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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서 이기는 방식

LNCK 2007. 8. 11. 08:35

◈지면서 이기는 방식                       고전4:8



성경을 찬찬히 살펴보면, 항상 지면서 이기는 방식이다.

완전히 망하고 절단난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은 뒤집기로 승리한다.

기독교의 문장(emblem)인 십자가도, 결국은 ‘지면서 이기는 방식’이다.



▲때와 목적이 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마26:55


이 구절을 읽다가 최근 일어난 아프간 사건이 생각났다.

이번에 안타깝게도 아프간에서 피랍되신 분들을 볼 때,

(좋은 이야기라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것을 싫어하시는 가족들께는 죄송합니다.)

 

과거에도 수 (십) 차례 아프간을 단기선교로 다녀왔는데 아무 일 없다가

이번에 왜 이런 당혹한 일이 생겼는지... 의문을 가진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여러 번 가르치셨으나 그 때는 무사(?)했다.  

그러나 때가 되자, 검과 몽둥이를 든 강도떼들에게 잡히셨다.


이번 사건이 세상 사람들은 우발적 사건이다, 어떻다 저렇다 말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때(꼭 이번에)에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슨 목적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다가 구경거리가 된 바울



▲왕 노릇하던 고린도 교인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고전 4:8


▲'왕노릇'과 반대로, '구경거리'가 된 바울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고전 4:9~13


바울은 이렇게 자기를 변호한다.

나는 사도지만,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하신 자같이 나를 미말에 두셨다.

(미말 : end of procession, 개선 행진의 끝, 전쟁 포로를 구경거리로 여기에 배치한다.)


자기가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구경거리(스팩터클)는,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는 노예나 검투사를 뜻한다.


바울이 주장하는 바는,

고린도 교인들이 야수들과 제대로 싸움도 해 보지 않고

바울이 야수들과 싸우는 구경거리가 된 것을, 편하게 구경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원형경기장의 검투사처럼, 공중권세 잡은 자들과

그들에게 현혹된 세상의 박해자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그래서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하는데


왜 고린도 교인들은 황제처럼 이미 부요해서  

관중석에 편하게 앉아 우리를 구경하고 있느냐고 질타하고 있다.


이 땅에서 부유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고

바울은 맹렬히 권면하고 있다.


바울이 얼마나 흥분했든지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말하고 있다; ↙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고전 4:8


이것은 바울이 진짜 ‘나도 너희처럼 왕 노릇 하기 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고린도교인들의 왕 노릇 함에 대한 기가 차서 비웃는 어조다.

(일종의 ‘반어법’, 어이가 없어서 본심과 정반대로 말하는 것)


진정한 왕 노릇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며

그것을 십자가 정신으로 이길 때 찾아오고 누리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바울은 자신을 샘플로 들어 말하고 있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8~10


그리스도를 위해서, 복음의 승리를 위한 영적 전투 대열에 뛰어들면

여러 고난으로 인하여 속이는 자 같고, 무명하고, 죽는 자 같이 된다.

그러나 결국은 참되고, 유명하고, 사는 자가 된다.

가난한 자 같은데, 항상 부요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은데,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된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승리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에서 죄수로 보여주셨던 이미지였다.

또한 바울이 주님의 개선행진에서 마치 죄수로 끌려가는 이미지였다.

이 모습이 바로 기독교 승리주의의 결정타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전하는 그의 제자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세상에 의해 

영광의 관을 쓰게 될 것을 기대해서는 된다.


◑지면서 이기는 방식


▲이겼으나 지는 전쟁

미국은 ‘세계 최대의 군사적 힘’을 동원해서

911이후 빈 라덴과 테러집단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간과 이라크를 차례로 공격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단 시간 내에 ‘승리’를 선포했으나,

결과적으로 ‘진’ 전쟁이 되고 말았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카불 시장’으로 조롱받고 있고,

카불을 벗어난 지역은 다시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라크도 도리어 '늪에 빠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힘으로 제압하고 이기는 방식은... 기독교 승리 방식이 아니다. 부작용만 많다. 

십자가 방식이 아닌 것이다. ‘진짜 승리’가 아닌 것이다.


▲지면서 이기는 십자가 승리 방식

*에콰도르에서 죽음(패배)으로써

중남미 선교에 승리한 짐 엘리엇과 그 동료들.


*홀 여사는 1백 년 전 조선에 와서, 불과 몇 년 사이에 남편과 한 자녀를 잃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패배였다.

누가 보면, 그가 자기 조상의 죄 값을 대신 치르는 것(형벌)으로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홀 여사는 ‘짐으로써 승리하는’ 십자가 승리방식을 보여주었다.

                                                                                                          *홀여사

 

*마귀나 세상은 ‘이기면서 이기는 방식’밖에 모른다.

‘지는 것은 완전히 패배하는 것’으로 여긴다.


*예수님도 전형적인 ‘지면서 이기는 방식’, ‘죽음으로써 다시 사는 방식’을

명명백백하게 보여 주셨다.


지금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여론이 소란스럽다’고 난리를 치지만,

사실 지면서 승리하는 방식은... 가장 성경적인 복음 전파 방식인 것이다.

가장 크게 승리하는 십자가 방식인 것이다.

 

그것은 총, 칼, 달러의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가져오는 승리가 아니라,

약자를 사랑하는 인격의 힘,

원수를 용서하는 아가페의 힘,

아무 자격 없는 자들을 대우해 주고 섬겨주는, '진정한 강자'에게서 우러나오는

힘이다.

 

▲갈림길

마귀는 아프간에서 두 명을 먼저 처형(순교)시켰고,

21명을 지금 인질로 붙잡고 있다.

그리고 마귀는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묻는다.

“그래도 계속 선교 할래?”


사실 선교 안 하면 그만이다.

언론에 보도되어 세상에 시끄러울 일도 없고, 

이제 앞으로는 날마다 가슴 졸이며 애타할 필요도 없다.


다시는 ‘해외 선교’ 같은 것 안 하면 된다.

‘위험 지역’은 근처도 얼씬거리지 않으면 된다.

국내에서 편안하게 ‘왕 노릇’하며 지내면 그만이다. 



▲마치는 말

하나님이 이번 일을, 하나님의 때에 허락하신 것은,

‘십자가 승리 방식을 통해 열매를 얻으시기 위함’이다.

벌써 두 분의 고결한 영혼을, 하나님은 순교의 제물로 기쁘게 받으셨다.


마귀는 이번 일로, 우는 사자처럼 완전히 겁을 주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와 비웃음거리로 만들어서,

더 이상 자기 영토에, 빛의 사자들이 절대로 침입 못하도록 엄포를 놓고 있다.


세상 사람들

기독교가 나라를 어지럽힌다고 본다.

무슨 자기 자랑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한다고 난리를 친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은 빛의 자녀들은

비통한 마음을 추스르고,

정말 돌봐주거나 복음을 전할 가치가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들이지만,

다시 그들을 마음에 품고, 원수를 용서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한다.

그 사랑을 자기가 벌써 받아서 알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지면서 이기는 방식’이다. 힘으로 밀어부치는 제국주의적 침략이 아니다.

그러므로 잘 지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이긴다.


이번에도 아프간에서 한국의 선교단들이 ‘졌다.’

완벽하게 졌다. 지금도 계속 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기는 부활의 신호탄이며,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성경 역사가 그랬고,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가 그랬기 때문이다.

 

주님이 주도하시는 '색다른 복음의 승리 방식'에

숨을 죽이면서 바라보며 그 행보에 따라가야 한다. 

 

내 주변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면 되는데, 그런데 지는 것이 쉽지가 않다...  <김지윤

 

▣ 기독교 승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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