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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너무 ‘설명’ 좋아하지 마세요

LNCK 2006. 12. 19. 17:43

www.youtube.com/watch?v=pUc17guF9jM

◈너무 ‘설명’ 좋아하지 마세요              눅1:18              

 

 

▲설명을 요청한 사가랴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둘 다 나이가 많이 들었다.

특히 엘리사벳은 임신할 수 있는 나이가 훌쩍 지났다.

하루는 대제사장 사가랴가 지성소에 들어가서 섬기도록 허락되었다.

 

지성소는 성전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장소였으며,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다.

거기서 사가랴는 주의 사자를 통해

자기 아내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음성을 들었다.

 

천사의 지시를 받은 사가랴의 즉각적인 반응은 ‘설명을 요구한 것’이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눅1:18

너무 믿기 어려운 말이니, 좀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애교로 좋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사가랴가 설명을 묻자마자, 그는 즉시 벙어리가 되었다.

지성소는 설명하는 장소가 아닌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이성적 설명 explanations에 중독 되어있다.

모든 것에 설명을 요구하고, 설명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

          

그렇게 설명 좋아하다가는, 자칫 우리는 사가랴처럼

1~2년 동안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어버린다면 퍽이나 재미있을 것이다!

 

▲경지에 오르면 벙어리 된다!

우리가 정녕 경지에 오르면... 먼저는 말문이 막힌다.

무슨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입이 벙어리처럼 무감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어떻게 정신 차려 말로 설명해 보려고 해도,

우리는 말을 더듬게 된다.

분명히 알고, 보았으면서도...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영성이 깊은 사람들은 보통 묵상깊은 생각에 잠긴다.

말로 장황하게 설명하거나 길게 논쟁하지 않는다.

 

더구나 지성소침묵이 흐르는 곳이다.

자기 마음의 지성소에 깊이 들어가는 자는... 침묵한다.

 

 

 

◑이해 안 되어도 신뢰한다.   understanding or trusting?

 

마리아에게 있어서 기이한 체험은

아기 예수 임신 때, 천사의 ‘수태고지’ 뿐만 아니었다.

 

베들레헴에서도 목자들이 달려와서, 자기들이 천사를 본 것과

천사들이 한 말을 마구간에 모인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사람들이 목자들의 말을 기이히 여겼고, 눅2:18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깊이 생각하며 간직하였다.” 눅2:19

 

그 목자들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기도 전인 8일 만에 성전에 올라갔을 때

시므온이 또 아기 예수에 대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예언을 전했다. 눅2:28~32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눅2:33

 

세월이 훌쩍 지나 예수가 12세 되던 해였다.

이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이 예수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눅2:49

 

모친 마리아에게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이렇게 계속 들려졌다.

 

최후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형틀 아래 서 있던 모친 마리아는

도무지 사태가 되어지는 형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아들이 처참하게 죽는 것을 보고, 어떻게 쉽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탄생 때부터,

비록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마리아는 평소 삶에서 그 모든 일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뭘 완벽하게 이성적으로 설명되어지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되어지는 기이한 일들 가운데서 ‘무슨 의미일까?’ 하며

의미meaning를 분변하고자 노력하였다고 본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과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종종 완전히 이해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주님을 신뢰하는데, 이해가 선결조건은 아닌 것이다.

때로 우리는 이해 못 할 때가 있지만, 여전히 주님을 신뢰할 따름이다.

 

예를 들면, 왜 착하고 순진한 아이가 백혈병에 걸리는가?

우리는 이해하지 못해도, 여전히 주님을 신뢰한다. 마리아처럼... <아래 영문 편역

 

 

“Mary kept all these things, reflecting on them in her heart...”

without necessarily understanding them,

a statement echoed later after Simeon’s prophecy [Lk. 2:33]

and after the child is found in the temple

“busy in my Father’s house” [Lk. 2:50].

It was this repeated pondering without understanding that prepared her

to stand at the foot of the cross without understanding

—how could a mother understand that?—, yet fully trusting.

I believe that in her pondering Mary was searching in her heart for

meaning, for how developments might fit in her rapport to God,

rather than searching in her mind for understanding,

for an explanation of why developments took place.

Openness to God’s ways and to God’s presence in our lives

will not necessarily lead us to understanding,

but it should gradually lead us to not needing to understand

as a pre-condition for trusting.

by Luis Rodriguez, S.J.

Creighton University Medical Center

 

[주제별 분류] 부활, 추수, 성탄 http://blog.daum.net/bible3/10490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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