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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주의의 함정 / 필립 얀시

LNCK 2006. 7. 26. 11:18

https://www.youtube.com/watch?v=XnUyoHYhcLk 

◈도덕주의의 함정

 

필립 얀시「놀라운 하나님의 은혜」What's so amazing about grace를 읽고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고전 10:23

   

▲이 시대를 향한 선지자적 음성

몇 해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한 번 정독해 보았다.

정말 이 시대를 향한 ‘선지자적 음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저자는, 현대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이 ‘도덕주의, 율법주의’라고 한다.

한 마디로, 기독교에 ‘사랑’과 ‘은혜’가 빠진 것이다.

그리고 ‘외적인 도덕’만 남았다. 이렇게 바리새化 되어서,

전혀 힘을 못 쓰는 형식적 기독교로 전락했다고 한다.

 

또한 종교라는 특성상 도덕주의를 앞세우지만,

그것 때문에 자만해서 더 중요한 문제에 실패한다고 한다...

 

▲바리새인들

그들은 외적으로 매우 도덕적이었으며, 율법을 잘 지켰다.

한 마디로 흠을 찾기 어려운, 외적으로는 책망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 이렇게 충고하셨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justice와 인mercy과 신faithfulness은 버렸도다!  마 23:23

 

우리가 외적인 도덕 생활을 해야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말고

그것보다 더 중한 바 more important thing 도 있다.

 

바리새인의 도덕주의 뒤에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자비를 버리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남들 눈에 도덕적 삶을 살았지만, '더 중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히틀러식 도덕주의의 함정

1930년대, 1차대전의 패배로 파탄한 독일에 히틀러와 나치가 나타났다.

그들은 대대적인 도덕주의를 표방했다.

 

즉, 음란물을 판매할 수 없고 그런 서적들을 엄청나게 모아서 소각했으며

지저분한 영화나 갱 영화를 상영 못하게 했으며

히틀러 자신부터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여자들도 복장을 단정하게 입도록 했다.

기독교 국가인 독일 국민들은 이런 히틀러와 나치당의 도덕주의에 환호했다.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부분에 이르러 그들은

십자가 훈장을 가슴에 달고 유태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갈취했으며

십자가 마크가 선명하게 그려진 비행기를 몰고, 2차대전을 일으켰다.

 

그래도 당시 많은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와 나치당에 성원을 보냈을 것이다.

사회의 도덕을 끌어올리는 히틀러를 하늘이 보낸 사자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미국의 도덕주의

클린턴의 부도덕을 비판했던 많은 미국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클린턴을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하고 있다면 그들은 바리새인들이다.)

‘낙태반대와 동성연애금지’를 내세운 부시 후보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냈다.

 

사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낙태반대와 동성연애금지’를 공공연하게 떠들면... 그는 의인으로 인정되고

그 문제에 약간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면... 소돔과 고모라의 시민이 된다.

이제 그런 자칭 ‘의인’들이 힘의 횡포를 전 세계에 자행하고 있다.

 

기독교국가 미국이,

그래서 낙태와 동성연애를 반대하는 도덕주의를 표방하지만

그 이면에는 중동 아랍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주고 있다. 

 

물론 한 해에 미국에서 백만 명 이상이 죽어간다는 낙태도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도덕, 율법 이상의 종교다.

사랑의 종교요, 은혜의 종교다.

 

사랑과 은혜가 빠진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바리새교이다.

(‘은혜’가 무엇인가는 책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유엔 보고에 의하면, 오늘도 세계에서 매일 만 명 이상 굶어 죽는다고 한다.

그리고 중동에서는 비참한 전쟁과 죽음의 소식이 매일 들려온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는 에이즈로, 거대한 흑사병의 대륙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무관심하고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은 채,

‘낙태반대와 동성연애금지’에만 찬성하고, 옹호자들을 비난하면

자기는 보수 정통 그리스도인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슬프다.

 

그래서 어떤 크리스천 사업가는, 자기 회사 직원은 불신자를 뽑겠다고 하고

어떤 크리스천은, 자기는 개인적으로 낙태와 동성연애에 반대하지만

누구와 저녁 식사할 기회가 있으면, 그것에 유연한 입장을 가진 자와 하겠다고 한다.

 

한국 크리스천들도, 누구와 저녁 식사할 기회가 있으면 

차라리 술 담배 하는 사람과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술 담배는 안 하지만, 도덕주의에 빠진 바리새적인 교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살인마와 고전 음악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한니발’ 같은 희대의 살인마가 주인공인 영화에는

그 주인공 살인마는 매우 고상한 클래식 음악(↔헤비메탈)을 즐겨 듣는다.

특히 살인의 절정 장면에 매우 고상한 고전음악이 영화 분위기를 압도한다.

 

아마 추악한 살인(최고 악)과 고전음악(최고 고상)이라는 어떤 상반된 두 요소가

한 인간 속에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의도 같다.

 

도덕주의라는 최고의 고상한 가치는 동시에

얼마든지 상대를 죽이고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기독교는 도덕적, 율법적이지만(下位法)

그 상위법으로 사랑의 법, 은혜의 법이 있다.

사랑과 은혜가 빠진 도덕과 율법은... 기독교가 아니다. 바리새교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고전 10:23

 

도덕주의도 가(permissible)하고 좋은 것이지만

그것도 ‘덕을 세우도록’ 주장하라는 것이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건물을 건축해서 세워나가듯이

차츰 차츰 무엇을 세워나감을 뜻한다.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낙태와 동성연애’문제의 도덕주의에 빠져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은혜, 사랑)에 등한시하게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기독교 국가라지만, 거대한 ‘율법주의적 기독교 세력’이

전국에 걸쳐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한국도, 기독교인 아무리 많아도

그 주류가 율법주의나 도덕주의(윤리주의)로 흘러가 버린다면

도리어 기독교가 사회적 암초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이런 복음적 영향력들이 점점 미약해지고

도덕, 율법, 정화... 이런 말들만이 난무하게 될 때 그렇다.

나 자신부터 조심해야 하겠다.

 

최근 한국 기독교의 쇠퇴 원인을 분석할 때, 도덕부재의 이유가 단연 앞선다.

그 도덕수준만 위로 끌어올린다고 과연 다시 부흥할까?

물론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은 은혜와 사랑을 바탕에 깔고 있기는 하다...

 

필립 얀시의「놀라운 하나님의 은혜」What's so amazing about grace를 읽고서.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이번 휴가 때 꼭 한 번 (더) 읽어보시기 바란다.

 

[주제별 분류] 복음과 사회 http://blog.daum.net/bible3/9083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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