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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411 희망을 주는 씨앗

LNCK 2006. 12. 5. 09:24
 

◈희망을 주는 씨앗

 

적게 버린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버린 자는 많이 거둔다  고후9:6참조

 

너희는 타작이 끝나면 포도를 따고 포도를 따고 나면 씨앗을 심게 될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마음껏 먹으며 너희 땅에서 안심하고 살게 되리라.  레26:5

 


3만원이면 3백명 어린이가 먹는 죽을 끓일 수 있다. 사진은 필리핀  


▲씨앗은 삶의 희망을 준다.

NGO 구호기구인 월드비전에서 일하는 한비야 자매가 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녀는 세계일주 여행을 한 뒤, 자신이 진정 해야 할 일을 찾게 되었다.

전쟁이나 기아선상에서 고난을 겪는 나라에 찾아가

구호 활동을 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남부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가뭄으로 고통 받는 농부들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농부들은 몇 년째 계속되는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아사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하도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는 물론 독이 든 야생 콩까지 먹는 형편이었다.


그녀는 거기를 찾아가 구호활동을 벌이던 중

어느 날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는데...


부지런하기로 유명한 남부 아프리카 농부의 얼굴은 몹시 절박했다.

그 얼굴에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묻어 있었다.

이들이 바라는 건 공짜 식량이나

두 손 놓고 주저앉아 날 돌봐 달라는 동정심(구걸)이 아니었다.


이들 역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이란, 물탱크로 물을 날라다 주는 게 아니라,

열심히 펌프질하는 사람들에게 종잣물(마중물) 한 바가지를 가져다주는 일이다.


남부아프리카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당장 필요한 ‘종잣물’은

다름 아닌 한 줌의 씨앗이었다.

 

구호 일과 후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찰스로부터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람들에게 씨앗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에요!’


이야기인즉, 작년에 한정된 구호자금 때문에

한 마을은 씨를 배분했지만, 그 옆 마을은 씨앗을 주지 못했단다.


안타깝게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씨를 나누어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그 사실(희망) 하나만으로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 죽지 않았는데,

씨가 없어 파종하지 못한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단지 씨앗을 뿌렸다는 그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살려놓은 것이다.

이곳에서 씨앗이란 존재만으로도 그 사람들을 살게 하는 힘(희망)이 되었다.


그렇다. 한번 먹을 식량을 대주는 것보다

농사지을 땅과, 물과, 씨앗을 지원해 주는 일이 더 필요하다.


▲뿌리고 가꾸는 수고가 기쁨이다.

저(글쓴이, 윤경재 님)는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렇게도 말씀의 씨앗을 온 세상에 뿌리라고 간구하신 까닭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아무 수고 없이 배불리 먹고 마시는 것보다는,

부족한 가운데 자기들의 힘으로 농사짓고 수확하며 사는 행복을 얻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라는 것이다.

(다 된 밥보다, 복음의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의 행복을 주셨다)


씨 뿌려 가꾸는 수고(노동)를 기쁨으로, 행복으로 삼아

모든 사람들이 일하게 만들고

그 결과 소출된 음식을 서로 나누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글


▶씨앗을 주시는 하나님

어떤 여인이 꿈에,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데, 계산대에 하나님이 서 계셨다.

"네가 원하는 것 다 주겠다. 내게 구해라"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솔로몬처럼 좀 더 좋은 점수를 따서 더 큰 상을 받으려고,

"저는 평화, 사랑, 행복을 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하나님의 답 : "얘야, 네가 뭔가 잘못 생각한 것 같구나,

나는 열매를 팔지 않고, 씨를 판단다!"


▲구제는 최선을 다 할 뿐,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혹자는 말하기를, 우리는 결국 세상의 빈자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없으므로

그것은 나라도 못 하는 일이므로

결국 구제할 필요조차 없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변명’이라고 한다)


물론 세상 누구도, 모든 빈자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하나님도 우리 보고 모두를 다 먹여 살리라는 명령을 주신 적도 없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또한 세상 앞에 당당히 증언해야 할 것은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는 그 점을 보시고 하나님, 빈자, 세상 사람들은

감동과 위로를 받으실 것임에 틀림없다.

비록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도 말이다.

(실제로 구호사역을 해 본 사람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절망한다.)


성경에도 가난한 과부가 동전 두 닢 헌금하는 것은

그 액수로 보면 정말 턱이 없이 작았다. (100원짜리 같은 최소 동전 단위)

그러나 주님은 그녀의 최선을 다한 정성을 보시고... 칭찬하셨다.


위의 글처럼

우리가 작은 나눔을 통해 누군가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면,

또한 뿌리는 과정에서의 ‘고생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구호사역의 훌륭한 열매들이다.

비록 결과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도 말이다. <편집자


▲물질 앞서 사랑이다.

인도에서 의료선교를 하는 폴 브랜드 박사는

그의 환자 몇 명에게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였다.


환자들이 병원에서 수술 후 회복 중일 때

어떤 가족은 따뜻한 음식을 가져오고

밤에는 친척 중 한 명이 환자 침대 밑에서 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환자가 통증으로 깨어날 때면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잠들 때까지 마사지를 해 주었다.


처음에 브랜드 박사는 이것이 적합하지도 않고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으로부터 정성껏 간호를 받은 환자들은

진통제를 적게 필요로 하고, 회복도 빠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질병은 현대 의학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육신이 아픈 질병은 - 의사와 약품(물질)이 치료할 수 있지만

두렵고 힘든 마음은 - 예수님의 사랑으로만 치료될 것이다.    *윗 글 출처 :

 

 

        폴 브렌드 박사 

 

*폴 브랜드 박사의 관련글 보기 -클릭-

 

◑버리는 가, 취하는 가?


아버지의 농장에는 아버지의 손으로 씨를 뿌리는 밭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마치 캥거루가 자기 배 주머니에 새끼를 담듯

마대 자루를 허리에 묶고 그 안에 씨를 가득 채운다음

나가서 밭의 곳곳에 시를 뿌리곤 하셨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릴 때는 마치 아깝게도 씨를 버리는 것 같이 보인다.

씨를 흩어 버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때가 되면  농부는 훨씬 많은 수확으로 다시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비록 농부는 아니지만

주님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내어 놓을 때 그것은 마치 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버리는 자가 얻으리라고 하셨다. 마10:39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보다.. 희생하는 것을 통해

우리자신에게 쓴 시간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쓴 시간을 통해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베푸는 것을 통해

주님은 우리의 삶을 평가하실 것이다.


물질을 흩어 구제하면, 그리하면 더욱 부하게 될 것이다.  잠11:24

시간을 타인에게 주시라, 그리하면 더 많은 시간을 가질 것이다.

사랑을 타인에게 버리시라, 그리하면 더 많은 사랑을 거둘 것이다. (펀 글)

 

적게 버린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버린 자는 많이 거둔다  고후9:6참조


[주제별 분류] 구 제 http://blog.daum.net/bible3/1022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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