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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 고난의 궁극적 원인자

LNCK 2007. 8. 18. 10:37
 

◈고난의 궁극적 원인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11:36



◑내 인생의 궁극적 원인자는 - 하나님


▲태엽 자동차를 움직이는 궁극적 원인자는?

한 아이가 태엽을 감아서 움직이는 장난감 자동차를 갖고 놀고 있었다.

그 태엽 자동차를 움직이는 가장 최초 원인자(原因者)는 누구일까?


① 일상적 답변 - 아이

태엽을 감는 사람은 바로 아이다. 그래서 태엽 자동차를 움직이는 원인자는 아이다.


② 이성적/철학적 답변 - 태양

아이가 태엽을 감아서 자동차는 움직인다.

그러나 아이가 태엽을 감으려면 밥(쌀)을 먹어야 가능하다.

그렇게 되려면 태양이 비춰서 쌀을 키워야 가능하다.

그래서 태엽 자동차를 움직이는 근원적 원인자는 바로 ‘태양’이다.


③ 신앙적 답변 - 하나님

그렇다면, 바로 그 태양을 만드신 분이 누구신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사건, 모든 만물의 최초 원인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참고로, 지금 우주에는 약 10억 ~ 1천억 개의 은하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1개의 은하계에는 다시 1천억 개의 태양이 있다고 한다. 



▲내 신변 만사萬事의 궁극적 원인자는 하나님

오늘 내가 겪는 모든 일의 궁극적 원인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일곱 눈(완전한 눈)이 있어서 온 땅을 세밀히 두루 감찰하신다.                     계5:6


또한 나를 담당하는 천사(혹자는 수호천사로 일컬음)들이 항상 하나님을 뵙는다.       마18:10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나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다 세고 계신다.                                마10:30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기 원하신다.          롬8:28


혹시 내가 불행한 일을 당할 때,

불평하지 말아야하고, 남 탓하지 말아야 하고,

원망과 미움을 버려야 마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중 단 하나라도 하나님께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어쩌다가 사탄에게 붙여져서 혼줄 나는 일이 있더라도

- 그것마저도 여호와의 허락하심으로써 말미암는다.                               욥1:12


여호와의 눈은 정결하여 결코 악과 죄를 참고 보시는 분이 아니시므로                출34:7, 32:34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한 고난을 당하지만                                                          애3:39, 레26:39

그것 역시 하나님의 허락과 섭리 가운데서 당하는 일이다.               


 

◑내 고난의 궁극적 원인자가 ‘하나님’이라면?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사랑과 인자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이

그 이미지와 정반대로, 내게 고난과 어려움을 주신다면,

또는 사탄이 내게 고난과 어려움을 주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궁극적 원인자가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고난의 목적을 깨달아야...

목적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악역을 맡은 사람을 원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 목적을 온전히 깨달을 때는... 자기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다.


①바울의 고난 목적 깨달음 - 너희의 위로구원을 위하여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1:4


사람이 깊은 고난을 받을수록, 자기 인격이 깊어진다.

욥과 세 친구들의 논쟁이 일치할 수 없었던 것은. ‘인격의 깊이’의 차이였다.

바울은 고난을 통해 깊어진 인격으로,

고난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었다. (아니면 책망한다.)


프랜시스는, “시장 입구에서 거지 옆에 서서 같이 구걸해 보기 전에는

결코 거지의 심정을 이해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거지가 되어 본 사람이, 거지를 깊이 이해해 줄 수 있고,

아파서 수술을 받아 본 사람일수록, 병든 사람 마음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


그래서 ‘영혼의 인도자’는 고난을 많이 당할수록 좋다.

사람이 더 깊어지고, 고난받는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위로하게 된다.

 

그러므로 직원 채용 인터뷰를 할 때, '과거에 고난 많이 당한 사람'을

인터뷰로 심사해서 뽑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고후1:6

 

바울이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구원할 목적이 없었다면,

사실 그가 그렇게 극심한 고난을 받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요셉의 자기 고난의 목적 깨달음 -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함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45:5


사실 가까운 사람에게, 그것도 친형제들에게 배신당하는 것은

매우 극복하기 어려운 깊고 큰 상처다. 

그러나 요셉은 그 상처를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함으로써> 이겨냈다.


그것은 자기가 당한 모든 고난과 딜레마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 때문이라고

확실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원은 일차적으로 기근에서 구원을 뜻하지만,

넓게 보면, 그 일을 통한 영혼 구원도 포함한다.)


 

③예수님의 고난 목적 깨달음 -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마26:54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마26:56


예수님은 당신이 당하시는 고난이 ‘하나님에 의해 작정된’ 것임을 잘 아셨다.

그 목적은 바로 인류의 구원의 길을 여시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대신에 겸허히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였다.

                                                                                               마26:42, 45

④내 고난의 목적은?

 

그것이 다른 사람의 구원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면 ... 겸허히 받아들이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해서도 안 되며

그 원수에게 불상사가 생기기를 기원해서도 안 된다.

 

 

고난 당하는 사람의 자세 


모 목사님의 글에 보니,

자기는 무슨 고난을 당해도 기꺼이 당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당하는 그 모든 고난이

그래도 자기 죄보다는 훨씬 더 가볍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그 분이 보통 사람보다 더 큰 죄를 지어서가 결코 아니라,

워낙 민감하시다 보니, 자기 죄가 항상 크게 보인 것이다.


어쨌건 고난을 당할 때, 자기 죄를 돌아보지 않을 사람은 없다.


▲1. 회개하는 기회로 삼자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 그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

만일 그들이 청종하여 섬기면 형통히 날을 보내며 즐거이 해를 지낼 것이요

만일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욥36:10~12


고난이 닥치면, 일단 회개의 기회로 삼는 것이 지혜롭다.

자기 주변을 돌아보며, 왜 내가 이런 고난을 당할만한 원인을 제공했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사람은 연약해서 마귀가 자기를 갖고 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출32:25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삼하12:14


그러나 옛말에 ‘주마가편’이란 말이 있듯이,

하나님이 쓰시려는 사람에게 더 큰 고난을 주신다.

하나님은 갑절의 축복(구원 역사)을 주시기 전에, 갑절의 고난을 먼저 주신다.


하나님은 고난 받는 자에게 눈을 떼지 않으신다.

그에게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시려고

앞서 고난을 통해 정결케 하시는 것이다.


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보좌)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시며                                      욥 36:7



▲2. 겸손히 당하라!

욥기의 주제는 “그래도 그 섭리를 다 알 수 없다!”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는 너무 오묘하시고, 너무 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남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하면 안 된다.)


자기가 고난을 당할 때는, 절대 원망하거나 강퍅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사곡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께 속박을 받을지라도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욥36:13, 18, 23    


이스라엘의 패망의 슬픔을 노래한 예레미야애가의 주제는

하나님이 주신 고난을 잔말 말고 ‘기꺼이 당하라!’이다.


조용히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좋다. (그 기다리는 자세는 다음와 같다.)

사람이 젊을 때에 자기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

주께서 힘든 일을 맡기셨으므로 홀로 앉아서 조용히 있어야 한다.

겸손하게 ‘입을 땅에 대야’ 한다. face down to the ground(겸손히 수욕을 당하는 자세)

혹시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때리려는 사람에게 뺨을 대 주고 사람들이 더러운 말을 할지라도 묵묵히 참고 들어야 한다.

                                                                                                                     애가3:26~30


▲3.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주의 인자와 성실은 영원하심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런 것을 생각하면 저에게 희망이 있다.

여호와의 사랑은 한결같고, 여호와의 자비는 끝이 없다.

주의 사랑과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진실과 참되심이 크도다.                    애가3:21~23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1:6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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