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자기 다짐 - 인자, 십자가 막8:31~38 가톨릭 묵상글 정리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 막8:31
인자(사람의 아들)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막8:31
어린 시절에 선생님들은 화장실에도 안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감히 다가가는 것조차 어렵게 생각되던 선생님을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어찌나 민망하고 부끄러웠던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은 특별한 생각을 하고
특별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직자 수도자들은 남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여기고
더 높은 윤리기준과 모범을 요구합니다.
사실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더 모범으로 살아야 하겠지만 신자들이
할 수 없는 더 거룩한 기도생활이나 더 완벽한 봉헌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르다, 구분된다’라는 말로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거룩함이나 기도생활을
일반 신자들은 다다를 수 없는 벽으로 느끼게끔 한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 예언자라고 부른다고 하고,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은 스승이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그 같은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당신은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사람의 아들’이란 말이 품고 있는 신학적인 내용은 잠시 접고,
같은 ‘사람의 아들’로서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향한 같은 길을 걷고 계시고,
우리도 같이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스스로를, 또한 타인을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예수님도 '사람의 아들'이라면, 우리는 누구이기에 스스로 자기를 높이겠습니까! (펀 글)
◑계속 반복적으로 십자가를 가르치신 예수님 막8:32
마가복음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는,
‘너희가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그렇게 둔하냐?’ 하시며
제자들을 계속적으로 어떤 교훈을 주시는 것이다.
6:52(생명의 떡, 몸을 찢어 많은 사람을 먹임 예고), 7:18, 8:17~18, 9:10, 9:32 등.
이 반복적 교훈의 주제는 당연히 십자가의 도이다.
이제 어느 정도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신 예수님은
드디어 ‘공개적으로openly’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셨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막8:31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막8:32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었다’는 말은, ‘붙들고 한쪽으로 돌려세웠다’took aside
로 번역된다. 그러니까 ‘예수님, 잠깐 나 좀 봅시다!’는 식이다.
예수님 체면을 고려해서 조용히 타이르려고 했던 것이다.
‘간하다’라는 뜻은 ‘나무랐다 rebuke’는 뜻이다.
십자가의 길을 드러내놓고 설명하시자,
베드로가 ‘그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겁니까?’ 하는 식으로 예수님을 훈계했다.
제자가 스승을, 그것도 따끔하게 훈계한 것이다. 아니, 가르침에 반발한 것이다.
그만큼 ‘십자가의 길’은 맨 정신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자기 다짐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베드로를 꾸짖으신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막8:33~34
후에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보면,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라고 탄원하셨다.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도 가급적 처참한 십자가를 회피하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탄으로 꾸짖으신 내용은
‘좀 가혹하지 않으셨나?’ 생각된다.
당신도 회피하려 하시면서, 그것을 회피하라는 제자에게는 혹독하게 꾸짖으시다니...
그래서 혹자는, 이 구절을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막8:33
예수님의 <자기 결심, 자기 결단>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베드로를 꾸짖으심으로써, 예수님은, 흔들리는 자기 마음을 다잡으신 것이다.
(사단Satan의 뜻은 ‘유혹/시험하는 자tempter’이다.
곧 ‘유혹하는 자여, 내 뒤로 물러가라!’는 뜻도 된다.
베드로=사단은 물론 아니다. 베드로가 마치 사단처럼,
십자가의 길을 못 가게 '유혹했다'는 뜻이다.)
어쨌든 마가복음을 ‘십자가의 관점’으로 읽어 나가야 하겠다.
예를 들면, 소경의 눈을 '점점 뜨게' 하신 사건도 막8:22~25,
'십자가의 도'에 대해
제자들의 눈을 '점점 뜨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제자들의 ‘무지함, 눈이 감김’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흡사한지...
오늘날 우리도 정말 떡이나 먹고 배 부르려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아닌지...
십자가의 도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아예 관심조차 없어서
그런 설교를 들으면, 설교자를 막 나무란다. 베드로처럼... <편집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막8:33
.......................... 더 읽으실 분 ...........................
◑언제나 위안을 주시는 베드로 사도 막8:38
베드로의 생애를 묵상할 때 마다,
스승 예수님께 혹독하게 혼나는 베드로의 얼굴을 떠올릴 때 마다,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죽어도 따라주지 않았던 베드로,
그래서 자주 슬펐던, 그리고 우울했던 베드로의 모습을 바라볼 때 마다
제 개인적으로 많은 위안을 받습니다.
어찌 그리도 저와 빼닮았는지 모릅니다.
정말 제대로 된 제자로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래서 결심하고, 시작은 잘 하는데, 뒷받침이 그렇게 안 됩니다.
머리로는 분명히 될 것 같은데, 삶이 받쳐주지를 못합니다.
첫출발 때 목숨이라도 바칠 것 같이 달려들던 그 열렬한 마음,
예수님을 향해 활활 타오르던 그 불같은 열정, 순수한 신앙,
그런 초심을 항상 유지하고 싶었는데... 생각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일단 용감히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워낙 신앙의 기반이 약하다보니, 의지력이 부족하다보니,
뱁새가 황새 쫒아가는 기분입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 말씀에
베드로는 크게 실망합니다.
그간 예수님께 걸었던 모든 기대가 수포로 돌아감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따졌던 것입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이토록 우둔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한참 기다려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수제자로서의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오늘 우리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아직도 제대로 된 신앙의 눈을 뜨지 못한 우리지만,
아직도 고통의 신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지만,
그래서 너무나 부족한 우리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부르십니다.
제자로서의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복음 선포의 사도로 파견하십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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