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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414 천국에서 큰 자

LNCK 2006. 12. 8. 10:05
 

◈천국에서 큰 자                  마20:26            편집자 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20:26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를 읽고 나서, 아래의 성경 구절들이 떠올려졌는데...



▲1. 섬기는 자가 크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가 되어야 하리라 마23:11

The greatest among you will be your servant (종)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는데, 실제로 이것을 받아들이기는 무척 어렵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도 안쪽(벽 쪽, 상석)과 바깥쪽(문 쪽, 하석)을 따지고

어디 모임에 가면 꼭 대표기도를 하고 싶어 한다.


물론 우리는 윗사람을 공경해야 한다. 맞는 말(일반계시)이다.

그런데 성경은 한 차원 더 넘어서서 섬기는 자가 크다고 한다. 특별계시다.


혹자는 주의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 한다.

일명 ‘고지高地론’이라고 하는 이 말은 맞는 말(일반계시)이긴 하다.

그러나 성경(특별계시)은, 자기 신분의 높낮음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섬기는 자가 가장 크다고 가르친다. 


이 세상에 섬기러 오신 예수님이 눅22:27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것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요즘 가치 기준으로 보면, ‘그런 형편없는 지위와 경제력으로 무슨 섬김을?’

우리 시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섬길 수 있고, 모든 사람이 큰 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세상의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가장 위쪽에 위치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주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다는 생각은,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성경적으로 맞는 말은 아닌 것이다.


중세에 성직만이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해서 많은 시민들을 실망시켰듯이,

오늘날 성공한 사람만이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다고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은

(본의 아니게) 성공하지 못한 대다수 시민들을 실망시킬 수 있다.

(본의 아니게) 성공하지 못한 대다수 시민들을 죄인취급 할 수도 있다.

물론 대다수 시민들이 성공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하지만 말이다.


▲2. 작고 낮은 자가 크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이 가장 크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낮은 자)가 저보다 크니라.  마11:11, 눅7:28


예수님 당시까지,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세례 요한이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작은 자, 낮은 자 라고 하신다.


이 말씀을 죽어서 가는 미래천국에 적용해서 해석하시는 분이 많은데,

이 말씀은 현재천국에서부터, 예수님이 계시던 현장부터 적용해야 옳다.

그만큼 ‘섬기는 자가 크다. 가장 위대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 피라미드 경쟁에서 머리가 되려고 할 필요가

엄밀히는 없다. (그렇다고 세상을 부인해서도 안 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큰 자는, 가장 위대한 세례요한보다 더 큰 자는

‘섬기는 자’ 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교회 구조 속에서 큰 자로 인정받는 사람은, ‘세상에서 큰 자’이다.

물론 그 분들도 마땅히 존경과 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그러나 ‘섬기는 자’를 무시하는 풍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 했다는 이유로...


그러므로 기독교가 소수 귀족층의 권익을 대변해주는 논리로 빠지면 안 된다.

귀족이나 서민이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모두 천국에서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긍심과 기쁨을 심어주어야 한다.


▲3.  5달란트가 2달란트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상식적으로 5달란트가 2달란트보다 2.5배 더 크다.

그런데 주님은 둘 다 똑 같이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칭찬하셨다. 마25:21


상식적으로 합이 10달란트 남긴 종에게는 ‘네가 큰 일에 충성했다’고

칭찬하셔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시고,

합이 4달란트 남긴 종과 마찬가지로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칭찬하셨다.


그러니까 10달란트나, 4달란트나 주님은 똑같이 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하셨다.

이런 비상식적인 평가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①사람의 눈에는 큰~ 일, 큰~ 사역, 또한 작은 일, 작은 사역이 있을지 모르나

주님의 눈에는 각각 맡겨진 연극에서의 배역의 차이, 달란트의 차이일 뿐이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서 스스로 ‘내가 큰 일 하고 있다’고 자만할 수 없다.

주님은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구나!’ 칭찬하신다.


②우리는 정말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작은 일은, 작다고... 스스로 무시하기 쉽다.

남들이 안 알아준다고... 스스로 무시하기 쉽다.

주님이 평가하시는 기준은, 큰 일이 아니라, 작은 일이다.


우리는 외형적으로, 숫자로, 업적크기로 평가할지 모르나

주님은 내가 베푼 사랑, 친절, 긍휼, 충성작은 것으로 평가하신다.  


우리는 5달란트든지, 2달란트든지, 1달란트든지

각자 자기 배역에 따라 자기 직무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주님의 평가 기준은 작은 일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물론 천국에서 상급의 차이는 있다고 본다.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님)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높든지 낮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늙든지 젊든지 

현재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그런 긍지와 행복이 넘치시기를 기원 드린다.


[주제별 분류] 물질과 성공 http://blog.daum.net/bible3/1040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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