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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이유

LNCK 2006. 12. 20. 17:36

www.youtube.com/watch?v=xCdvcSaIeJ0&feature=youtu.be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이유            2006. 12. 10. 인터넷 설교 중 부분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마2:6

 

 

▲베들레헴에 오신 이유

예루살렘에서 약 8km 떨어져 있는 베들레헴은 과거에도 작은 마을이었고,

오늘도 역시 이스라엘에서 매우 작은 도시에 속한다.

 

이스라엘에는 하이파, 제닌, 라말라, 텔아비브, 헤브론 등 큰 도시들이 있는데,

베들레헴은 지금도 여전히 ‘작은’도시다. 하물며 옛날에는 얼마나 작았겠는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것은 우리 인류를 위해서

가장 작은 자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말하며,

더욱이 마구간에 오신 것은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우리의 삶의 현장에 주님은 오셨음을 뜻한다.

가장 낮은 곳, 절망적인 곳, 소망이 없는 곳에 주님이 오셨다.

 

▲영적인 의미의 ‘베들레헴’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이 없는 우리 인간은 어디에 살든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베들레헴이며, 마구간이다.

하나님 없고 범죄하며 죄에 빠진 우리 인간은 가장 낮은 자이다.

 

죄보다 더 낮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죄에 빠진 인간보다 더 비참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무엇인가?

지위와 재산이 없다고 불행한 것인가?

그런 게 아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우리 인간의 절망이고 불행이며 고통이다.

 

사람은, 자기 죄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죄를 조금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죄의 무거운 짐을 벗겨줄 사람이 없다.

 

가장 낮은 곳에서 죄 때문에 신음하고 죄의 짐을 짊어지며 살아가는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죄는 엄청난 파멸의 능력이 있다.

존 번연은 말하기를 ‘하나의 틈이 배를 침몰시키는 것처럼,

하나의 죄가 우리의 삶을 다 파멸시킨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큰 건물, 큰 집, 큰 기업, 큰 권력이

세상에 남이 갖지 않은 모든 것을 가져도,

죄는 우리를 넘어뜨리고, 파괴하며, 불 지르고, 빼앗으며, 모두 흩어버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이 아니다. 죄이다.

죄가 우리의 아름다운 것을 거룩한 것을 모두 빼앗아 갔다.

죄 앞에 속수무책으로, 죄에 눌려 살아가는 우리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곳 베들레헴에 오신 것이다.

 

▲죄를 멸하시러 오시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으시며,

그의 죽으심으로 죄를 멸하시고, 모든 죄의 능력을 다 파괴한다.

죄에 빠진 우리를 건지시고 짐을 벗기시며,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다 치료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가졌다. 기쁨을 누린다.

예수님같이 세상에 귀한 분이 없는 것은

우리 인간의 죄를 우리가 져야 되고 우리가 해결해야 되는데

기독교는 우리의 죄를 당신이 해결하는 것이다.

 

주님이 해결하는 것이다.

가장 큰 기적은 죄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다.

가장 큰 은혜는 죄에서 용서함을 받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십자가의 능력, 보혈의 은총이다.

   

▲은혜로운 연극 : 주님이 대신 당하시다   

저는 어제 국세청 신우회에서 예배를 인도해 달라고 해서 국세청에 갔다.

거기서 설교를 했는데, 제가 은혜 끼치러 갔다가, 도리어 은혜를 받았다.

얼마나 엉엉 울고 은혜를 받았는지...

 

예배를 드리기 전에 직원들이 나와서 연극을 했다.

무대도 없었지만, 그냥 천 하나만 딱 늘여 뜨려 놓고 5분이 나와 연극을 했다.

 

내용은 단순한데, 성경에 있는 것을 너무 그대로 잘 표현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A는 죄를 가지고 고민하며, 죄를 짓고 엉엉 울며 나온다.

엉엉 막 가슴을 치면서, 막 몸부림치면서 나온다.

 

B는 어떤 막 정신적으로 고민하면서 나온다.

 

또 다리 아픈 C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 아파서 막 울면서 나온다.

 

또 한 사람 D는 소경이 되어 절망 가운데 사방을 더듬으며 나온다.

 

그런데 예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으신다.

그들에게 손을 대면서 그냥 고치는 게 아니라,

성경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그대로 하신다.

 

다리 아픈 사람 C를 만져주면서, 주님은 그의 아픔을 당신이 가져가신다.

그래서 이 다리 아픈 사람은 일어나 기쁨으로 걷는데,

예수님은 대신 다리가 못 견디게 아프게 된다.

 

죄인 A가 고통당하는 무거운 죄의 짐을 벗겨 주시면서,

예수님은 그 무거운 죄 짐을 대신 지신다.

 

막 몸부림치고 고통당하는 B의 고민과 아픔을 가져가면서,

그 분에게 기쁨을 주시지만, 대신 예수님은 고통을 당하신다.

 

앞 못 보는 D를 고쳐주시지만, 당신의 눈이 대신 어두워지신다.

 

이런 예수님의 성탄의 크신 은혜를 깨닫고, 누리고, 마음에 깊이 감동되면

자기도 이웃의 슬픔과 고난을 조금이라도 대신 지려는 마음이

자원해서 생기게 된다...

 

<06. 12. 10. 인터넷 설교 중 부분 발췌

 

 

 

 

◈기쁜/슬픈 성탄

 

 

빈 방이 없음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베들레헴에 빈 방이 없었다.

그래서 추운 외양간에서 나셨다.

오늘도 성탄절에는 예수님이 오실만한 방(room, 공간)이 없다. 

 

성탄 시즌에는 술집에도 빈 방이 없고,

러브호텔에도 매 시간 별로 손님이 꽉 찬다.

(그래서 성탄 시절에는 특별히 나라를 위한 중보기도가 많이 필요하다)  

 

우리 마음도 너무 바쁘고 분주해서 예수님을 모실만한 방room(공간)이 없다.

연말연시에 나의 마음 방을 활짝 비워놓고 예수님이 오시도록 기다리자.

베들레헴에서처럼, 오늘도 예수님은 집집마다 노크하시며 빈 방을 찾아다니신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결정적 시기에는 아기가 태어남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언약의 민족을 일으키실 때에 이삭이 태어났다.

*노예시대에 해방의 역사를 일으키실 때에 모세가 태어났다.

*혼돈의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정을 세우실 때, 아기 사무엘이 태어났다.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새로운 구속의 역사가 시작될 시대에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왜 선량한 다른 아기들을 희생시키셨나?

아기 예수 때문에, 수많은 선량한 다른 아기들이 헤롯에 의해 비참히 살해당했다.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는 분이, 왜 다른 죄 없는 아기들을 희생시키셔야 했나?

같이 죽든지, 같이 피하든지, 아니면 막아 주시든지... 왜 혼자만 몰래 피하셨나?

 

▶값지고 보람 있는 것이 나타나려면 희생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놀라운 평화의 시대가 도래 하려면,

‘피 흘림의 희생’의 역사가 동반된다.

 

베들레헴 지경에서 만약에 어른들이 죽었다면

→ 자기들의 죄로 죽는 것이지 희생이 아니다.

죄 없는 어린 영아들이 희생된 것은... 정말 희생이다.

 

뭔가 값지고 보람된 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희생하는 일이 동반됨을 인식하자.

내가 값지고 보람된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희생의 수(數)가 차기까지

"하나님, 왜 불의가 판치고 의인이 희생되는 세상을 심판하지 않습니까?"

라고 순교자들이 항변한다.

"아직 그 희생과 순교의 숫자가 차기를 기다리고 있다"  계6:9-11.

라고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이 땅에 정말 하나님의 평화가 도래하려면,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 의인들이 십자가를 지고 죽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교회 크기에 관계없이, 어린아이같이 순수하고 투명한 삶을 살면서,

십자가를 지자.

 

▶슬픔을 대신 당하신 예수님

"그는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거늘..."(사53:4)

예수님의 제자 된 교회는 사회의 슬픔을 대신 당하고, 대신 짊어져야 한다.

 

성탄은 밤에 잠 못 자며 양을 지키던 저변층 사람들에게 먼저

기쁜 소식이 되었다. 

밤에 잠 못 자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전경, 군인들,

불치병에 걸려 슬퍼하며 밤새는 환자와 가족들,

구조조정 때문에 고통을 당하며 잠 못 이루는 성도의 가족들을 돌아보자.

 

이런 사람들의 슬픔을 대신 당하는 교회가 되자.

나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서, 내가 속한 처소에서 평화의 시대를 이루자.

성탄과 연말이 기쁘게 되려면, 누군가 슬픔을 대신 당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00.12.24. 인터넷 설교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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