더라는 것이에요.

 

“사는 것이 효자다!”

네가 살아있는 것이 효자다... 라는 말씀이 들리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가 총살당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가슴이 찢어지는 현장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살아있는 것이 효자다’ 라는 그 말씀이

오늘의 당신을 있게 한 말씀이다... 라는 간증을 하신 기억이 나요.

 

여러분, 참 의미심장하지 않아요?

아버지와 맺어진 인간적인 사랑과 정과

아버지가 총살당할 위기에서

아들로서 마땅히 뛰어나가서 같이 죽을 위기에..

그때는 정신이 없는 겁니다, 여러분.

 

그 순간에 어둠의 생각들,

땅의 인연으로 맺어진 어둠의 생각들이 막 떠오를 때

하늘에서 ‘살아있는 것이 효자다’ 라는 번갯불 같은 말씀이

그 심령을 사로잡고 그 현장에서 빼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통치의 손이라는 것이에요. 통치의 손!

 

그러므로 이 땅에서 내 자식과, 내 남편과, 부모님과, 형제와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계획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는 가운데... 이건 어둠속에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통치는 그렇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위에서 번갯불이 치듯이 나를 사로잡아버리는 것이고

그럴 때 공(적)생애가 시작되고

사명자의 삶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삶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5절, 산들이 주 앞에서 밀랍 같이 녹았도다.

이 땅에서 모든 견고하다고 느꼈던 가치, 견고하다고 느꼈던 관계,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면서 다 무너집니다. 다 없어져요.

 

부부관계? 자식과 부모관계? 다 부서져요.

그리고 돈? 돈 많아요?

밀랍 같이 녹아 없어질 것입니다. 밀랍 같이 녹아 없어질 것이에요.

 

이 세상의 부귀를 갖고 있어요?

밀랍 같이 없어질 것이에요.

내가 예언을 해요. 아주 악담을 하죠. 왜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 뻗으세요.

어디 돈 보고 마음 편하게 다리를 뻗는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의 통치의 손길을 보고 뻗어야지. 돈 보고 다릴 뻗어요?

 

‘내가 살 만하다?’

‘우리 부부관계는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아이고, 좋아하시네요. 천만의 말씀.

 

3년 뒤에 아작 날 수도 있어요. 부부관계 아무리 좋아도. 잉꼬부부?

잉꼬부부가 어디 있어요, 이 세상에?

다 그저 참고 사는 거지. 뭔 잉꼬부부?

 

특별히 다른 사람 앞에서 웃는 부부들 있잖아요. 틀림없어요.

집에 들어가면 말도 안 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별나게 깔깔대고 웃고

‘여보, 뭐 먹어야지!’ 하면서 부인 챙기는 거 같고

남편 챙기는 거 같은.. 이런 부부들 있잖아요.

집에 들어가면 딴 방 쓰기 십상이에요.

 

▲마치는 말

그래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 뻗어야 해요. 어떻게 봐요?

주님의 십자가로 보세요.

아예,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서 녹아내리는 아픔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내가 스스로 내 마음속의 모든 산들을 제거해버리는 겁니다. 십자가로.

 

그리고 내가 스스로 십자가로 어둠의 생각들,

어둠의 생각들을 가득하게 만드는,

이 세상을 끌어안고 하는 계획과 걱정과 염려들

다 십자가에서 없애버리는 거예요.

 

밝음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누울 자리보고 누울 자리 본 뒤에 다리 뻗으세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된 뒤에 다리 쭉 뻗고 사세요.

 

‘공평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내게 최선의 삶을 허락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