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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가난한 예수, 부요한 나

LNCK 2007. 6. 9. 20:14
◈가난한 예수, 부요한 나        고후8:9              03.12.21.이중표목사님설교 녹취 



▲부자 되기 열풍이 과열된 세상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축복하셨다.

그리고 부자들보다 가난한 자들을 더 많이 사랑하셨다.

친히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들 것이다! 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놀랍게도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은 받으려 하지 않고

저마다 모두 부자가 되려는 소원을 갖고 산다.


사실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다.

물질적으로 가난하게, 항상 부족함 가운데 살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난이란 그만큼 힘들고, 살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든 행복과 삶의 보람을 ‘부자가 되는 것’에 있다고 본다.

가난한 사람들은... 불행하고, 인생을 괴롭게 살아간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신다.

빈부가 섞여서 살거니와 둘 다 지으신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22:2

가난한 자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임을 유념하시라!


사실 생각한다면,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그 자체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부자는 부자대로.. 고민이 있고, 괴로움이 있다.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대로.. 탄식이 있고, 슬픔이 있다.


▲부자 vs 부요한 자

그런데 이 세상에는 부자라도.. 비참한 부자가 있고,

가난한 자라도.. 그 가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도 한다.


부자는 소유의 개념이고,

부요한 자는 존재의 개념이다.


부자는.. 물질을 많이 소유한 자라면

부요한 자는.. 마음의 풍부함을 많이 누리는 사람이다.


부자는.. 땅의 것을 소유했다면

부요한 자는.. 하늘의 것을 소유한 것이다.


부자는.. 많은 것을 가지는 마음이고

부요한 자는.. 많은 것을 버리는 마음이다.


그래서 부자는.. 이 땅에서 땅의 영광을 누리지만

부요한 자는.. 이 땅에서 하늘의 영광을 누린다.


부자는 자기 생애 동안만 영화를 누리지만,

부요한 자는 죽은 이후에까지 영원토록 영화를 누리고,

그 인격의 위대함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된다.


▲4종류의 가난

①운명적 가난

하층민 또는 빈국에서 태어나는 경우... 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가난하게 된다.

그는 보통 죽을 때까지 가난하게 살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운명적 가난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

오늘날처럼 돈이 넘치고, 천정부지로 집값은 치솟는데,

월급 타서 저축해서 집 한 채 사겠다는 사람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②보상적 가난

일반적으로 죄지은 결과의 가난이다.

게을러서 가난하고, 방탕해서 가난하고,

타락해서 가난하고, 탕진해서 가난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


③편리한 가난

이것은 자원적인 가난으로서

남들은 가난을 다 기피하고 혐오하는데, 도리어 가난을 좋아한다.


자기가 가난해짐으로 편리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절의 승려들, 수도사들은

일생동안 '가사'라는 단 한 벌의 옷을 입고 살아간다.

이 사람들에게 밥은 다 공짜로 준다. 잠자리도 거저 준다.

일생동안 편안하고 편리하게 수도에 전념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희생적 가난

그는 부자이면서도 모든 물질을 자원해서 포기한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필요한 자들을 위해서, 불행한 자들을 위해서

자기 가진 것을 포기하는 이 가난은 희생적 가난이다.

그리고 이 가난은 남을 살려주는 별세적 가난이다.


희생적 가난만이 역사에 가치가 있는 것이며,

이 가난만이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내는 가난이 된다.


▲희생적 가난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한 없이 부요한 분이시지만,

가난한 자로 나시고, 가난한 자로 사시고, 가난한 자로 죽으셨다.


우리 주님은 짐승처럼 마구간에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이셨다.

궁전에서나 저택에서 태어나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주님은 가난하게 태어나셨다.


주님은 황금저택에서 사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새도 깃들일 곳이 있고, 여우도 굴(자기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라고 하셨다.

 

땅이 그 분의 침상이었고, 바위가 그 분의 베개였다.

시냇가는 그 분의 세면장이었고,

산들바람은 예수님이 얼굴을 닦으시는 수건이 되었다.

바람은 그분의 머리를 빗어드리는 아름다운 빗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운명하실 때에도.. 가난한 자로 죽으셨다.

모든 옷을 벗기우고, 그 남은 옷까지 군인들이 제비 뽑아 나눠가져 버렸다.

 

주님은 그 흔한 시종도 거느리지 않으셨다.

주님은 많은 부자들과 고관들의 친구가 되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친히 죄인들의 친구요, 가난한 자의 벗이 되셨고, 그들을 종종 찾아 가셨다.


무덤에 장사될 때에도, 자기 무덤이 없어서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을 사흘 동안 빌리셨다.


정말 주님은 가난한 자로 나시고, 가난한 자로 사시고, 가난한 자로 죽으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친히 가난을 모범으로 보이셨다.

그리고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우리도 가난하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저는, 우리가 일부로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부자로 살더라도, ‘희생적 가난’의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은, 물질에 대해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자기가 노력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소유했으나 없는 것(가난한 자)처럼 살라고 성경은 교훈한다.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신 이유가 무엇인가?

- 원래 부요하신 분이지만,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하게 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요할 수 있지만, 타인을 위해서 스스로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인간은 원래부터 가난한 자가 되어버렸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원래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허락받았으나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서,

자기 후손인 모든 인간에게 ‘가난’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그래서 혹자는 아파트를 몇 채 소유하고 있으나,

그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더 갖고 싶어 한다.


아무리 자기 금고에 금은보화를 가득 쌓아두고도

이제 그만 가져야 되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새롭고 신기한 보화를 보면, 그것도 또 갖고 싶어 한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롬3:13

 

인간의 탐욕은, 마치 짠물을 마신 사람처럼, 먹을수록 더 갈증을 느낀다.

그 이유는, 마음이 가난하기(안 좋은 의미) 때문이다.

만족을 모르고 그 마음에 부요가 없다.

 

오늘 이 가운데 ‘나는 이제 더 이상 가질 필요 없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정말 부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대로

끊임없이 더 갖고 싶은 욕망에 허덕이고 있다.


▲미국에 어떤 분이 신문에 현상금을 걸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는다면, 그에게 1만 불을 줄 터이니 응모하시오!’


많은 사람이 응모했다.

혹자는 자기 가정이 너무 행복하고, 부부가 서로 너무 사랑한다고 했다.

혹자는 이 세상은 모두 다 아름답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삶이 행복하다고 했다.

자기는 아무 걱정이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라는 사람이 당선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경지다.

끊임없이 뭔가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금 자기가 ‘불행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다윗은 일찍이 행복한 삶에 대한 고백을 이렇게 하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1

 

이 경지가 바로 행복의 경지에 이른 신앙인이다.


이 땅에 대부분 사람들이 지금 행복하지 못하다고 고백하는데,

그것은 뭔가 지금 자기에게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롬3:13 의 삶을 살고 있다.


여기서 ‘열린 무덤’이란, 마치 무저갱처럼 끊임없이 빨려 들어간다는 뜻이다.

아무리 집어넣어도 만족할 수 없는, 채울 수 없는 곳이다.

이것이 오늘 현대인의 비극인 것이다.


▲예수님은 내 인생에 참 만족을 주신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5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4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하늘의 부요’를 누리게 하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참 만족’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처럼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하게 된다.


오늘도 우리 모든 성도들 속에 주님이 주시는 부요함이 넘치기를 축원 드린다.

(성도 일동 : 아멘!)


예수님은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 마음이 가난뱅이처럼 허덕이고 있는 이 때,

우리에게 부요를 주시려고 이 땅에 친히 오셨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부요를 누리라고 말씀하신다.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심이라 고후8:9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 나는 부요합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축원 드린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부요는 심령의 부요다. 인생의 부요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끝없는 감사와 은혜로 채우는 것이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15:16


▲사실 부자가 된다고 해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부자가 되면 세 가지 큰 고민이 생긴다.


①정신적 고민이 생긴다.

가난한 자보다 부자가 근심이 월등히 많다.

그 가진 물질을 지키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투자를 잘못해서 돈을 잃게 되면... 미치게 된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돈 몽땅 날려서 미칠 일은 적어도 없다.


돈을 가지면, 곁에 사기꾼들이 많이 붙는다.

그래서 사기를 당하고,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 때 자기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은 영양실조, 병원비가 없어서 오래 못살지만,

부자는  마음의 분노 때문에 오래 못산다고 한다.


②양심적인 고민

가진 자는 양심이 괴롭다. 왜? 반드시 가난한 자가 요구하기 때문이다.

친척이, 형제가 요구한다. 그것을 뿌리치지만, 마음은 괴롭다.


제가 큰 교회 목사 되니까 실감하고 있다. 약한 자들이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도와주려고 해도 끊임없어 퍼 줄 수도 없고, 

안 주면 나 자신이 괴롭고,

그 사람이 원망할 생각을 하니 나 자신이 정신적 고민이 있다.


③신앙적 고민

주님이 말씀에 '네가 가진 것을 필요한 자에게 주라'고 하신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말한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

이에 부자청년이 슬픈 기색을 띄고 번민하면서 돌아갔다고 했다.


그래서 부자라고 해서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정신적 고민, 양심적 고민, 신앙적 고민 등 엄청난 고민이 있다.


▲그런데 이런 저런 고민하지 않는 부자들도 있다.

그들은 완전히 지옥 갈 사람들이다.

그러니 부자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돈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돈을 지키고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왜?

자기 양심을 꾹 덮어두고 살아야 하니까...


여러분 예배를 드리면서 십일조를 안 바치려고 해 보시라. 

벌써 양심이 콱 찌른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돈이 없으면 차라리 ‘하나님, 저 없는데요!’ ... 이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돈이 있는데 안 내려고 하면... 양심에 가책이 온다.


▲돈을 의지하는 마음, 돈 없이 못 산다는 마음은 잘못!

우리가 사실 돈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돈을 믿고 살려는 것이다.

‘돈 없이는 못 살아. 돈이 있어야 살지!’


한 부자가 사업에 부도나서 형제를 찾아가니.. 외면하고,

이웃을 찾아 가니.. 본 척도 안하고,

부모님을 찾아가니.. 눈빛이 예전과 같지 않고...

그러니까 ‘다 소용없다. 돈 벌어야 해!’ 라고 이를 악 물고 결심한다.


그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책망하신다.

‘그래 돈이 최고냐?

그래 돈을 최고로 네가 알고 사업해서 얻은 것이 이것이냐?’


그 때, 그가 무릎을 꿇고 ‘주여, 주님이 최고입니다!’

이 고백을 할 수 있을 때, 그게 바로 신앙이 바로 선 것이다. 


내가 어떤 경우에도 돈 없이 못산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없이 살 수 없네! 이 고백을 해야 한다.


▲돈의 행복보다, ‘가족사랑의 행복’을 누려야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가난해도.. 사랑하면서 살아야한다.

우리가 실패해도.. 사랑만은 버리지 말아야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화목하게 살아야한다.

이것이 진정한 복이다.


우리가 나이 들어서, 젊을 때에 남편에게 돈벌어 오라고 닦달했지만,

6~70세 나이 들어가면서 그렇게 무조건 “돈, 돈” 하지 않는다.  

 

둘이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에 남는 거요.

‘당신은 내게 소중한 아내야. 내게 소중한 남편이야!’

이런 사랑의 부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말 행복해 진다.


앞서 우리 인생의 참 만족은, 신앙 안에서 얻는다고 했다.

거기엔 가족사랑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진정 이 땅에서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란다.  [주제별 분류] 물질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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