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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실패한 죄인인가? 거룩한 성도인가?

LNCK 2006. 7. 25. 09:15
 

◈실패한 죄인인가? 거룩한 성도인가?


A sinner-defeated or a saint-completed? 번역.

*출처: http://www.lifetime.org/get/equipped/devo-read/149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롬3:24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을 꼭 들어주시기 부탁드린다.

옛날에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지금 속고 사는지 모른다...


과거에 저는, 내가 성도로서 거룩하게 사는 것은

거의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었다.

사탄은 늘 나를 집적거렸고,

늘 나를 죄인이라고 업신여겼고,

내가 범한 크고 작은 실패들로 나를 정죄했다.

결국 ‘나는 전혀 의로운 사람(성도)이 아니야!’라는 확신으로 마무리되었다.


내 생각과 느낌은 사탄의 계략에 꼭두각시처럼 조정 받았다.

결국은 ‘내가 승리의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일 뿐이다’

라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제가 새로운 피조물이라구요? 성도(성자)라구요?

예, 맞습니다. 그날 저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저는 실패할 운명임을 압니다.”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나는 정말 늘 우울해요.”

“나는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요.”


이런 패배주의적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늘 맴돌았고

사탄은 이렇게 나를 가지고 놀았다.

내가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믿고 살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얼마나 슬프셨을까!


*        *      *


주님 안에서 나는 의로운 성도가 되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나는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못 박히고, 함께 죽고, 함께 부활했다...

왜냐하면 내가 아담의 후손으로 그의 실패를 모두 물려받았듯이,

이제는 그리스도의 후손으로서 예수님의 승리를 모두 물려받았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여태 속고 살았었다.

주님을 찬양하라!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성도인 것이다. 나는 용서받았고 깨끗케 되었다.

나는 사랑받는 아들로 받아들여졌고, 예수 안에서 지금 천국 보좌에 앉아있다.


나는 책망 받을 일이 없으며 나는 거룩하다.

나는 “주님 안에서” 사랑과 구속함과 생명을 모두 누린다.

이것은 사실이다.

나는 정죄가 없고, 의로우며, 완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당신도 바로 그러하다!


▲크리스천 정서적 문제의 원인

상담학자인 데이비드 씨멘즈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에 기고한 글 중에

일생동안 많은 사람들을 상담했는데

그의 많은 경험에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나는 오랫동안 많은 복음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정서적 문제의 주요원인은


첫째는 무조건적인 은혜와 용서를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데 있다.


둘째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베풀 줄 모르는데 문제가 있다.

사랑을 베풀면서 참 사랑을 깨닫고 배우게 되어있는데

베풀지 않으니까 받은 사랑도 모르게 되더라.”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참된 사랑의 손길이 되시기 바란다.


*관련글: http://blog.daum.net/ygbhygbh/7837170

 

◑의화(義化) 이후 성화(聖化)


수 십 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들은 이야기라서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대강 내용은 이렇다.


서울의 S대학교 교수 명문 집안에 훌륭한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어느 날 아버지께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자기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무학의 자매와 결혼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크리스천인지라, 아들에게 당분간 기도의 시간을 갖자고 했다.

그렇게 각자 기도의 시간을 가진 후, 아버지는 다시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여전히 그녀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확신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아버지 교수님이 내 거신 조건이 있다.

그날부터 신부수업을 받기로 한 것이다.


이제 이 가정부 처녀는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마치고, 그렇게 고등학교 과정을 패스했다.

그리고 서울의 유수한 대학에 입학시험을 치러 합격했다고 한다.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한 이 가정부(옛날에는 식모라 불렀다) 자매는

그렇게 매우 명망 있는 교수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고

이후로도 계속 매우 교양 있는 귀부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요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 우리의 신분은 변화된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성도로, 거룩한 자로 변화된다.

그 다음에는, 이 가정부처럼, ‘성도 수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신분은 이미 바뀐 것이다.


우리는 먼저 완전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에 구원받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 죄인을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다.

그리고 점점 의화(의롭게 변화)되어지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지금 비록 불완전하지만, 신분은 의인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도 있지만, 뜻대로 살지 못할 때도 많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면...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면... 우리를 사랑해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 한다.


물론 그 말이 언뜻 들으면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우리 인간의 편협한 관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나, 살지 못할 때나

근본적으로는 똑같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


문제는 내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못하느냐?

내가 그 하나님의 수준에서 사느냐?, 그 믿음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사느냐?

그 차이가 실제로는 우리 삶에 큰 변수를 일으킨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누릴 때(믿음으로)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데,

우리가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심할 일이 아니라,

나의 잘못된 믿음을 돌아봐야 할 일이다.


날씨가 흐리고, 맑고 하는 것처럼 보여도

태양은 항상 하늘에서 쨍쨍 비치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층을 뚫고 나가보면

날씨가 궂어도, 비가와도, 그 위에 태양은 항상 쨍쨍 내리쬠을 본다.


그래서 우리 현실에 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도

그것은 태양이 문제가 아니다. 지상의 날씨 문제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아도, 하나님의 사랑은 쨍쨍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쨍쨍... 변함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날씨가 안 좋으면 태양을 탓할 때가 많다.

‘해가 어디 간 거야, 도대체?’


마찬가지로 오늘 내게 문제가 있으면

우리 삶에 문제가 생긴 것이지,

하나님께는 아무 문제가 없다. (원칙적으로 그렇다)


날씨가 흐리다고 태양이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태양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의 문제인 것처럼,

우리 삶에 구름이 끼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나)의 문제이다.


즉,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쨍쨍 빛나고 있는 것 믿으시기 바란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그와 비슷하고

목회자가 성도를 사랑하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장경동 목사님 설교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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