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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279 최선의 적

LNCK 2006. 7. 24. 10:21
 

◈최선의 적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수도자가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수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은인이 그를 찾아와서 아주 좋은 책이라고 하면서

얇은 책 한 권을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그는 그 책을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 수도자가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뒤,

쥐들이 그 책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도자는 쥐를 쫓기 위해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고양이에게 먹일 우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암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그는 많은 짐승을 혼자 돌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들을 돌봐 줄 여자를 구했다.


이렇게 숲 속에서 2년 동안 지내는 동안,

아내와, 두 아기와, 그들이 살 집,

고양이와 암소들에게 둘러싸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그것들을 보살펴야만 했고,

그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날마다 신경을 써야 했다...


지금 그는 하느님을 생각하는 대신

아내와 아이들과 암소와 고양이들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로 책 때문이었다. 좋은 책이라고 받은 책,

그래서 이 책을 지키겠다고 분주했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접하니, ‘좋은 일이 최선의 적이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The good is the enemy of the best.


좋은 일들을 많이 하다 보니까 바빠서인지,

결국은 최선의 일을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제가 요즘 늘 생각해 오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교회를 가까운 가족에게 승계했다는데 대한 사랑의 질책이다.

가족승계가 비록 최선은 아니더라도,

만약 차선이거나 보통의 선택이라면...

최악의 선택만 아니라면...

 

 

그 염려의 충고라는 '좋은 일' 때문에 '최선의 일'이 방해받을까 염려한다.

 

앞으로 역사에, 최선의 선택이 당연히 좋은 결과로 증명될 때,

미래에 사람들은 차선을 버리고 자연히 최선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또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비록 현재 차선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차선의 선택이 최선의 선택을 능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없잖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모두가 잘 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십년간 계속해서 점차적으로 하강하고 있다는데 모두가 공감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비행기가 안전하게 위로 올라가 비행을 계속하는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이 비행에 방해가 될 정도가 되어선 안 된다.


좋은 일이 눈덩이처럼 자꾸 불어나서

그것이 최선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위의 비유가 내 개인적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조심스레 살펴보는 하루로 삼으려고 한다.

 

'좋은 일'을 하고 계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최선의 일을 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김지윤 


[주제별 분류] 복음과 사회 http://blog.daum.net/bible3/9083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