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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 이스라엘의 하나님

LNCK 2007. 4. 28. 21:54
 

이스라엘의 하나님                   창32:22-30



▲들어가는 말

언젠가 초등학교 3, 4학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추억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아빠와 레슬링(씨름)을 한 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답하였다.

아빠가 자신의 레벨까지 내려와서 함께 놀아준 것이 가장 큰 인상적impression

인 기억이었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씨름을 하셨다.

그리고 그 씨름을 통해서 야곱은 이스라엘로 변화 되었다.

‘이스라엘’이란 단어는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씨름하다’, ‘하나님과 겨루다’라는 뜻이다.

즉, ‘Struggle with God’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자주 부르셨다.

시편기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많이 노래했고,

선지서에서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바로 서라’고 하였다.


그리고 신약의 마2:6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기록하였다.

엡3:6에는 복음으로 구원받는 모든 이방인들도 이제는

이스라엘과 함께 후사가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구원받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이스라엘의 후손이라는 의미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한 나라의 이름이 되었지만

본래 그 의미는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하여 이겼다는 뜻이었다.



▲하나님은 자신과 씨름하는 자를 기뻐하셨고

오늘도 그런 성도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시는 것은

우리들도 나아와서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과 씨름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야곱이다.

그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읽어보며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로 하여금

그 자리까지 나아오기를 원하시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은 무엇을 깨닫고

이스라엘이 되었는지를 묵상해 보자.



◑1.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겨룸(Struggle)은 하나님과의 씨름이다.


▲야곱의 헛된 씨름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야곱은 지금까지 자신의 운명과 씨름해 왔다.

그는 장자권과 씨름했고 장자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의 시스템과

씨름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출세를 가로막는 사람들과 씨름했다.


그는 에서와 라반과 씨름했다.

이와 같이 그는 나름대로 세상의 많은 것들과 씨름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이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다.


20년 전에 그는 홀로 집을 떠났다.

외삼촌인 라반의 밑에서 20년을 보내며 철저하게 낮아지는 것을 배우면서도

나중에는 라반과 겨루어 이기려고 온 힘을 다하였다.


그리고 야곱은 20년이 지나고 실제로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는 두 아내(사실은 네 명이라고 해야 하지만)와 11 명의 아들들,

그리고 수많은 부귀영화를 이루고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기업의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려 할 때에

그가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가 있었다. 형 에서를 만나는 일이었다.


에서는 지난 20년을 벼르며 기다렸을 것이다.

그는 4백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제 야곱은 한 가지를 깨닫는다.


지금까지 자신이 싸워서 획득한 것들이

이 한 순간에 다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창32:9절에서 비로소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22절부터 보면

그는 가족들로 하여금 먼저 얍복 나루를 건너가게 하고 자신은 홀로 남는다.


혹자는 이것을 보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자신의 가족을 방패로 삼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홀로 기도해야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밤이 새도록 하나님과 씨름을 했다.


이것은 평범한 기도의 자리가 아니었다. 온 몸으로 겨루며 기도하는 자리였다.

자신의 환도뼈가 상할 정도로 겨루고 씨름한 자리였다.


▲우리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겨룸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지 않는가?

학위를 위한 겨룸, 재물과 돈을 위한 겨룸, 인정을 받는 자리를 위한 겨룸,

나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강자와, 사회적 시스템과의 겨룸,

나의 운명과의 겨룸으로 승부를 보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가?


하지만 인생의 다른 겨룸들을 통해서 우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 밖에는 없다.


▲성 어거스틴의 씨름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주여 주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가슴에서 쉴 수 있을 때까지

절대로 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는 한 때 인생을 방황하던 자였다.

명예와 지식과 부를 미련 없이 누리던 자였다.

그의 방황과 방탕은 끝이 없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리로 나아가서

그의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렬하는 순간,

모든 응답과 평화를 찾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리에서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방탕하는 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야곱은 믿는 자였지만 하나님과 씨름하며 밤새 기도하는 것을 몰랐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씨름이라는 것도 몰랐다.


▲사도 바울의 씨름

사도바울은 죄악을 극복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고백하였고,

나의 힘과 나의 능력으로 해보려고 하다가 계속 실패하며

죄를 짓고 마는 자신을 보고 한탄했다.


그러나 어떻게 모든 것이 해결 되던가?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승부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리에서 깨달은 진리였다.


▲오늘 우리는 무엇과 씨름하고 있는가?

명예, 재산, 운명, 사회적 시스템, 찢어진 인간관계…

이런 것들과 씨름하고 있다면 우리는 헛된 투쟁struggle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씨름하여야 한다.

온 정성과 온 마음과 온 몸을 드려서 하나님과 씨름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환도뼈가 위골 될 때까지 투쟁struggle해야 한다.

우리 모두 이러한 위치까지 나아가며 하나님과 씨름하자.



◑2. 인생의 가장 중요한 승리는 “굴복할 때” 주어진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그의 환도뼈가 위골 될 때였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와 씨름하지만,

한 순간에 우리의 환도뼈를 위골시킬 수 있는 분이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진정한 승리를 맛볼 수 있다.


▲할례 역시 전적 굴복의 의미

창1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거행하라고 자시하신다.

할례는 너와 너의 자손들이 영원히 몸에 지니고 기억할 언약이라고 말씀하신다.

할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을 배우라고 요구하신다.


우리는 할례를 통해서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자신의 몸에서 가장 은밀한private 부분도

하나님께 노출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할례를 통해서 피를 흘림으로

자신의 생명 자체가 하나님의 것인 사실을 알게 하신다.


▲완전히 굴복한 야곱

4백 명의 군사들 앞에서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방법으로나 해결책으로는 다룰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거기다 그는 이제 환도뼈가 위골되어 일어날 수조차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무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순간을 기다리셨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상황까지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에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바닥난 상황이 되면 그 때에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무한한 자원resource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내게 아무것도 없으니 그 때에 가서야 하나님께 눈을 돌리게 된다.

그 때에 우리는 이스라엘로 변화하게 된다.


▲내 능력, 내 자원 가지고는 턱도 안 된다.

모래 위에서 웅덩이를 파며 노는 아이들을 보라.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웅덩이에 물을 가져와서 붓는다.

물은 이내 스며들고 사라져 버린다. 아무리 많은 물을 부어도 결과는 같다.


하지만 눈을 조금만 들어서 바다를 보면

거기에는 아무리 부어도 전혀 변하지 않는 엄청난 대양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웅덩이가 완전히 빈 웅덩이라는 사실을 알고

주님 앞에 굴복해야 한다.  렘2:13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때까지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신다.


▲파산된 사람이 복이 있다. 파산의 자리로 나가시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영적으로 파산된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이다.


굴복은 두 손을 들고 나아가는 것이다.

바로 이때에 우리에게는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우리는 이스라엘이 된다.

그 자리를 지나가야만 우리의 환도뼈가 위골된다.


그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하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씨름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다.



◑3. 인생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창32:30절을 보면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죽지 않고 살았다고 했다.

‘결코 살 수 없는 자리에서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것이다.


원래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출33:20절을 보면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얼굴을 대할 수 없었다.

이것은 마치 50와트, 75와트의 전구들이 1억와트의 힘을 만나서

순식간에 터져 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태양을 바라볼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있는 자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야곱은 살았다. 야곱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도 살아남았다.

이것은 명백한 은혜이다.


이제 야곱은 이 은혜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발견한 후에 그는 변화 되었다.

그는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환도뼈가 상해서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자가 되었다.

그는 늘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절뚝거림이 그에게 일어났던 엄청난 은혜를 느끼게 해주는

도구가 되었다.


그 날 그에게 일어났던 일은 꿈이 아니라

진짜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실을 그가 절을 때마다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 날부터 그는 은혜를 아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바로 그 은혜에 대한 발견, 그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그를 이스라엘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여러분 중에도 야곱처럼 육체적으로 불구가 되었든지,

혹은 정신적으로 과거에 심한 상처가 있으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이 야곱의 환도뼈와 같은 은혜의 도구가 되기 바란다.

그것을 쳐다볼 때마다, 상처가 기억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더욱 붙드시는

‘이스라엘’이 되시기 바란다.  (후략)

 

▲마치는 말

지금까지 다른 것들과 씨름해 왔다면 이제 하나님과 씨름하자.

지금까지 다른 것들과 싸워 왔다면 이제 하나님 앞에서 굴복하자.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씨름하기를 원하신다.

어려운 환경일수록 하나님과 씨름할 때라고 여기라.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것이다.


오늘도 우리와 씨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만나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며

그 분의 성호를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인터넷 설교 발췌,  07.04.22.  *원제목 : 이스라엘의 하나님,  창32: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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