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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654 죄, 욕구, 충족

LNCK 2007. 4. 25. 14:26
 

◈죄, 욕구, 충족             요일2:12~17



항상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 문제의 근원이 되는 ‘죄’란 과연 무엇인가?

죄란 한마디로, 세상적인 방법으로 추구하는 잘못된 욕구 충족의 노력이다.


이 말은 욕구 충족 자체는 죄가 아니란 뜻이며,

‘잘못된’ 욕구 충족의 추구가 죄라는 뜻이다.



◑1. 욕구 자체는 죄가 아니다.


사탄의 전략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오해하도록 하는 것인데, 꽤 성공적이었다.

그러니까 죄성의 본질(욕구)을 해결할 하나님의 방법(충족)을 찾지 못하게 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우리를 미혹한다.


욕구는 사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건강한 인간은 누구나 욕구, 또는 필요가 있다.


아담과 하와도 어떤 욕구가 있었고,

그것을 (하나님처럼) 자기 충족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창조되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기본적인 욕구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채울 수 있도록 하셨고,

그래서 ‘돕는 배필’을 지어주셔서, 그 욕구들을 함께 채워갈 수 있도록 하셨다.

 

욕구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욕구 자체를 죄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죄의 문제를 처리하는데 장애를 일으키는데....


▲심리학자 아브라함 마슬로우가 말한 욕구들은,

①아기 때에는 육체적 필요를 채우려는 욕구 - 식욕, 배설욕, 안전 욕구가 있다.

이 때는 부모의 돌봄이 있어야 채워지는 욕구들이다. (소위 하위욕구)

스스로 자기 욕구를 채울 수 없다는 뜻이다.


②아기가 커서 어른이 되면서,

이 때는 스스로 식욕도, 배설욕도, 안전의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면 욕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상위 욕구로 찾아간다.


그것은 누구엔가 사랑(인정)받기 원하는 욕구, 소속의 욕구,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어 하는 자아실현의 욕구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볼 때,

모든 인간들은 욕구가 있고, 이 욕구들을 채우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필연적이고, 자연적이라는 뜻이다.


욕구 자체를 죄악시하는 경향

특별히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우리들은

욕구 자체를 죄악시하는 경향이 은연중에 배여 있다.

 

그러므로 성적인 욕구가 밀려올 때, 그것을 무조건 억누르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너무 터부시 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올바른 (또는 성경적인) 방법으로 충족시켜주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욕구는 누르면 누를수록 그것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금욕적인 삶을 산다고 해서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운동 등을 통해 대체 해소 방법을 찾기도 한다.)


욕구 자체를 죄로 생각하고, 그것을 무조건 억눌러서 해결하려고 하는 방법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그것을 계속 누르다 보면 발작적인 행동compulsive behavior을 나타내게 된다.

또는 중독addiction에 처하게 된다. 성 중독, 알콜 중독, 마약 중독, 일 중독 등



◑2. 정당한 욕구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충족하는 것 - 그것이 다.


▲정욕이란?

우리 안에 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은 - 나쁜 것은 아니다.

내 자신을 계발해서 자아실현을 하려는 것 - 하나님이 주신 정당한 욕구다.


그러나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채우려는 것,

즉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시기에 채우려고 하는데...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정욕’이다.


성경은 정욕을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이 3개로 분류하는데,

*육신의 정욕(가장 하위적 욕구)

*안목의 정욕(중간욕구)

*이생의 자랑(자아실현, 가장 상위적 욕구) 이다.


▲1. 육신의 정욕(성욕, 식욕 등)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한 성적인 욕구를 주셨는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과 기준은

결혼, 즉 남편과 아내의 신성한 테두리 안에서의 욕구 충족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기준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식(결혼)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욕구를 채우기 원한다.

결혼까지 기다리지 못하거나, 결혼의 테두리 바깥에서 채우려는 것은

바로 육신의 정욕인 것이다.


▲진노의 자녀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3

 

‘진노의 자녀’들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내려오는 원죄, 죄성이 있어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본질상 육신의 정욕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즉, 잘못된 방법으로 자기 육체의 욕구들을 채우려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와 같은 것들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다.


▲2. 안목의 정욕 (소유욕)

이것은 우리의 눈과,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탐욕적으로, 위선적으로 (잘못된 방법으로) 자기욕구의 충족을 시도하는 것이다.


더 가지고 싶고, 그래서 시기하고 질투하며 소유욕에 붙잡힌

각종 마음과 생각의 동기들이 안목의 정욕을 일으키며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 각종 다툼을 일으킨다.


▲다투는 이유

그래서 부부가 서로 싸우고,

자녀 간에 서로 다툰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약4:1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 구함이라 약4:2~3


우리가 소유 욕구가 있고, 그것을 채워야 되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정당한legitimate 방법을, 구하라고 하신다.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 구함이라


그러니까 구하지도 않고, 자기 방식대로 안목의 필요들을 채우려고 하는

스스로 욕심적인 방법을 추구하며, 지금 당장 그것들을 구하며,

하나님의 방법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안에 싸움과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싸움이 일어나는 이유가,

이런 안목의 정욕에 의해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3. 이생의 자랑 pride of life, (자랑, 명예욕)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위해, 자아실현을 위하여 성공을 추구하며  

우리는 엄청난 정력과 노력을 기울인다.


내가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인물

또는 우리 부모님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학교에서 죽어라고 공부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되도록 일하면서

인정받고 싶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것을 자기 시대에서 못 이루면

자기 자녀를 통해서라도 이루려고,

그런 대리 만족을 위해서... 우리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학교를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학원 등으로 혹사시킨다.


이것은 비록 가장 상위욕구이긴 하지만,

그것을 그릇된 방법으로 추구할 때

- 죄악이라고 인정하는 크리스천들은 많지 않다.


우리는 성공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한다.

자랑스러운 일은 무조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채우지 않는 모든 것은

이것(이생의 자랑)은 가장 고차원적인 죄성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기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바울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호소한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3:18~19


(19절 쉬운성경으로 다시 보면) 그들의 삶은 결국 멸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배(腹)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며,

수치스러운 일을 하고서도 도리어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세상일에만 관심을 둡니다 


이것이 정욕이고, 이것이 죄성이다.

하나님이 주신 정당한 욕구를, 우리 사람의 방법으로 채우는 것은

아무리 자기 생각에 정당하다고 합리화 하지만,

사실은 자기 정욕이다.


우리가 내 정욕대로 행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 삶에 죄의 뿌리가 얼마나 깊숙이 박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3. 이런 죄성의 근원


▲이런 죄성은 어디서 나올까? →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5


즉, 죄성(육신, 안목, 이생의 자랑)의 근원은 세상을 사랑함에서 나온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될 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2:16


(중략)


우리 마음속 깊은 갈망들이 세상으로, 세속적으로 향해(코드가 맞춰) 있기 때문에

세상적 욕구를 채우면 내가 행복해지리라는 착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정욕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참 만족의 근원이 아니라면, 참 만족은 어디서 구해야 하나?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2:13


이 본문은, 두 가지를 말한다.

①세상은 물을 저축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며,

-그래서 아무리 욕구를 채우고 또 채워도... 절대 만족 안 된다는 것이다.


②또한 생수의 근원은 하나님,

즉 인간의 참 만족의 근원은 오직 주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수(참 만족)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버려버리고

물을 저축치 못할 웅덩이만 계속 찾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다.


▲관점의 차이는 신학적 문제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런 것 없이 무슨 재미로 사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모조리 죄라는 규정이 싫어서,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성경은, ‘나(하나님)로 만족하라’고 하신다.

신앙생활의 성숙이란,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쌓아가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일부에서는

예수 믿어서 뭘 얻고, 뭘 가지고, 성공해야 행복해진다고 강조하는

그런 신학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본다.


성경이 말하는 참 행복은,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성경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 더 많은 신학적 정립이 필요하다.

(녹색은 편집자 해설)


▲사례 연구

어떤 청년이 어쩌다가 포르노에 한 번 접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성구암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발버둥을 쳐도

틈만 나면, 그 장면이 생각나면서 포르노에 더 깊이 빠지게 되는 문제를 겪었다.


결국 그는 상담가인 래리 크랩에게 이 문제를 상담했다. 

크랩은, 결국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채우지 못한 사랑’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 욕망을 무조건 참고 억누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커서 육신의 아버지의 사랑을 더 이상 못 받더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누리고 채우면

그런 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공허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정욕, 또는 포르노의 환상적 사랑이 자기를 유혹할 때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사랑에 충분히 충족되면,

공허함이 없고, 다른 갈증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족되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 청년이 이길 힘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4. 죄를 이기며 성숙해 가는 성도


▲1. 어린아이의 단계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요일2:12


어린아이 단계는 죄의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단계이다.

크리스천은 모두 이 단계는 가지고 있다.


▲2. 청년의 단계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2:13


젊은이들이여, ...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살아 있으므로,

여러분은 악한 자와 싸워 이겼습니다  2:14


말씀을 통한 양육을 통해서 신앙이 성장하면,

마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청년처럼 강건해진다.

말씀으로 악한 마귀의 유혹을 싸워 이기는 단계이다.


▲3. 장년의 단계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2:14


하나님을 깊이 앎(친밀한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 때(‘안다’-부부가 잠자리에서 서로 아는 것),

그래서 죄를 버리며 살 때

그는 장년의 신앙을 가졌다고 요한은 증거 하는 것이다.


요한이 요한일서 전체를 통해서 말하는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래서 그 사랑에 충족되어서 다른 정욕을 구하지 않는 것,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크리스천이 욕구를 정당하게 바로 충족시키는 방법인 것이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그 깊은 사랑의 관계에 들어가면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갈증이 없어진다.

(남들 눈에는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07.04.08.

 

 

[주제별 분류] 죄, 복된 회개  http://blog.daum.net/bible3/11110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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