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을 주기로 부흥되다 합3:2 여러 설교 정리
백년마다 무디어진 개신교, 백년마다 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예언자」로 유명한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이렇게 썼다.
백년마다 한번씩 나사렛 예수와 기독교인들이 숲 속에서 만난다.
그들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언제나 나사렛 예수는 이렇게 말하며 떠난다.
‘나의 친구여! 우리가 결코 일치할 수 없음이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지브란의 말이 사실이라면,
기독교에 아무리 놀라운 개혁과 부흥운동이 일어나도
그 부흥의 열기가 백 년이 지나면 퇴색된다는 것이다.
아니, 백년이 지나면, 본질과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서 백년이라는 기간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퍼뜩 생각해보니,
종교개혁이후 개신교 역사에 위대한 부흥운동은
백년을 주기로 일어난 것이었다.
교회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역사를 간략하게 한 번 거슬러 올라가 보자.
①16세기 중엽 : 종교개혁, 설교, 믿음 중심
1517년에 종교개혁의 부흥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는 루터와 칼빈이 크게 활약했다.
하나님의 섭리는, 종교개혁 반세기 전에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 구라파의 모든 대도시에는 인쇄소를 설립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마침, 그때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루터의 설교는, 이미 구축된 인쇄소 인프라를 바탕으로
즉시 인쇄물이 되어 삽시간에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쿠텐베르크의 첫 번 인쇄물이 성경이랄 정도로 인쇄술과 종교개혁은 관계가 깊다.
②17세기 중엽 청교도 운동 : 종교개혁과 동일한 개혁신앙과 신학
(잘 모르지만, 루터가 당시 지나치게 제도화된 구교로부터 종교개혁을 일으켰다면,
청교도들은, 당시 지나치게 제도화된 영국국교회로부터 종교개혁을 일으킨것이다.
가톨릭처럼 국교회인 성공회도 감독교회체제였다. 즉 성직자들이 주도권 쥐었다.
이에 반해 청교도들은 회중의 역할을 증대시킨 장로교회를 탄생시킨다.)
종교개혁의 열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식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영국 청교도 목회자들의 부흥이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목회자들의 부흥이 있었다.
이들 청교도들은 국교회의 박해를 받으면서, 화란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가서
미국에서 다시 신앙의 꽃을 활짝 피운다.
존 번연(1628~1688), 리처드 백스터(1615~1692), 존 오웬 등이 유명하고,
한국의 지평서원은 청교도목회자 관련서적들을 집중 번역, 펴내고 있다.
*관련글 : 스코틀랜드 교회 목회자들의 죄 고백 (tistory.com)
청교도 목회자 매튜 미드 [유사 그리스도인] http://blog.daum.net/rfcdrfcd/9824220
③18세기 중엽 : 영적 대각성 운동, ‘내면적 변화’라는 본질 확립
1740년 경, 영국에 휘필드, 웨슬리가 주도하는 부흥운동이 일어나서
1789년 프랑스대혁명과 달리, 영국을 유혈혁명으로부터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휘필드, 웨슬리도 제도화된 교회와는 잘 맞지 않았다.
결국 웨슬리는 감리교를 세우게 된다.
동시대에 미국에 조나단 에드워즈 등의 부흥운동(영적대각성)이 있었다.
미국의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교회는, 동시에 미국 독립운동의(1776) 온상지였다.
이 부흥운동은, 앞서 청교도 부흥의 주역들이 남긴 서적들이 그 불을 지폈다.
*관련글 : 휫필드와 웨슬리 http://blog.daum.net/rfcdrfcd/10824698
참된 부흥 분별법 http://blog.daum.net/rfcdrfcd/10905671
④19세기 중후반 : 신앙부흥을 통한 해외선교운동
19세기의 미국 부흥운동의 주역은 찰스 피니 (Charles Finney, 1792-1875) 와
무디 (Dwight L. Moody 1837~1899)였다.
이들에 의한 미국의 부흥 운동의 특징은
개신교의 세계선교의 열기를 가속화시킨 일이다.
이들의 신앙부흥운동이, 19세기를 위대한 세기 The Great Century 라 불리는
해외선교부흥운동을 가져왔다.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에 비해 늘 열세였던 개신교 해외선교가
이 시기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19세기 후반에 미국과 영국에서 부흥을 주도했던 무디는
외국선교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무디의 부흥운동의 영향 아래
많은 해외선교회가 조직되었고, 이를 통하여 세계 곳곳에 복음이 전파 되었다.
특히 이것은 19세기 말의 학생자발운동(SVM 1886~20세기초)의 기폭제가 되어,
대학생 젊은 선교사들 수 만 명이 해외로 나갔다.
이 시기가 조선에 선교사들이 대거 건너 온 시기이다.
무디는 1889년 무디성경학교 설립, 많은 전도자를 배출했으며
에드워즈, 피니에 이어 미국의 3차부흥운동(1857~1915)의 주역이 되었다.
그는 기독교서회를 설립, 성경과 찬송가, 경건서적의 출판과 배포에도 힘썼다.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는 챨스 스펄전 (1834~1892) 목사님이 활약하며
웨슬리와 휫필드 이후 식어버린 신앙부흥운동을 이끌었다.
⑤20세기 중반 : 성령운동 통한 기독교의 세계화
1906년 미국 LA 아주사 거리에서 오순절(성령)운동이 일어났다.
(비슷한 시기에 인도에서, 그리고 1907년에 한국에서도 성령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또한 이 시기는, 미국에서 이론적 자유신학이 확산되어나가던 시기였다.)
미국의 오순절운동은 주로 방언을 중심으로 한 성령운동이었다.
이 오순절 운동은 향후 약 50년간 미국에서 계속적인 비판과 논쟁을 낳았다.
그러다가 1960년대, 미국교회가 히피운동으로 몸살을 앓으면서 힘을 잃어갈 때,
교회와 청년들을 살리는 대안으로 오순절(성령) 운동이 떠오르면서
오순절(성령)운동이 미국의 주류교회로 진입하게 된다.
반세기의 배척이 끝나고, 주류교회가 도리어 성령운동을 수용, 접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밋밋한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뜨거운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을 사모하게 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2차대전이 끝난 이후 20세기 후반이
2천년 역사상 기독교의 가장 큰 부흥 시기로 꼽는다.
(이 시기에 전도된 사람이 지난 1~19세기 동안 전도된 사람보다 많다는 말도 있다)
이 시기에 기독교는 백인의 종교에서 → 세계인의 종교가 되었고
또한 숫자상으로도 유색인 신도가 백인 신도를 추월할 만큼 늘어났다.
이 시기에 구미의 기독교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중국, 유러시아 등
거의 모든 대륙으로 확산되었으며, 기독교 신앙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특징은 '성령운동'이다.
성령운동의 확산으로 개신교회가 크게 성장했다.
예배분위기와 찬양도 현대적이며 활기차게 바뀌어졌다.
서구인과는 달리 이성보다 감정이 더 발달한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인들에게는,
오순절적인 열정이 자기들에게 더 적합한 신앙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기에 축복을 바라며 교회에 가입한 사람의 숫자도 크게 늘었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모두 축복을 바라며 신도가 크게 불어났다.
제3세계 가난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하나의 탈출구로 여겼던 것이다.
(이것은 노만 빈센트 필 박사의 '적극적 사고방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후에 그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많은 TV방송설교가들이 나타나면서
그들의 해외방송선교와 서적출판을 통해 이 영향력이 세계로 확산되었다고 본다.)
⑥21세기 : 한국 주도? 어떤 특징?
과거 근대, 근세가 대서양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태평양 시대라고 한다.
21세기에 부흥이 일어나면 태평양 지역 국가에서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축이
이제 태평양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부흥이란 그저 우리가 요행적으로 바라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시대적 사명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시대적 사명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가?
또한 21세기 한국 주도의 부흥운동은 어떤 성격(특징)을 띨 것인가?
어느 글에 보니, 2세기 전에 선진국의 식민지 확보(강탈)경쟁이 치열할 때
(어떤 대비인지 모르나) 구미 선진국과 식민지 후진국간의 개인별 소득격차는
그리 높지 않았고, 약 3배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약 10~20~30배를 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앞으로 한국발 세계 신앙부흥운동은
세계의 빈국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그런 특징을 나타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본다...
특히 이 시대에 기독교 국가 미국이 보여준 '힘의 논리'와 달리
한국 기독교인을 통한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의 섬김'이
중동 아시아의 회교권 지역을 파고 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구약은 물론이고 신약의 초대교회 때, 유대인이 세계선교의 도구로 선택되었으나
도리어 우월적 선민사상에 빠져서 안타깝게도 그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사명이 이방인에게 넘어갔다.
17~18세기는 영국이, 19~20세기는 미국이 세계복음화를 위해 선택된 민족이었다.
그들은 비교적 자기들의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했다고 본다.
지금 21세기는 한국이 선택된 민족이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 일본, 전 세계의 한인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포함된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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