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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하나님의 관점 / 토미 테니

LNCK 2007. 4. 25. 22:41

◈하나님의 관점                   창22:1~14                    도서 요약 


아래는 토미 테니 저,「하나님의 관점」을 중심으로 한 설교문입니다.




◑1. 관점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관점을 가진다.

파란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면 온 세상이 파랗게 보입니다.

빨간 선글라스를 끼고 보면 온통 세상이 빨갛게 보이겠지요.

사람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안경으로 세상을 봅니다.


여기 자신이 쓰고 있는 안경을 우리는 ‘관점’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가진 많은 직간접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안경, 즉 관점을 만들어 온 것입니다.


▲인간의 관점은 죄로 오염되어 불완전하다

인간이 쓰고 있는 안경들은 모두 죄로 물들고 오염되어 있기에

세상을 바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때로는 보고 싶어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신앙이란, 자신의 안경을 벗고 하나님의 안경을 끼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내 안경 벗어 던지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안경을 내게 주십니다.

내 안경을 얼마만큼 벗어던질 수 있는가? - 이것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아버지의 관점만큼 바라보아야...

토미 테니는「하나님의 관점」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자신의 막내딸이 서너 살쯤 되었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가진 경험을 소개합니다.

처음에 어린 딸이 빈 엘리베이터를 타자 장식된 내부를 잘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층, 한층 사람들이 밀려들어 엘리베이터 안이 사람으로 꽉 찼을 땐

예쁜 장식들 대신 사람들의 무릎, 허리, 엉덩이만 보였습니다.


그때 당황한 딸은 아빠 토미 테니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안아주세요. 답답해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잘 보였으면 좋겠어요.”


아빠는 딸을 안아 아빠의 눈높이만큼 올려주자

딸은 아빠가 보는 것만큼 모든 것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토미 테니는 “아빠, 안아 주세요. 아빠 눈높이만큼 보고 싶어요.”

이렇게 소원하는 것이 신앙이요, 기도요, 예배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아빠의 품에 안겨 아빠와 같은 눈높이

즉, 아빠(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겁니다.


▲높은 관점에서 보면, 다 작게 보인다.

비행기를 타고 창공에 오르면 아래 있는 것들은 뭐든지 작게 보입니다.

집도, 학교도, 아파트도, 산들도 모두 작게만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겨 높이 올라가면

이 땅에서 그렇게도 크고 중요하게 보이던 것들이 모두 작아 보입니다.


가정, 직장, 돈, 갈등, 고민, 문제 등등 모두가 작아 보입니다.

왜요?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에서 보는 것과 높은 곳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보일 수밖에요!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목표는, 낮은 차원의 관점을 높은 차원의 관점으로,

- 즉 하나님의 관점까지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관점의 산 - 모리아


▲모리아 산은, 하나님의 관점을 얻는 산

성경연구가 제임스 스트롱은 ‘모리아’라는 뜻이 ‘야(Jah)께서 보신다’

즉, ‘야훼께서 보신다’ 라고 해석했습니다.

때문에 ‘모리아’는 ‘하나님의 관점의 산’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가 모진 시험과 고난의 산 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난 산,

하나님의 관점을 얻은 산이었습니다.


▲고난은 - 내 인생의 모리아 산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높은 시험의 산, 고난의 산으로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이 나를 망하게 하는 산,

나를 죽게 하는 산인 줄 알고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오르는 시험의 산은 그것이 무엇이든

이제 내 안경, 내 관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관점을 얻는

내 인생의 모리아 산이 될 수 있습니다.


▲모리아 산에 서게 하심은 -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라는 뜻

성서학자들은, 신약 최대의 사건이 갈보리 십자가 사건이었다면

구약 최대의 사건은 모리아산 이삭 번제 사건이었다고 말합니다.


큰 시험을 주신 이유는, 큰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기까지 시험은, 고통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아브라함을 잔인하리만큼 ‘높은 벼랑’(영적인 의미로)

‘하나님의 관점의 산’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지금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모리아 산, 그 고통의 산으로 인도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관점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3. 하나님의 관점을 가로막는 것: 우상


▲우상이란? 하나님의 관점을 빼앗아 가는 것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을 갖기까지

우리의 눈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재산이 귀했겠습니까?

백세가 훨씬 지난 그 때, 건강이 귀했겠습니까? 명예가 귀했겠습니까?

독자 이삭입니다.


가장 귀한 것, 생명 보다 귀한 것 -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달라고 하십니다.

내게 하나님의 관점을 빼앗아 가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건 우상입니다.


내가 지금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어 그것이 내 눈을 가리고 있다면

하나님은 지금 그것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관점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1. ‘내 것’이라는 관점을 버려라

창22:2에 보면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평소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내 것’이라고 주장했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바로 시험이요, 우상이요, 잘못된 관점이 될 수 있습니다.


보십시요. 아브라함은 이삭을 끊임없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내 것이란 존재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그 무엇을 내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 그것을 바치기 전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관점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신앙 없이 그 무엇을 받아도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이삭이라는 안경으로 그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하나님이요 곧 관점이었습니다.

때문에 지금 그것을 내려놓으라 말씀하십니다.


▲2. ‘내 급소’ 라는 관점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땅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 하나 뿐인 것

- 바로 아브라함의 급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치셨습니다.


잔인하게 느껴지십니까?

그러나 신앙생활에 이 급소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관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①물질의 급소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물질이라는 관점으로 모든 것을 봅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물질 때문에 시험에 듭니다.


②자기 생각, 자기 경험, 자아가 급소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를 죽이기 전까지 하나님의 관점을 얻을 수 없습니다.


③자존심, 명예가 급소인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 누구에게나 급소가 하나씩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관점이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자기관점이라는 우상이 십자가의 피에 적셔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바치라고 말합니다. 잘라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새싹이 돋아납니다.



◑4. 예배: 관점의 변화


(너무 길어서 이 부분부터 많이 중략하였으니,

원문을 보실 분은 인터넷을 통해 직접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5. 하나님 크게 보기(Magnify)


▲이삭의 고난=아브라함의 고난=아버지 하나님의 고난

아브라함은 순종에 걸림돌이 될만한 모든 장애물을 다 제거하고

사흘 길까지 무사히 마쳐 모리아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 말은 지금까지 참고 참아 왔던 아버지의 심정을 폭발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뭐라고 말합니까?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우리말 성경에는 “자기를 위하여”라고 했습니다만

원문에는 “위하여”라는 말이 없습니다.

정확히 번역하면 “여호와께서 자신을 준비하시리라”입니다.

이 말은 위대한 예언이 되었습니다.


이삭이 장작더미를 짊어지고 모리아 산에 오르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등에 십자가 나무를 지고 모리아산,

골고다 언덕을 올랐습니다.


여기 아브라함의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여기 죽으러 가는 이삭은 예수님의 그림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식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사실은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번제로 드리는 것의 예표였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순종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관점으로 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이란,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

돋보기로 보면, 작은 것도 크게 보입니다.


모리아(하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은 크게 보이고, 나의 문제는 작게 보입니다.

그러나 나의 안경으로 보면,

하나님은 작게 보이고, 내 문제만 크게 보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크게 본다. 확대하다’는 말을 영어로 magnify라고 하는데

이 말은 '찬송한다(크게 높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Magnify God - 하나님을 찬송하면, 하나님이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안경은 참 신비합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보입니다.

문제, 고난, 환란은 시시하고 작게 보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만 위대하게 보입니다. 그분만 크게 보입니다.

Magnify God! 하나님을 크게 높이라! 하나님을 크게 보라! 할렐루야!



◑6.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면 - 여호와이레를 경험한다.


보십시오, 자식도 죽이고 자기도 죽어 하나님께 바치려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죽이셨나요?

아니요.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이레’ 제물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이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면 하나님이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을 확대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제나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눈이 있기 전에 빛을 준비하셨습니다.

코가 있기 전에 공기를 준비하셨습니다.

발이 있기 전에 땅을 준비하셨습니다.

입이 있기 전에 먹을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갈데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지치고 피곤한 심령에게 새 힘을 주시고

근심 있는 사람에게 평강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죄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사죄의 은총을 준비하시고,

가난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부요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내 인생의 내일을 보는 자세입니다.



◑7. 하나님의 관점, 그 결론: 예수 그리스도를 얻다


▲하나님의 관점은, 부활신앙을 믿는다.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신앙은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이 모순될 때,

번성케 하리라는 약속과 아들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모순될 때,

신앙과 현실이 갈등을 빚고 있을 때

아브라함은 무조건 하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활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신약성서 히브리서 11장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삭을 바치는 이 자리에서 아브라함은

성경상 최초로 부활을 신뢰하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복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분명히 아이와 ‘함께’ 라고 말하고, ‘우리가’ 돌아오리라고 말합니다.

둘이 가서 하나를 죽이지만, 둘이 함께 돌아오겠다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입니까? 내가 죽으면 하나님은 나를 살린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관점, 신앙의 절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삭을 죽이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다.

이삭을 대신하여 준비해 주신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삭을 드리면, 하나님은, 내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고, 아들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까지 얻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결론입니다.


종종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해 불평하다가

내 힘으로만 살려고 하다가

순종 한번 못해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잃게 됩니다.


세상 다 얻고도 예수 잃으면 망한 인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도 얻어야 할 선물입니다.

이것을 얻는 단계가 신앙의 절정입니다.


하나님의 관점 - 그것은 세상을 내려놓고

내가 얻어야 할 신앙의 절정,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길입니다.

 

*관련글 : 회개란 가치관의 혁명(관점의 변화) http://blog.daum.net/rfcdrfcd/1094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