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전략 - 내부의 적과 싸우라 왕상18:20~24
▲오늘날 조롱당하는 교회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왕상18:27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조롱을 하고 있는데,
혹시 지금 우리 교회를 향하여, 세상이 똑같은 조롱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김용옥 씨 같은 사람들이 날마다 빈정대면서 교회를 조롱하는 것처럼,
지금 엘리야가 빈정대듯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조롱하고 있다.
꼭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사람들에게만
이렇게 본문처럼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교회 안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자칫 잘못하면 이런 무기력함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사실이 오늘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오늘날 교회가 내우외환의 위기 가운데서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있다.
▲신문기사에서 영감을 얻다
제가 이런 문제로 한 두 주간 마음을 아파하며 고심하고 있던 중에
어제 토요일에, 어떤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깨달음이 왔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최근 미국의 대선을 앞두고,
과연 어떤 대통령이 당선되어야 할까... 논할 때
지금과 같은 미국의 상황에서는
바로 존 F. 케네디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기사였다.
당시 미국이 냉전시절 구 소련과 대립되어 있을 때
존 F. 케네디가 너무나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국가적 위기를 모면했는데,
오늘도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타임지의 기사 속에 이런 머리기사(헤드라인)가 있었는데,
그것이 제가 한 주간 내내 고심하던 문제에 대한,
주님이 주시는 응답처럼 보였다.
첫 번째 머리기사는, 미국이 충분한 군사력을 갖춰야 (적의) 무력사용도 억제할 수 있다.
즉, 교회가 영적으로 충분한 실력을 갖춰야, 이단의 무리들이 함부로 까불 수 없는,
그들을 충분히 억제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뜻으로 제게 다가왔다.
두 번째 머리기사는,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민주적 이상에 따라
평등권과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1963.11.22. 암살되던 날, 연설하려던 내용)
즉, 교회가 바깥에 있는 적들에 대해 뭐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김ㅇ옥 씨 조용하라고 떠들 필요 없다. 이단들 다 떠나라고 고함칠 필요 없다.
우리가 더 실력을 갖추고, 신령해지고, 영적으로 더 충만해지면,
그런 이단의 무리들은 저절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단들이 득세하는 교회는,
이미 내부적으로 교회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신문 기사를 읽어가는 중에 그 글이
갈멜산의 엘리야의 대처 방식과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엘리야의 전략 - ‘내부의 적’들과 싸우다.
▲외부의 적들에 앞서, 내부적 아군들과 먼저 싸우는(?) 엘리야
엘리야가 지금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데,
그들과 싸우기 이전에... 먼저 백성들을 상대하고 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 마디로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18:21
진짜 무서운 문제의 원인은... 바알의 선지자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백성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앞서 머리기사처럼, 백성들이 내부적으로 실력을 갖추고 영력을 회복해야
바알과 아세라의 외부적 적들의 난동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마디 말도 대답하지 않는 백성들에게
엘리야가 설득을 시작한다.
지금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백성들에게 말씀으로 설득하며, 내부적 영력을 회복시키고 있다.
그의 노력은 효과가 있었다.
엘리야가 말하기를,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하니
백성들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왕상18:24 (이제야 속시원한 대답을 시작한다.)
이렇게 무기력한 백성들을 정화시키고 변화시킨 다음에야
비로소 엘리야는 외부의 적들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움을 시작한다. 18:25~
▲교회의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 한 가지를 발견한다.
‘적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적은 내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바깥에 있는 불교신자들이 아니다.
바깥에 있는 이단의 무리들이 아니다.
실제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적은, ‘내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깨달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7:21
악이 어디 있는가 하면.., 내 안에 있고,
교회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교회공동체 내에서
교회를 비판하기 좋아하고, 교우들에게 비난을 일삼는 사람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나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셔야 한다.
*관련글: 주선애 교수님의 회개... 내가 바로 한국교회 침체의 원인제공자!
http://blog.daum.net/deokk/12045911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적’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1.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라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18:30
엘리야는 외부적인 적들과 싸우기 전에, 내부적으로 백성들과 함께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오늘날 우리가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즉, 내 안에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는가?
내 안에 무너진 제단을 복구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우리 내면에, 다시 복구시켜야할 ‘무너진 제단’은 없는가?
영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 무너진 영역이 없는가?
그것부터 먼저 복구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제단이 무너져서
세상적 가치관이 봇물 터진 것처럼 교회로 밀려들어오고 있는데,
‘머뭇머뭇하고 한 마디도 대답지 않는’
우리의 무너진 상태를 먼저 복구시켜야 한다. 18:21
▲오늘, 제단에 불이 내리는가?
오늘도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엘리야 때만 불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불로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죄송하지만 바알과 아세라 같은) 잡신이라면 불로 응답 못 하신다.
그러나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므로.. 반드시 불로 응답하신다.
그런데 만약 나의 마음 제단에, 오늘날 불이 내리지 않고 있다면,
제단이 무너진 증거이다.
우리 안에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무너진 제단이 다시 수축된다면,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분명히,
우리들 심령, 교회, 가정 안에서...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교회를 개척한지 지난 5년 동안
좀 괴팍한 분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어려움을 주신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 분들에게 일일이 대응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았다.
대신에, 예배를 회복하고, 은혜를 회복하는데 중점을 두고서,
성도들이 교회당에 발을 들여놓는 바로 그 시간부터
운행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크게 압도당하게 해 달라고 부르짖고 기도해 왔다.
그 결과, 하나님 은혜로, 이때까지 그런 공격에 크게 훼손당하지 않고 잘 지내왔다.
적들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은혜가 회복되면... 이기는 것이다.
▲2. 무너진 가정의 제단을 회복하시라
요즘 마귀가 공격 전략을 바꾼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수 십 년 동안 마귀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교회를 공격해왔다.
어떤 분이 (과장되게) 말하기를
남산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붉은 십자가가 서울 시내를 뒤덮고 장악하고 있는데,
실제로 교회가 장악한 것은 땅덩어리 밖에 없다고 했다.
교회 교회마다 내홍을 겪고 있으며, 영권을 잃어버렸고 무기력해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탄은 ‘이제는 내버려둬도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지리멸렬 하겠다!’
생각을 했는지, 주 공격 타깃을 교회에서 → 가정으로 돌리고 있다고 본다.
목회자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이혼 위기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아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성격 탓일까? -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그런 성격 모르고 결혼했는가?
오늘날 가정의 위기는 성격 탓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가정의 영적제단이 무너져 있었고, 그것이 오래 방치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 가정의 호주(주인)가 하나님이 아니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억울한 케이스도 있다. 한쪽은 성실해도...)
그러므로 무너진 가정 제단을 수축해서
그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
가정의 외부적인 사탄의 공격, 이방 잡신의 공격, 기타 외부적 공격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승리할 줄 믿는다. (후략)
<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07.06.24. *원제목 : 껍데기는 가라, 왕상18:20~24
[주제별 분류] 복음 관련 http://blog.daum.net/bible3/12071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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