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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 잘못된 경건주의

LNCK 2007. 1. 15. 09:35
 

◈잘못된 경건주의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렘1:10


 

진정한 신앙부흥운동은 '종교적 행사'와 구분될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잘못된 경건주의'(The Religious Spirit, 종교적 영, 종교적 행사)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경건주의’에 대한 몇몇 경고의 표지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잘못된 것을 무너뜨리는 것을 당신의 주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남들을 교정해주도록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믿음이 있다면...

당신은 ‘잘못된 경건주의’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성경의 기본 정신은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올바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봉합할 수 없는 의사는 함부로 째면 안 됩니다.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렘1:10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순찰자나 보안관들로서

대체로 교만함이 그 특징입니다.

참 경건한 사람은, 지속적인 중보기도 가운데서, 겸손히 권면합니다.



▲2. 특히 자기보다 덜 영적이라고 판단하는 자들로부터의 질책을 못 받아들이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는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교정 받겠다고 합니다.


→ 다윗은 개 같은 사람 시므이의 저주에도

혹시 하나님 말씀일까 귀 기울였습니다. 삼하16:10


하나님께서는 대개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만 교정 받겠다는 것은 망상이기 쉬우며

그런 주장은 심각한 ‘잘못된 경건주의’(종교적 영)에 빠진 상태이기 쉽습니다.



▲3. 다른 교회/성도의 옳은 점보다 항상 그들의 잘못된 점을 보려고 하는 경향


→올바른 성도는, 설령 그가 진짜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항상 거기에 감춰진/드러나지 않은 선한 의도를 찾으려고 애씁니다.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합니다.


그러나 비판이 습관이 된 사람은... ‘잘못된 경건주의’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4. 주님의 기준에 도저히 자신을 맞출 수 없다는 엄청난 죄책감이 들 때


→ 이것 역시 '종교적 영'의 강력한 뿌리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에 근거하기보다는

자신의 공로에 근거하도록 만드는 신앙입니다.



▲5. 당신이 그 어느 사람보다 하나님과 가깝다는 느낌

혹은 당신의 삶과 사역이 타인들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고 있다는 느낌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쉬운 현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종종 반대로 깊은 좌절에 빠지게 하십니다.

그것이 치료약이기 때문입니다.



▲6. 당신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최첨단에 서 있다는 믿음. 뿌듯한 자부심.

또는 다른 사람들의 사역들보다 당신의 사역이 더 나아보이고

또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볼 때,

당신의 영적 성숙성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약4:6

자기가 최첨단이라는 교만이 틈타는 순간

하나님은 그를 물리치시니, 이미 미끄러짐이 시작된 상태입니다.


나는 죄인중의 괴수다! 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심심할 때마다 이 고백을 늘 연습해 둠이 필요합니다.



▲7. 기계적인 기도생활

정해진 예배시간, 기도시간을 모두 채웠을 때,

혹은 기도목록에 적힌 내용들을 모두 기도했을 때 안도감을 느낀다면...


→누구나 처음에 그렇게 기도 생활을 시작합니다. 기도의 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 '통회'하는 자세로, 늘 주님과 가까이 있으려는 태도입니다.



▲8. 감정주의를 지나치게 배격하는 태도


→이런 완고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작은 충격에는 끄떡도 안 합니다.

큰 충격(매) 받고 크게 변화될 가능성이 큰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만지시는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9. 성령의 사역에 대한 대체물로서 감정주의를 (선한 의도로) 사용하려 드는 것.

회개에는 반드시 울음과 통곡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하나님과 진정으로 접촉되었다면

그 능력 아래 사람들의 몸이 ‘거꾸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통곡/거꾸러짐 등이 성령의 진정한 나타남의 증거들이 될 수는 있지만

만약 이런 증거들을 <반드시 요구한다면> 당신은 다른 영에게 속는 것입니다.

성령이 나타나는 형태는 너무 다양하고 각자의 인성에 따라 다릅니다.


‘때굴때굴 구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양심에 깊은 자각을 체험하고

그날부터 ‘변화된 삶, 회개의 열매’가

그의 삶의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대각성 운동 조나단 에드워즈의 집회 때,

몇몇 감정적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러진 채 24시간 동안이나 있었습니다(입신).


그런 ‘따르는 표적’들이 대각성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정말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이런 증거들을 가짜로 모방했던 사람들 때문에

→ 대각성 운동이 조기에 끝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10. 무엇보다 열심이 최고인 사람

당신은 더 많은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을 더 많이 읽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주님을 위한 봉사를 더 많이 하기 때문에... 더 낫다는 기분이 드십니까?


→이것들은 모두 고귀한 노력들이긴 합니다.

그러나 진짜 영적인 사람은 아무리 해도 더욱 부족함을 느낍니다.



▲11. 새로운 운동 혹은 교회에 대해 의심하거나 반대하는 경향

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 증거들을 무조건 거부부터 하는 경향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지 않고는 어떤 새로운 일도 행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종교적 영’(안 좋은 의미)에 빠졌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은 것은 스스로 소멸될 것이므로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행5:38



▲12. 교회에서의 미성숙성에 대한 과도한 거부반응

교회가 완전하거나, 거의 완전하다고 판단되지 않는 어떤 일에도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태도.


→지나친 이상주의idealism도 종종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한 신앙의 증거입니다.

사실 정말 아무 열매도 못 맺을 만큼 불완전한 교회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경건한 사람이 거기에 끼면,

그 일에는 어떤 적은 열매라도 반드시 ‘그로 인해’ 나타납니다.

 

 

 

▲13. 유명한 주의 종, 유명한 교회 등 '유명세'를 따라다니는 것

유명한 주의 종의 집회를 따라다니거나, 유명한 교회에 찾아다니면서,

자기가 가장 최고의 신자인 것처럼 자부한다면, 그것은 착각이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서 역사하시며

종종 무명의 사람, 무명의 장소를 통해서도 특별하게 역사하실 때도 많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사람이나 장소를 선호하거나

찾아다니는 것은, 그것은 진정한 신앙생활보다는 종교적 행사에 가까운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발췌, 편집  0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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