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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 현대판 이삭의 우물

LNCK 2007. 2. 24. 13:48
 

◈현대판 이삭의 우물   창26:22


 

이삭이 우물 문제로 이웃과 다투지 않고 양보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웃과 다투지 않고 양보한 성도가 결국 최후에 승리하며,

하나님의 영광까지 드러낸 실화...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에서 발췌, 김요석 저, 홍성사 

 


▲성도가 돼지 다섯 마리를 변상하다

이웃 동네에 살고 있는 양씨 가정이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초신자였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웃 동네는 워낙 불교가 지배적인 곳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온 동네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이웃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야 했다.


어느 날 저녁 그 집 아저씨가 나(저자 목사님)를 찾아왔다.

잔뜩 화가 나서 목에는 핏대가 서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누구하고 싸우기라도 했습니까?”

나는 다그치듯 물었다.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화가 나도 꾹 참았다고요.

예수 믿는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옆집 그 인간은 해도 정말 너무 하지 뭡니까?”


양씨는 숨을 가쁘게 쉬며 씩씩거렸다. 우선 그를 진정시키는 일이 급했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말씀해 보십시오."


양씨는 깊이 숨을 몰아쉰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오후에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가 옆집 채소밭에 들어가서

그 집 채소를 몽땅 먹어치웠거든요.

그랬더니 옆집에서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야 당연히 배상해야지요.”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저도 손해는 배상해 주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인간이 말도 안되는 걸 요구하지 뭡니까!”


“도대체 옆집 분이 원하는 게 뭔데요?”

“글쎄,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달라는 겁니다!”

양씨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에 화가 안 나는 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


양씨는 씩씩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옆집 사람은 형제님을 시험해 보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형제님이 마구 흥분하고 화내기를 바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주십시오.

큰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내 말이 초신자 양씨에게 과연 설득력이 있었을까?

양씨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좋습니다. 어쨌든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요.

아까는 정말 화가 났지만, 다 접어두고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지요!” 그는 돌아갔다.


양씨는 정말로 한 마디 불평 없이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옆집에 주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양씨가 미친 거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양씨를 비웃었지만, 그 중에는 양씨의 태도를 보고

사뭇 진지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성도가 돼지 90마리를 변상 받다.

그것은 여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뭇잎이 곱게 물들어가던 어느 가을날 밤, 양씨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목사님, 밤늦게 죄송합니다.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전에 제가 목사님의 말씀을 따르기는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굉장히 분했습니다.

그래서 옆집 사람이 한 짓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 뭡니까?

글쎄 옆집 황소 일곱 마리가 우리 집 밭에서 실컷 뜯어먹고 있는 겁니다.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옆집 사람이 그걸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저한테 와서 난처한 얼굴로 이러는 겁니다.

'양씨, 어떻게 배상해야 할까?'


처음 생각 같아서는 그 황소 일곱 마리를 냅다 끌어오고 싶었지요.

하지만 목사님께 먼저 여쭈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목사님, 이제 제가 이겼지요? 그렇지요?

돼지 다섯 마리에 황소 일곱 마리라니,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은 정말 제가 잃은 것보다도 더 많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씨의 얼굴은 커다란 이익을 얻게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형제님, 형제님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앙갚음하려는 마음을 버리시고 그분에게 용서하는 마음을 보여주십시오.

형제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양씨의 얼굴이 갑자기 침울해졌다. 그는 올 때와는 달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맥 빠진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다음 날 저녁, 양씨는 또 한번 신이 나서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말씀이 또 맞았어요! 하나님이 정말 더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어제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옆집 사람에게 아무런 배상도 받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오후에 그 사람이

돼지 90마리를 끌고 우리 집에 왔지 뭡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돼지 전부 자네 껄세. 내가 자네 때문에 지난밤에 한숨도 못 잤어.

지난 일로 틀림없이 화가 잔뜩 났을 텐데

왜 내 황소를 달라고 하지 않느냐 말이야.

 

내가 그걸 생각하느라고 머리가 다 빠개지는 것 같아.

자, 자네 돼지가 낳은 새끼 열여덟 마리씩 다 합해서

아흔 마리 전부 데려왔으니 다 가져가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웃끼리 잘 지내보세!’

 

양씨는 예기치 않은 이 이야기를 듣고 흥분해서 나한테 뛰어온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별안간에 이렇게 많은 돼지를 되돌려 받은 것도 굉장하지만,

지금까지 옆집에서 그놈들 전부를 먹인 사료를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이 제가 손해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셨지 뭡니까?

이제 저는 확실히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뭔지 아십니까?”

 

좋아라 하던 양씨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마을 전체가 우리가정을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 겁니다.

이거야말로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출처 : http://blog.naver.com/yoonh20/120011692351


[주제별 분류] 크리스천의 삶 http://blog.daum.net/bible3/10964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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