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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번연 John Bunyan

LNCK 2007. 4. 12. 22:31

▣ 존 번연 설교모음

John Bunyan 1628~1688

 

 

경건한 두려움 (경외심)

 

고난과 말씀

 

근심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치료

성령 인도에 민감했던 존 번연

상한 심령으로 서라

천로역정 (요약집)

 

 

◈존 번연(John Bunyan)의 생애                                         출처

 

나 존 번연은 1628년 영국 베드포드 근처 엘스토우 동네 초가 단칸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몹시도 짓궂었습니다.

부모가 가난한 데다 바쁘기까지 해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나는 들에 풀어놓은 망아지와 같았습니다.

 

되는 대로 일을 저지르고 욕도 하며, 신을 모독하는 말과 거짓말도 예사로 해댔지요.

패륜아, 깡패라는 말이 내게 어울렸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어느새 몸에 배어

동네에서 못된 짓 하기로는 나를 따를 아이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 참으로 다행한 것은 내가 엘스토우의 소학교에 다녔다는 거였습니다.

정식으로 졸업은 하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읽고 쓰는 것은 익힐 수가 있었으니까요.

극빈자에 속하는 내가 읽고 쓸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당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모처럼 배운 것들을 뒤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곤 했지만 말입니다.

 

가난한 현실은 장차의 벌이를 위해 아버지로부터 땜장이 일을 배워야 했습니다.

장날이면 땜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장터로 나가 장사꾼들과 마술사, 광대들,

건달패들을 구경하였고, 노전에 쌓아놓고 파는 싸구려 책들을 뒤적이며 읽어보곤 했습니다.

 

그 속에는 중세 기사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이야기 속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엘스토우 소학교에서 글을 익힌 덕분에

나는 이렇게나마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흔히 개구쟁이들이 부모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엉뚱한 짓을 하고,

더러는 위험에 빠지기도 하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들, 산, 강으로 쏘다니다가 수렁에 빠져 죽음 직전을 헤맨 적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그러나 못된 짓을 험하게 저지른 날 밤에는

꿈속에서 도깨비와 귀신들이 나를 잡아가려 했고,

가위에 눌렸고, 아무리 발버둥 처도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아직 열 살이 채 못 된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이런 무서운 환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주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내가 청년기로 접어드는 15세 때 불행하게도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설상가상으로 누이 마가레트마저 엘스토우 공동묘지에

어머니와 나란히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나는 슬픔과 허망함에 비통해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런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도 못되어 새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통과 슬픔을 잊고자 16세 되는 생일을 기다려

크롬웰 군대에 자진 입대하여 집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군대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성경을 대했습니다.

 

크롬웰은 군인들에게 하나님이 자기편에 서셨다는 확신을 갖도록 해주기 위해

군인 수첩 성경을 편찬 배부했어요. 군 규율은 극도로 엄격했고

나는 평범한 사병으로 3년간 복무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나는 또 한 번의 죽음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건 정말이지 엄청나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떤 싸움터에서 내가 출전할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부대의 병사가 대신 출전하겠다고 나갔습니다.

나간 병사는 보초를 서다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동료대신 살아남은 나는 정말이지

예고 없이 닥치는 죽음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버지의 권유로 곧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의 신부 메리는 후리후리하고 강한 인상의 용모에 착하고 신앙심이 깊은 처녀였습니다.

 

메리와의 결혼 생활은 나를 차분하고 안정된 행복으로 몰아갔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결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1650년에 첫딸 메리가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났고, 그후 엘리자베드, 존,

토마스가 차례로 태어났습니다. 그중에서도 나는 맹인 메리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나의 장인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으며 또 매우 가난하였는데

아내는 장인으로부터 지참금조로 「평범한 사람이 신앙에 이르는 길」과

「신앙의 실천」이라는 두 권의 책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 이 책은 나를 영국의 성공회 쪽으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제멋대로 살았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으며,

오히려 교회 성물이나 예식에 매혹되어 그런 형식을 숭배하는 미신에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죄에 관한 것이나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말이죠.

 

그러나 양심은 살아있어서 송사는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너무 큰 죄인이라서 그리스도는 절대로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미 때는 늦었다고 생각하고

절망의 수렁에 빠진 나는 자포자기하여

한 달 이상을 꿀맛 같은 죄로 잔득 배를 불렸습니다.

 

나는 곧잘 남을 저주하는 욕을 했습니다.

‘모가지가 부러져라’라든가 ‘골통이 깨져라’ 같은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나는 양심에 아무 거리낌도 없이 마구 해댔습니다. 이런 나를 보면서

나의 아내의 얼굴은 하루도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집 근처 가게 앞에서 미친 듯이 몹쓸 욕을 지껄이고

있는데 갑자기 가게 아주머니가 나오면서 나를 향해 “아이구!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녀석 같으니라구! 너같이 몹쓸 놈은 처음 보았어!

이러다가 동네 애들 다 망치겠네.”하면서 내게 욕설을 마구 퍼붓는게 아니겠어요?

 

그 아주머니도 동네에서 언행이 거칠기로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런 아주머니한테서까지 그런 욕을 먹는다는 게 너무 수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주머니의 욕설에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 사건은 충격이었습니다.

그 충격적인 일로 인해 나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부드럽고 점잖게 말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어떤 가난한 신자를 사귀어

그와 함께 성경 읽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기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애써 선하게 되려고, 그렇게도 좋아하는 종치기와 춤추기, 사냥,

운동 등을 접고 내면세계에 조금씩 초점을 맞추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변해가는 동안 가족들은 물론 동네에서도 칭찬이 자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칭찬을 듣기 시작하자 칭찬의 끈이 끊어질까봐 계율들을 어기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나는 처음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그런 노력은 애석하게도 그리스도의 선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의만 내세우려고 애쓰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변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땜질할 일이 생겨 베드포드 Bedford 로 가게 되었습니다.

베드포드로 가게 된 것은 정말이지 내 인생에 있어서 몇 안 되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그 집 길목에 이르렀을 때 나는 서너 명의 여인들이 집 문가에서

햇볕을 쪼이며 하나님에 대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들은 생활에 미치는 하나님의 손길, 자신들의 부끄러운 상태에 대한 깨달음

같은 말을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통해 사랑으로 그들의 영혼에 찾아오신 일이며,

사탄의 꾀임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받았으며

얼마나 자신들이 위선적인 선을 행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이제는 의를 행하는 것이 꺼려지고 싫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나는 물론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기쁜 나머지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죠.

그렇게 맑은 웃음을 띄운 얼굴을 나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나의 신앙이 완전히 무위 상태인 것과

내가 거듭나지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나는 그들과 사귀었습니다.

그러나 사귀면 사귈수록 실은 나는 초조해 졌고

조그만 일에도 양심의 송사를 받아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 후부터 나는 시종일관 영원이나 천국에 관한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눈으로 성경을 대하게 되었고,

베드포드의 가난한 여인들의 행복한 모습은 환상이 되어

나의 눈앞에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 때문에 그들에게 갈 수 없음을 생각하고 외로워졌습니다.

 

그 외로움이 계속되는 동안 내 속에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선택되어 있는 존재인가?

만일 은혜 받을 시기가 지나갔으면 어떻게 하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예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라는 유혹의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길을 걷는 도중에도 정신이 멍해져 몇 번이나 쓰러질 뻔하였는데

그러는 중에 나는 성경의 많은 구절 속에서 숨은 이치들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는 두려운 구절만 있는 게 아니고

위로의 구절도 있다는 걸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나는 오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광에 참여할 자는 이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에 의해 부르심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마음속으로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었는지 모릅니다.

도저히 붓으로는 나타낼 수 없을 만큼.

 

나는 거듭나는 상태의 영광을 알았기에 어떻게든 참여하지 않고는 못 배기었습니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편16:6)”

라는 말씀을 실감하며,

온 세상을 주고라도 거듭남의 경지와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나는 베드포드의 여인들에게 심경을 털어놓게 되었고

그들의 목사 존 기포드는 나를 그들이 모여 예배를 보는 베드포드의 독립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기포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기포드는 어떤 사람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로 인해 나의 죄의식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나의 악한 마음은 빛 가운데 드러났고, 나의 내부에서는 육욕과 타락이,

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악한 생각과 욕망을 잉태하여 미쳐 날뛰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고, 죄성이 가득한 나는 영원한 벌을 받게 되는

율법 아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양심은 예민해졌고, 바늘 한 개, 지푸라기 하나도 손대려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도 조심했고, 겁에 질려 움찔 거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뭇 마음속에서는 죄와 부정이 콸콸 솟구쳤고,

부정의 상태와 은총의 상태는 도저히 양립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의 틈새로 마귀는 나에게 ‘너는 구원을 얻기 어려운 마음을 가진

자가 되었다’고 속삭였고 나는 몇 년을 두고 이런 생각 속에서 고민하였습니다.

 

나는 차라리 짐승과, 새와 물고기가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죄나 지옥 같은 걸 모를 거였기 때문이었죠.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인간처럼 슬픈 존재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버림받은 죄인의 괴수

 

하지만 은혜의 날은 멀기만 했습니다.

나는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못해 심신의 병까지 얻고 말았습니다.

기다림의 틈새로 또 다른 유혹이 밀려 왔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신 것을 한탄했고,

때때로 성경을 의심하고 싶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기포드 목사는 나의 신앙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흔히 얽매이기 쉬운 과거 생활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교인들을 해방시키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경건한 옛 사람들의 경험을 알고 싶어서 골몰하던 중,

책장이 뭉그러질 정도로 고물이 된 마르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주석을 보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속엔 현자 자신이 겪는 상태가 깊이 다루어져 있었습니다.

마치 내 심정으로부터 시작한 글인 듯싶었죠.

나는 내가 겪는 시련들이 악마, 죽음, 지옥 뿐 아니라

모세의 율법에도 크게 관련되었다는 것을 그 책을 통하여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너무도 부족해서 주에게서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곧 들기 시작했습니다. 장자의 권리를 판 에서처럼,

축복을 거절당한 듯한 괴로움에 끊임없이 허덕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고 있을 때,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허물을 사하여 주신다’

라는 말씀이 나의 마음을 두들겼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추구하는 나의 마음 한 쪽에선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에서는 축복받기를 원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성구가 치고나왔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끼리 싸움이 붙었습니다.

말씀에서 말씀으로 치고받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고 사는 것조차 싫어졌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지 못했던 것은 죽는 것은 현실보다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바라보이는 파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나는 내 죄가

다윗의 간음이나 살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책감에 실려 오는 무서운 생각. 나는 내가 원하는 축복을 거절당하는

환상을 지울 수가 없었고, 예수를 판 가룟 유다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생각나는 성경

구절 하나가 강하게 나를 붙잡아 세웠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이사야44:22).’

나는 도망치던 발을 멈추고 되돌아보았습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그러나.... 그 강한 은혜의 말씀이 나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축복을 받고자 했으나 버림받았고, 눈물을 흘리며 구했으나 기회 얻지

못했다.’는 말씀 때문에 모든 것이 다시 어둠에 가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거절당했노라!”

“성령을 훼방한 죄는 사하심을 못 받고...”

 

이런 불쌍한 상태로 나는 어느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만약 이 죄가 성령을 거스리는 죄와 틀리다면

하나님, 알려 주소서’ 하고. 그러자 그때 다시 마음의 소리가 들렸고,

그것은 정녕 상쾌한 아침의 대화였습니다.

 

“너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을 거부한 일이 있는가?”

“없습니다.”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바를 거역하지 말라”

 

그것은 나의 마음을 꽉 붙드는 위엄이며 질책이기도 했고 미친 듯이

용솟음치는 허망한 생각을 진정시키는 계시였습니다.

나의 영혼은 평온해졌고, 희망이 가슴에 꽉 차올랐습니다.

 

천국 문 옆에 바로 지옥문이 있어 어떻게든 천국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의

앞을 가로막는 유혹의 힘이 천국 문 옆에까지 있다는 걸

나는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를 깊이 느끼게

되었고, 성경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진지하게 읽게 되었습니다.

 

▲넘치는 은총 (1644년)

 

그러나 갈아지지 않은 밭에 뿌려진 씨는 뿌리를 내리는 데에도 그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유혹자는 여전히 나에게 절망적인 음성으로 속삭였습니다.

‘넌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 못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니까 말야’하고 말했습니다.

주의 능력을 맛보면서도 나는 나의 죄만 들여다보았고,

죄는 항상 절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수많은 싸움이 다시 마음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나와 같은 가련한 인간을 하나님은 어떻게 권면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요11:4)’는 말씀이 곧 따라와 질문을 물리쳤습니다.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우리를 구원하사...(딤후1:9)’

 

▲‘제게 죽음을 허락하소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이런 긴 변론이 끝나갈 즈음 나의 심신은 다시 쾌유되었고,

그리고 마음속에 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단호하고도 절박한 생각.

그러자 의심케 하는 미혹의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까지 읽었던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의 말씀. 천만 천사들의 총회....라는 구절이 불현듯 가슴이

떠오르면서 나는 처음으로 의심의 그늘이 없는 온전한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저주의 늪을 빠져나와 은혜의 골짜기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어려서 몇 번이나 죽음에 던져질 뻔한 것을 건지셨던 하나님은

이제야 나에게 완전한 생명을 선물하셨습니다.

 

나는 마침내 생명책에 새로이 기록된 이름을 얻었습니다.

나는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되었고 기쁨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1655년. 나의 가장 친한 신앙 친구인 기포드 목사가 세상을 떠나자

나는 베드포드 교회 교회의 요청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인간의 죄와 그 죄가 불러들일 무서운 징벌에 대해 외쳤습니다.

비천한 땜장이 집사의 호소력 있는 웅변은 사람들이 듣기에 쉽고 안정감을

주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베드포드 부근 곳곳에서 수백명이 복음을 듣기 위해

찾아왔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1659년. 영국은 크롬웰이 죽고 의회가 해산되었습니다.

새로 등극한 챨스2세는 성공회(국교)와 청교도간의 화해를 모색했으나

청교도들이 예배 의식을 달리 함으로써

행정 책임자들과의 사이에 금이 가게 되었습니다.

 

청교도 목사들은 영국 국교에서 축출되고 국교 예배가 아닌 사사로운 집회는

모두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집회를 해산하지 않을 때는 구속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성공회 명령에 순응할 수 없었습니다.

예배들일 장소를 잃은 사람들은 가정에서 모이기도 하고, 마굿간 또는 길섶 등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찾아주시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서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660.11.12일. 한 농가에서 설교를 시작하려던 중 문이 열리면서

지방행정관의 부하가 나에게 체포영장과 수갑을 들이밀었고,

그 길로 나는 베드포드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온기 없는 불결한 짚바닥, 음산한 공기, 어둡고 초만원이기까지 한 감방.

12년간의 감옥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곳에서 <천로역정>등 몇 권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죄를 많이 짓고 살았던 나의 과거는

말씀을 붙잡고 강건하게 서는 일이 무척 힘들었었고,

그 미혹하는 목소리를 되새기며 나는 순례자의 길 곳곳에 있는 함정에 대해 적었습니다.

두 목소리 사이에서 헤매던 나의 싸움은 이렇게 해서

불멸의 책으로 승화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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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번연(John Bunyan)

1628년~1688년

 

영국의 침례교 평신도 설교자, 작가.

1628년 영국 베드퍼드의 엘스토우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남.

1644년 거듭남을 경험.

저서 : 《천로역정》, 《죄인의 우두머리에게 넘치는 은혜》, 《거룩한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