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
기도에 관한 우리의 평소 개념을 무너뜨리는(보완하는)
새로운 기도에 관한 개념을 소개하는 설교입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1:35
▲기도가 삶의 목적이셨던 예수님
예수님은 공생애를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사시다가, 기도로 마치셨다.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바 예수님 일생에
가장 첫 번째 말씀하신 대화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그것은 눅2:49절이다. 당시 예수님은 12세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 모르셨습니까?”
예수님 일생에 가장 우선되고, 가장 중요한 일은
아버지의 집(성전)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는 기도의 시간이었다.
후에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셔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재차 강조하셨다.
예수님이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다르셨던 점은,
또한 예수님이 오늘날 우리 신자들과 다르신 점은,(기도에 관한 개념에 있어)
기도가 예수님의 생애에 가장 우선되고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었다는 사실이다.
The prayer is the primary and the priority for Jesus in his life.
19세기 영국의 설교가 P. T. 포사이스 forsyth은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로
크리스천은 기도를 잘 하기 위해 사는 것이지,
크리스천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It is true to say that we live a Christian life in order to pray,
rather than we pray in order to live a Christian life!
예수님은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기도를 잘 하실 목적을 위해서 평소의 삶을 잘 사셨다.
Jesus pray not just live well,
He lived well in order that He could pray!
예수님은 평소에 항상 옳은 일을 행하셨고, 항상 옳은 길을 걸어가셨다.
왜?
‘기도를 잘 드리기 위해서’였다.
▲사역이 성공하지 못할 때도 기도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사도들을 둘씩 짝 지워 전도하러 보내셨다. 마10:1~끝절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할 동안, 예수님도 따로 벳세다, 고라신, 가버나움 등의
도시를 돌면서 전도하셨다.
이 세 도시에서 특별히 더 많은 기적을 베푸셨다. (마11:1, 20)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자 예수님은 완전히 지치신 가운데 이 도시들을 책망하셨다. 마11:20~21
그런 실패의? 와중에서도 예수님은 실망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신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마 11:25~27.
그렇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도의 모범은
잘 될 때나 안 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모든 경우에 기도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삶의 목적이었으며,
기도가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가?
이 원리를 종종 거꾸로 산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잘 드려서, 올바른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려 한다.
우리는 이 차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삶에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기도가 수단이 아니라 (가장 고상한) 목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기도는 어떤 내 소원을 잘 되게 하는 수단, 도구라는 인식을 교정하자.
기도 자체가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하며,
훌륭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올바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올바른 삶 속에서, 올바른 기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같이 기도합시다!
제가 여기 와서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어떤 크리스천스쿨을 견학차 방문했다.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한 뒤, 약속된 시간에 교장실로 갔다.
교장과 만나서 악수를 하고 소파에 앉아마자 그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우리 같이 기도하실까요?”
이런 만남은 제게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제 사무실을 방문키도 하고,
저 역시 한국의 많은 교회 사무실을 방문해서 그곳 목사님들과 만난다.
그런데 보통 교회 사무실에서 맨 처음 듣는 대화는
“기도합시다!” 보다는 “차를 뭐로 드릴까요? 커피, 녹차, 인삼차?”
물론 손님에게 차를 권하는 것은 좋은 환대이긴 하다.
그런데 어제 어떤 학교에서 처음 뵙는 교장선생님이
대뜸 “먼저 같이 기도하실까요?” 라고 제게 제안하신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분의 삶, 그 분의 학교사역, 이 모든 것의 최우선순위가 ‘기도’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중보기도를 확실히 믿다
한국전쟁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38선 부근에서 미군과 인민군이 서로 밀고 당기고 할 때였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 미군 쪽에서도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그래서 미군들은 그 격전지를 가리켜 자기들끼리 heart breaking ridge
(마음이 찢어지는 산등성이)로 불렀다. 거기서 수많은 미군들이 피 흘리며
미국에 있는 어머니, 아내, 혹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기 때문이다.
그날도 양쪽 고지에서는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며 서로 격렬한 교전을 벌였다.
그런 와중에 최전방의 한 미군이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살려달라고 고함쳤다.
그러나 동료들은 아무도 그를 구하러 나가지 못했다.
너무도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 때 어느 병사가 자기 팔목시계를 한 번 힐끗 쳐다보았다.
시계는 정각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정각 9시가 되자,
그 병사는 부상당한 전우를 구하기 위해, 낮은 포복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포탄세례를 뚫고 부상당한 전우를 들쳐 업고
성공적으로 진지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전우의 생명을 구했다.
그 분대의 분대장 중사는 그 용감한 병사에게 물었다.
“시계 한 번 쳐다보더니, 막무가내로 돌진한 이유가 뭐야? 어떻게 된 것인가?”
병사는 중사를 쳐다보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분대장님, 제가 고향에서 집을 떠날 때, 어머니께서 제게 굳게 약속하셨어요!
매일 아침 9시에는 반드시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요!
저는 어머니의 기도가 저를 지켜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거든요!”
▲기도를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
예수님의 삶을 살펴보면, 시간적으로, 가치적으로,
가장 우선되고 가장 중요시 여겨졌던 것은 - 바로 기도였다.
내일 새벽기도에 참석하기위해 전날 저녁부터 일찍 자며 준비하는 분
- 잘 하시는 것이다.
삶의 우선순위가 기도에 맞춰져 있는 멋진 삶이다.
어떤 분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직장에서 특별히 일찍 퇴근해서
자녀들도 모두 일찍 재우고, 수화기도 다 내려놓고,
부부가 함께 저녁 9시를 기다린다고 한다.
특별기도 하시는가 했더니
- TV연속극 [주몽]을 보기 위해서란다.
기도하기 위해 그런 정성을 다하고
기도를 그의 삶에 우선순위에 둔다면
더 훌륭한 인생이 될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히든 커리큘럼(감춰진 교과과정)
이것은 교과서에 나타난, 선생님이 커리큘럼에 짜서
의도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이 아닌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무의식적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지고,
학생들이 저절로 배우는 것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히든 커리큘럼’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정규 커리큘럼보다 더 큰 교육적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배우지만,
선생님의 등 뒤에서 배운다는 말처럼
뭔가 의도하지 않지만 저절로 가르쳐지는 것들이다.
문제는 이것이 더 큰 교육적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녀들은 평소에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는데,
부모가 가르치는 ‘착하고, 선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들을 배우기보다,
부모의 평소습관(TV보는가, 성경 보는가? 평소에 정직한가, 거짓말하는가?) 등을
더 잘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다음 세대로 물려줄 것은
돈이 아니다. 재산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히든 커리큘럼’ - 다시 말해서 ‘부모의 평소의 경건한 삶의 모습’이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
▲제(김요셉 목사님)가 목사가 된 계기
저는 성장기에, 아버지(김장환 목사님)를 따라서 목사가 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 호텔에서 아버님과 같이 묶게 되었는데
밤 2시에 깨보니 아버님이 안 계셨다.
궁금해서 살펴보니 아버님은 호텔 우리 방 화장실에서,
변기 위에 타월을 깔고 그 위에 성경을 올려놓으시고
그 앞에서 무릎 꿇고 우리 세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계셨다.
그것이 내 인생에 큰 충격적인 ‘히든 커리큘럼’이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크게 변화되었고, 오늘날 이렇게 목사까지 되었다...
<06.12.06. 인터넷 설교 발췌, 요약 *원제목 : 주님의 음성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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