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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917 봉사의 자세

LNCK 2007. 10. 11. 17:49


◈착한 사마리아인에게서 배우는 봉사의 자세         눅10;29~37



▲1. 단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위로를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어떤 사람이 되던지

단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그래서 단 한 영혼이라도 구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삶의 벼랑 끝에 몰려있습니다.

그 누구도 도움은커녕 위로의 말 한마디 던져주지 않습니다.

울다 울다 지쳐 쓰러져도 그 누구도 등 한번 두드려주지 않습니다.

그 결과 최후의 선택으로 자살을 꾀합니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에게 전화 한통만 해줬어도,

단 한 사람이라도 그와 만나 그의 얘기 한번만 귀기울여줬어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요.


착한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께 칭찬 받은 것은,

많은 사람을 돕고, 큰 건물을 짓고, 큰 예산 규모의 봉사가 아니었습니다.

-단 한 사람에 대한- 봉사였습니다.



▲더 혹독한 가난

이 시대 가장 가난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물질적 결핍으로 인한 가난도 큰 고통이지만,

그보다 더 혹독한 가난이 있습니다.


관계의 단절로 인한 가난입니다.

소통의 단절로 인한 가난입니다.

영성의 결핍으로 인한 가난입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함으로 인한 가난입니다.

고독으로 인한 가난입니다.

절망과 좌절 끝에 맞이하는 가난입니다.


아무리 백만장자라 할지라도

세상으로 향하는 모든 소통의 길이 꽉 막혀있는 무인도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루 온종일 천장 벽지만 바라보며 드러누워 있지만

단 한 사람도 초인종을 누르는 이가 없다면 그는 얼마나 가난한 사람입니까?



▲2. 일상생활 속에서 봉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봉사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명확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그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살펴주지 않았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억만장자여서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 자신의 눈앞에 놓여있는 한 인간의 비참하고 딱한 상황 앞에

깊은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그를 쳐다봅니다.

자동으로 그의 상처에 손이 갑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 사실 생각같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내게 딸린 많은 식솔들이며, 매일 처리해야할 산더미 같은 일들 사이에서

이웃 봉사를 위한 시간을 내기도 사실 힘듭니다.


그러나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안에서-

쪼개고 쪼갠 시간을 봉사활동에 사용하는 것 참으로 의미 충만한 일입니다.


나도 어렵지만, 나도 힘들지만, 나도 시간이 없지만,

그래도 짬을 내어 이웃봉사에 투신하는 일,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봉사입니다.



▲3. 자발적인 봉사

남들이 다 선호하는 봉사활동, 폼도 나고, 위신도 서는 그런 봉사활동도 좋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내가 나서겠다는 -자발성-을 바탕으로 한 봉사활동,


봉사활동 가운데 생기는 크고 작은 갈등과 상처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의연함이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봉사활동인지...


그렇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자발적으로 봉사했습니다.

봉사에 지나치게 수동적이지 맙시다.  <신부님 글에서 발췌



 

◑감각적인 구제      


▶지식의 종류

B. F. 넬러(Kneller) 라고 하는 분의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Education

(교육철학개론)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식이란 몇 가지가 있는데;


①계시적 지식 -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감과 말씀을 통해 주시는 지식,

가장 근본적인 지식. 


②이성적 지식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밝은 이성으로 비판하고 종합하고 추리해서

깨닫는 지식.


③경험적 지식 -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패하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고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고, 여러 가지 경험 속에서 배웁니다.

많이 못 배운 노인이지만, 삶의 연륜과 경험에서 오는 지식이 많은 분이 계십니다.

근로자중에도 이런 분이 많지요.


④감각적 지식 - 여러분, 운전을 하십니까? 초보 운전 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럴 땐 어떻게 운전해야 하나? 여기 신호등에선 어떻게 해야 되나?’

이와 같이 처음에는 계속 생각하면서 하지만, 어느 정도 운전이 익숙해지고 나면

감각으로 합니다.

이제는 깊은 생각이 없어도 붉은 신호가 나오면 서고요 또 푸른 신호가 나오면 갑니다.

감각적인 거예요. 


운동선수가 운동하는 것, 그것 일일이 생각하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반복 연습한 가운데 몸에 익혀진 것을 감각적으로 하는 거예요. 


⑤권위적 지식 -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에게

내가 이치에 맞지 않게 느껴지고 납득이 안가더라도

그분을 존경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거예요.

순종해 나가면서 배우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디까지 왔습니까? 

5단계, 권위적까지 와야 합니다.


권위적 지식의 단계까지 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모든 공부는 시간이 걸립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생각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체질이 되고 성품이 되고 몸에 익혀야 되고 감각적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감각적 지식으로 하는 선행

‘선행’은 감각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행을 할 기회가 닥칠 때마다

'보상이 어떨까? 체면이 어떨까? 여론이 어떨까?'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은 선행이 안 됩니다.


그저 척 보면 자동적으로 선한 손길이 나가야 되는 거예요.

선행에는 이런 감각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나의 미국 체험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언젠가 한번 Pasadena Free Way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차선 도로로 달리다가 그만 타이어 펑크가 났습니다. 

'펑'하더니 그대로 차가 주저앉았습니다.

이거 난감했습니다. 복잡한 도로 한 복판에서 펑크가 난 것도 당황되는데,

하필이면 1차선에서 펑크가 났으니....


그런데 그저 잠깐 만에 세 사람이 차를 멈추더니,

한사람은 수신호로 교통을 정리해서 제 차가 안전하게 옆길(갓길)에

안전하게 세워놓게 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 차의 트렁크를 열고,

(저는 그때까지 그 차 타이어 교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공구와 예비타이어를 꺼내서 타이어를 바꿔 끼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작업이 끝난 즉시 그들은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

그냥 "Good bye" 하더니 횡 가버리는 거예요.

저는 그들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제대로 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을 만큼

황급히 떠나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체질이에요!>.

이건 감각적인 거예요. 사건이 벌어진 순간에 뭘 깊이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선행이 평소의 삶 속에 몸에 흠뻑 젖어 있었어요. 


▶선행으로 단장하라

디모데전서 2장 10절에 보면 '선행으로 단장하라'는 말이 있어요.

목걸이다, 귀걸이다, 코걸이 다 해봐도 보석으로 단장할 게 아니오,

선행으로 단장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다이아반지 낀 손이 아름다운 게 아니에요, 선을 행하는 손이 아름답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일하라고 했어요(4:28).

도적질하던 사람은 도적질을 멈출 뿐 만 아니라 이제는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일하라.

손이 새로워져야 되겠어요.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기도가 응답됩니다.

정한 손을 가져야 되요. 깨끗한 손으로 하는 일만 형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02.02.17. 소망교회 설교 ‘손을 새롭게’ 중에서 발췌



◑착한 사마리아 사람 하민수 씨


-김경숙 수녀(마리아구호소)



얼마 전 하민수라는 분이 찾아오셨다.

우리 구호소 식구 백정훈 씨를 보고는

“어디로 갔는지 너무 궁금했어요.”라며 반가워했다.


며칠 전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민수 씨가

길가에 쓰러져 있는 낯선 사람(정훈 씨)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다리가 불편한 정훈 씨는 며칠째 굶은 상태였고, 옷은 소변으로 젖어 있었다.


민수 씨는 정훈 씨를 차에 태우고 몇 곳의 쉼터를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인근 경찰서에 찾아가 오만 원을 주면서 좋은 곳에 보내주십사는 부탁을 했단다.

경찰관은 “우리가 해결하겠다. 돈은 필요 없다.”고 했다.


민수 씨는 정훈 씨 주머니에 몇 만 원을 넣어주고 왔다.

며칠 후 그는 경찰서에 들러 정훈 씨의 소재를 파악한 후

마리아구호소에 입소한 것을 알고 정훈 씨를 만나러 온 것이다.


민수 씨는 그동안 정훈 씨의 얼굴이 몰라볼 정도로 회복되었고

절뚝거리긴 해도 걸을 수 있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


민수 씨는 정훈 씨에게,

‘잘살고 있으면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우리 구호소에 후원금을 내고 돌아갔다.


다시 만난 민수 씨와 정훈 씨의 눈길에서 따뜻한 사랑이 느껴졌다.

하민수 씨는 백정훈 씨에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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