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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 성경적 안식의 의미

LNCK 2007. 1. 16. 10:28
 

◈성경적 안식의 의미 (창2:2~3)



하나님은 안식이 필요 없으신 분이다. 피곤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제 칠일에 <쉬셨다>고 한다.


피곤해서 쉬는 것 이상으로, ‘안식’에는 성경적인 의미가 있는데...


 

◑1. 안식은 과거를 되돌아보며 즐거워한다(창 2:2)


▲다 이루고 쉬심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2:2


하나님은 지나간 엿새 동안의 창조를 돌이켜보며

그것을 즐거워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오늘날 우리도, 안식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며 즐거워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실용주의 가치관의 영향 →계속 움직이는 것

오늘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관의 하나는 실용주의인데,

그것은 움직이는 시간이 생산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으면 그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를 쉬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다.


▲기독교의 가치관 → 바라보는 것

기독교의 가치관중에는 '심미적 가치관'이란 것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를 <바라보는 여유>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 앞에 도착했을 때 진퇴양난이었다.

그 때 모세는 ‘가만히 있으라!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자!’고 했다.


*예수님은 길을 가다가 서두르는 제자들에게 잠시 멈출 것을 제안하셨다.

그리고 “공중에 나는 새를 바라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바라보라!”고 하셨다.


*성경은 계속해서 “보라”고 말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깊이 바라보면 거기서 찬양이 나오고, 감사가 나온다.


▲신경질적이 되는 이유

너무 바쁘게 쫓기는 현대인은 늘 신경질적이 된다.

교회 일에 치이는 성도도 마찬가지로 신경질적이 되어서 은혜가 떨어진다.


하나님처럼, "되돌아보며,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시간을 종종 가져야 한다.


▲삐에로 쌍소의 베스트셀러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오늘날 이 세상은 '느리게 사는 것'을 게으름으로 정죄하는 분위기지만,

그러나 저자는 느림이 미덕일 수 있다고 오히려 역설하고 있다.


그는 현대의 특징인 '속도문화'의 가장 큰 비극으로

<안식의 상실>이라고 지적한다.


반대로 현대문화의 구원이 있다면

<안식을 회복하는데 있다>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2. 안식은 현재를 새롭게 한다(창 2:3)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2:3


▲"복 주사 거룩하게"

하나님은 안식일을 축복되게, 또한 거룩하게 하기를 원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안식을 정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이날을 통해서 성도들이 정말 축복되고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을 기대하셨다.


휴가의 목표 →"더 축복되게, 더 거룩하게" 변화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건강한 놀이는 안식에 도움이 된다.

휴가 계획이 무엇이든 그것이 나를 거룩하게 하면 된다.

그것이 나를 육체적/영적으로 건강하게 하면 된다.

종종 영적건강과 육적건강은 같이 가는 면이 있다.


놀이(오락)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때로는 건강한 놀이가 건강한 안식을 가져다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교육은 놀이를 정죄하는 풍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교육학은 놀이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놀이는 학습이다.

놀이를 통해서 우리는 건강한 인격적인 성숙을 가져올 수 있다.


볼링의 시조가 마르틴 루터다. 본래 볼링은 수도사들이 수도를 하다가

잠시 쉼의 여유를 갖기 위해 공놀이를 하던 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놀이에 빠지지는 말라

그러나 놀이에 빠지지는 말라. 건강하지 못한 놀이도 있을 수 있고,

아무리 건전한 놀이라도 거기에 빠지면 우상이 된다.


놀이가 끝난 후에 힘을 얻기보다 내가 더 지치게 된다면,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놀이를 생각한다면, 놀이의 노예가 된 것!


그러나 그 놀이가 나의 인생에 활력을 더해줄 수가 있다면

육체적/정서적/영적인 회복에 도움이 될 수가 있다면, 놀이도 안식의 방편이다.


▲떼제 공동체의 교훈 : 침묵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있는데도 너무 조용하다.

한국의 기도원하고 전혀 다른 풍토이다. 아주 조용하고 신선한 평화가 있다.


떼재 공동체의 곳곳에는 작은 팻말들이 계속 붙어있다.

그 팻말에는 영어로, 독일어로, 혹은 불어로 ‘침묵’이라고 쓰여 있다.


거기에 오직 한가지의 규칙만 요구한다. 할 수 있는 한 침묵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며칠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치유를 경험하고 새로워진다.


▲왜 그럴까? 

우리가 이따금씩 아프면 아무것도 못한다.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치료가 된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 아무 말도 안 하고 침묵하는 것

→ 때로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를 치유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것이 우리의 심신을 치유하는데,

우리는 한 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조급한 것이... 삶의 피로를 누적시킨다.


▲새로워지신 하나님

"제칠일에 하나님이 쉬어 평안하셨더라"(출 31:17)

영어 성경 KJV에는 "He rested and was refreshed"

하나님이 쉬시고 <새로워 지셨다>고 했다.


하나님도 안식을 통해서 새로워지셨다!!

하나님에게 안식의 필요가 있었다면 사람에게는 얼마나 이 안식이 필요할까?

이와 같이 안식은 곤고한 나의 현재를 새롭게, 거룩하게 한다.



◑3. 안식은 미래를 창조한다.


오늘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커다란 아픔은 졸속, 서두름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언제부터 급해졌느냐?

라면이 나온 때부터 바빠졌다는 분석도 있다.


▲능률적인 미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비능률적인 일을 오래 동안 붙잡고 끙끙거린다.

확 쉬지도 못하고, 일해도 능률도 안 오르고...

평소에 안식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적 하루는 저녁에 시작해서 다음날 저녁에 마치는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하루가 잠자는 것(안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뜻.

잠을 잘 자는 것이 하루의 경쟁력이다.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127:2


◑ 마치는 말


▲왜 우리는 안식을 잃어버렸나?

죄가 우리 마음속에서 평안을 빼앗아갔고 대신 긴장/불안/쉬지 못함을 주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쉼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안식을 회복해 주셨다.


▲자기 일을 쉬는 사람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 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4:10


안식은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축복이다.

아울러 '현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처럼 쉬며 안식할 수 있다(already, not yet).


이런 사람은 과거를 보고 즐거워하고,

현재에 거룩하게 새로워지고, 미래를 능률적으로 창조한다.


<01.07.01.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 http://blog.daum.net/bible3/1058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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