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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쪽방촌 ‘긍휼 사역’

LNCK 2006. 8. 1. 19:00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43532

 

◈영등포 쪽방촌 ‘긍휼 사역’ 임명희 목사                  ☞ ▣ 구제, 빛과소금

 

아침부터, 비까지 오는데 영등포 쪽방(한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의 방) 골목은

소란하다. 광야교회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쌀을 나눠주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쌀을 미처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언성을 높인다.

영등포역 근처 쪽방은 730여개이고, 쌀을 받아갈 사람은 600여명인데

쌀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매번 모든 사람들에게 쌀을 충분히 나눠줄 수는 없다.

 

겉모습을 보아서는 일을 해서 스스로 벌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허우대들은 멀쩡해 보였지만

그들은 노동을 ‘거부’했다. 아니 거부당했다.

쪽방 골목 사람들은 대부분 주민등록이 말소됐다고 한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그에 따르는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으니

삶의 목표 ‘따위’는 그들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듯하다.

 

희망 없이 사는 그들에게 14년동안 육적인 양식뿐만 아니라

영적인 양식까지도 챙기며 그들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44)는 1987년에 영등포 쪽방 골목으로 들어왔다. *2001년 기사

신학대학 재학중 전도팀 ‘육지어부’를 만들어서 전도여행을 하던 중

청량리에서 노숙자 무리를 만났다.

 

“당신들 어디서 많이 삽니까?” 물었더니

영등포에 산다기에 생필품을 사들고 이 곳으로 오게 됐다.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임 목사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집도 일터도 없는 이 곳 사람들은 자기 피를 팔아 받은 6000원으로 술을 마시고

그러다가 쓰러지고 죽어나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모습들을 본 임 목사는 그때부터 쪽방 사람들과 뒹굴면서 함께 생활하고

생필품과 일터·약 등을 제공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당시 임 목사에게 이 곳에서 1년을 버티면 기적이라며 비아냥거리던 사람들도

지금은 할 말이 없다. 1년이 아니라 14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데다가

한사람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변화’시켰고,

구원받은 그들이 지금 임 목사를 도와 광야교회에서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 목사가 이 곳에서 지낸 14년은 복음 전하는데 목숨을 건 시간이었다.

임 목사는 이 곳에 살면서 세 가지 각오를 했다.

굶어죽을 각오, 질병에 걸릴 각오, 칼맞아 죽을 각오.

 

하나님이 주시면 먹고 안 주시면 굶기로 했다.

놀랍게도 어떤 사람이 봉지쌀을 가져다주어 그걸로 생활했다.

 

한번은 몸에 진물이 질질 흐르는 에이즈 환자가 와서 기도해 달라고 했다.

옮을 각오를 하고 그에게 손을 얹고 기도한 일도 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예배 드리는 도중에 칼들고 다니면서 임 목사를 찌르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목숨을 걸고 복음 전했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각종 위험이 임 목사 주위에 널렸지만

그 때마다 그는 ‘하나님 사역을 다하는 날까지 날 살리시겠지’라고 믿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자신보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닥치는 위험이 더 걱정이었다.

지금은 사택이 교회와 좀 떨어져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곳에서 온 가족이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자녀들은 좋지 않은 모습들만 보고 자라 몸과 마음이 많이 피폐해 있었다.

 

게다가 ‘나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과 행동들로

임 목사 가족을 괴롭혔다.

 

“복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쌀 한봉지에 죽네 사네 하는 처지의 사람들을 웬만한 사람 아니면

인격적으로 대하기가 힘들죠. 논리와 이성이 통하지 않으니까요. 오직 복음만이 통합니다”

 

갖은 위험과 협박을 당하던 임 목사지만 지금은 이 골목의 ‘대장’이 됐다.

임 목사가 이 험한 거리에서 집도 희망도 없는 ‘노숙자’를 섬기며 봉사를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숙식을 해결하던 학원에서 ‘너무 전도한다’고 쫓겨나 잘 곳이 없어

지하도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봤다. 땅에서 찬 기운이 올라와 누워 있을 수 없었다.

“노숙자들은 모두 술기운으로 버팁니다. 3개월만 노숙하면 몸이 다 망가지죠.”

 

임 목사 자신도 잘 곳이 없어 떠돌던 시절이 있었기에 잘 곳이 없는 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라면 한 개로 하루를 버티던 때

어쩌다 밥을 먹게 되는 날이면 “밥아 밥아 그리운 밥아…”라며 시를 읊고 감격했을 정도로

쌀 한톨의 귀중함, 없는 사람들의 설움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노숙자들의 고충을 이해한다.

 

광야교회에서는 매일 낮 11시에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와 쪽방 상담소를 운영한다.

지역 주민들을 섬기면서 쉼터에서는 800여명에게 잠자리와 세끼 식사를 제공한다.

 

또 쪽방 상담소는 노숙자들이 목욕이나 빨래를 할 수 있는 시설을 제공하고

취업을 돕기도 하며 병원에 보내주기도 한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에게는 기초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결혼식도 치러준다.

 

그러나 광야교회는 먹으면 배만 부른 ‘밥’만 주는 곳이 아니다.

임 목사는 ‘노숙자’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한다.

모두를 ‘형제·자매’라 부르며 인격적으로 대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입시킨다.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고

하나님의 유일한 작품이며 예수님는 당신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실 정도로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하신다”고.

그리고 자기 자신이 존귀한 존재가 되도록 자신을 가꾸라고 강조한다.

 

그토록 험했던 쪽방 골목이 광야교회가 들어서자 지역 치안에도 도움을 준다며

경찰서장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술집도 많이 없어졌다.

또 윤락녀가 구원받고, 포주도 복음 듣고 변화됐다.

 

“이 동네에서 파도타기와 같은 스릴을 즐기면서 말씀을 전한다”는 임 목사와 광야교회 식구들은

주일예배 후에 “다함께 돌자 동네 한바퀴” 전도를 나선다.

 

광야교회에서 한달에 소요되는 비용은 2000만원 이상이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임 목사에게 하나님께서는 항상 부어주신다고 한다.

 

교회를 다녀간 사람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후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밖’에 알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당신이 하는 일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 사역에 동참해야 하지 않느냐.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주위의 설득에 임 목사도 동의했다.

 

이런 임 목사에게 오랜 기도제목이 있다. 노숙자들을 위한 복지센터를 세우는 것이다.

남·여 따로 쉴 수 있는 쉼터와 한방치료실, 목욕시설, 스트레스 해소실 등을 고루 갖춘

복지시설을 말이다.

 

“이러한 복지시설을 교회가 앞장서서 세워야 합니다. 서울역, 청량리, 용산 등 기차역에

노숙자들을 위해 복지관을 세워 교회가 사랑을 베푸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라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1회성 집회가 아닌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