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고전9:27 출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고전9:27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시간도 인내하며 기도할 수 없었던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마음(프뉴마)은 원이로되 육신(사르크스)이 약하도다”라고 하셨다. 막14:38
일반적으로는 육신은 건강해도 기도할 마음이 없을 때가 많은데,
그러나 주님은 (반대로)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다고 말씀하셨다.
▲육신의 건강도 중요하다
육신이 약하여 건강하지 못한 나에게는 이 말씀이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고
건강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 깊이 새겨진다.
육신이 약하면 아무리 영혼이 원해도 기도도, 찬송도 할 수 없고
영적인 사역도 감당할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 충만하지 못해서 이기도 하면서도
또한 건강에 있어 육신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이렇게 서로에게 깊이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영적인 것과 육신의 건강을 같이 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건강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한 주님의 의도를 살핀다면
“육신이 약하다”는 의미는 단순히 건강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육신은 헬라어로 '소마'body가 아니고, '사르크스'flesh이다.
전자는 단순한 동물적 육체이고,
후자는 육체는 육체이지만, 영혼이 거할 수 있는 육체를 뜻한다.)
어부로써 육신이 단련된 제자들이 어찌 육신이 약하겠는가!
또한 육신이 건강한 사람이, 병약한 사람보다 더 열심히 기도를 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육신이 약하다는 더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신진 대사나 근육의 힘이 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의 요구와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순종하고 따를 수 있는 힘이 약하다는 뜻일 것이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몸을 쳐 복종케 했다(고전 9:27)는 것은
실제로 자기 몸을 때렸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영적인 요구에 따르려고 하지 않는 육신적 본능을 쳐 복종케 했다는 뜻이다.
▲경건의 훈련
마치 야수를 채찍으로 길들이듯이
그렇게 우리는 우리 육신적 본능을 길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육신의 힘은 넘치지만 주인의 요구에 따를 힘이 없는 야수처럼
그렇게 우리 육신은 건강하지만 영적인 요구에 따를 힘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육신을 길들이고 따를 힘을 키워 주는 것은
육신의 훈련이 아니라 경건의 훈련으로 가능한 것이다. (딤전 4:7-8)
그렇다면 경건의 훈련 80% 육신의 훈련 20%를 하면
영적인 요구에 잘 응하는 육신이 될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웃으면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라며
머리를 긁적인다.
연약한 육신을 강하게 하기 위해 경건의 훈련에 힘써야 하겠다.
'분류 없음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290 주의 손 (0) | 2006.08.04 |
---|---|
289 쫓길수록... (0) | 2006.08.04 |
286 절대적 사실과 인간의 믿음 (0) | 2006.08.02 |
영등포 쪽방촌 ‘긍휼 사역’ (0) | 2006.08.01 |
283 필요에 반응하는 원리 (0) | 2006.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