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천국에 못 들어간 이유 눅16:30
이 글은 ‘회개’가,
전통적인 가르침인 ‘도덕적(죄) 돌이킴’의 차원을 넘어서
‘세상적, 물질적, 현세적 가치관(의식)에서 돌이킴’ 이란 사실을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1. 사랑 실천 소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재산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에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성경을 읽어보면, 척 드는 느낌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불행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은
바로 이 부자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나)입니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회개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에서 이 부자 같은 탐욕스러운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는 사람에게는
‘거지와 나사로’ 복음 말씀이 한낱 남의 이야기로만 여겨질 것이므로
삶의 변화(회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이 부자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이 부자는 복음서 자체로 볼 때
악한 행동이나 범죄를 일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다니며,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성공한 사람으로서 오히려 존경을 받았으면 받았지,
그에게서 아무런 표면적인 잘못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나사로가 대문 앞에서 음식을 주워 먹으려 했음을 알았지만
못살게 학대한 사실도 없습니다. 멀리 쫓아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습니다. 거지들은 당장 멀리 쫓겨납니다.
나사로를 문 앞에서 부스러기라도 먹게 한 것은,
당시 문화이기도 하겠지만, 부자의 관대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지옥 갔으니까)
자기 재산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사용한 것과,
불쌍한 거지 나사로에게 전혀 관심을 쏟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구체적으로 범하는 것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랑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게으름과 무관심입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 속에서 이 부자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찾아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장차 하나님 앞에서, 그 부자처럼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펀 글)
◑2. 회개하지 않아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눅16:30
본문 정황을 살펴보면, 부자가 지옥에 간 것은 회개하지 않아서였습니다.
다른 말로, ‘부 자체는 잘못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이아’인데
원의를 분석해 보면 정신 혹은 의식을 바꾸는 뜻입니다.
메타(바꿈) + 노이아 (의식, 가치관, 생각)
여기에는 ‘죄에서 돌아섬’도 물론 당연히 포함합니다.
죄를 즐기는 의식, 죄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의식에서 돌아섬입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세상적이며 물질주의적 가치관에서 오염되어 살던 사람이
그것을 회개하고(가치관을 바꾸고),
성경적 가치관으로, 영원한 가치관으로 돌아섬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전 인격을 포함합니다.
현세적 가치관에서, 영원한 가치관으로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지, 정, 의 전영역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도덕적인 영역=죄’에서만 돌이키는 것으로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그 부자(이름이 없어서)가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물론 도덕적인 죄를 많이 짓고서 회개하지 않았다는 뜻도 있지만
살아생전에 그의 세상적 가치관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기 집 문 앞에 있는 거지 나사로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저런 무능한 인간은 저렇게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가 만약 살아생전에 회개하였더라면(변화된 가치관으로 살았더라면)
날마다 자신을 위해 호화로이 파티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신에 거지 나사로를 불쌍히 여기며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갔을 것이고, 지옥에서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3. 회개란 가치관의 혁명 (필독)
http://blog.daum.net/rfcdrfcd/10940047
◑4. 최후 심판의 기준 (필독)
http://blog.daum.net/rfcdrfcd/11166307
◑ 참고 자료
▲지금 회개(의식의 변화)하지 않는 자들은 심판대 앞에서
결국 다음과 같은 7문장의 형태로 변명하며 후회할 것입니다.
1. 나도 알아요. 하지만 나도 사람이라고요.
2. 그게 잘못이란 건 알아요. 하지만...
3. 그게 옳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4. 나야 말로 진짜 불행한 사람이라고요.
5. 나도 한때는 내 가치관이 있는 사람이었다구요.
6. 그건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거라구요.
7.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로라 슐레징어의‘인생을 망치는 7가지 변명'중에서 (펀 글)
▲자백이란?
회개와 비슷한 말로, 자백(호모로게오)이 있습니다. 요일1:9
자백은, 제 혼자 이러이러한 죄들을 지었습니다! 라고 늘어놓는 게 자백이 아닙니다.
자백은 상대편이 얘기할 때 거기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부분에 대해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경 문맥 읽어보세요)
불신자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제 혼자 죄를 떠드는 건 불신자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자백도 단순한 뉘우침과는 다른 것입니다.
신자의 자백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펀 글)
▲실제로 회개 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자기 죄와 잘못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조명해 주셔서,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될 때
과거에 전혀 죄로 여기지 않았던 것들을, 죄로 여기게 되면서...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주님 은혜로 회개하게 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되어 위에서 은혜가 부어지면, 자기 모습을 직시하고 회개, 즉 돌이키게 됩니다.
성령님의 조명으로 한 회개는, 면역과 항체가 큽니다.
쉽게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냥 자기 스스로 뉘우침은, 쉽게 과거로 되돌아가기 쉽습니다.
주님이 이 과정에서 '혹독한 고난'을 주시기도 하는데,
이것은 항체가 되어, 다시 되돌아가지 말라는 따끔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오늘 다룬 주제는 앞으로 담론이 더 많이 형성되어지면서
신학적으로 더 많이 연구, 개선, 보완되어져야 할 내용입니다. <편집자
[주제별 분류] 죄, 복된 회개 http://blog.daum.net/bible3/11110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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