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 계3:7~13
▲빌라델비아 교회의 특징을 한마디로 하면 - 칭찬 받은 교회
오늘 우리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가운데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은 모두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교회들이었습니다.
이들 일곱 교회들은 각 교회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은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 땅의 교회들 가운데는
에베소 교회처럼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처럼 지금도 핍박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또는 버가모 교회처럼 세상과 타협하는 교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심하면 교회가 그 성결함을 지키지 못하고 두아디라 교회처럼
죄로 얼룩질 수도 있습니다.
더욱더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데 교회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실상은 영적으로 죽은 교회도 없지 않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떠한 교회였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는 한 마디로 “충성된 교회”(The Faithful Church)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서
예수님의 책망을 전혀 받지를 않고 칭찬만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칭찬만 받은 교회가 일곱 가운데서 두 교회니까,
숫자적으로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얼마든지 서머나 교회처럼,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예수님의 책망은 받지 않고, 예수님의 칭찬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예수님의 칭찬만을 받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도시 빌라델비아
빌라델비아는 사데에서 아래쪽으로 약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빌라델비아(Philadelphia)는 헬라어로 필리아(사랑)와 아델포스(형제)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형제 사랑”(brotherly love)입니다.
빌라델비아는 주전2세기, 버가모 왕 아탈루스 2세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Attalus II
아탈루스는 자기 형 유메네스에 대한 형제 사랑이 각별했습니다. Eumenes
그래서 그의 별명이 “형제 사랑” 곧 빌라델비아였습니다.
아탈루스는 그의 형 유메네스가 헬라에서 암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자기의 형 유메네스를 대신해서 버가모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의 도시를 짓고 자기 형을 생각하며, 그 이름을 빌라델비아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죽었다던 그의 형이 뜻밖에 살아서 되돌아 왔습니다.
그 때 아탈루스의 신하들은 형을 죽이고 왕위를 유지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아탈루스는 그러한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기 형 유메네스에게 왕위를 고스란히 넘겨주었습니다.
도시 빌라델비아의 특징은 세 가지였습니다.
▲1. 빌라델비아는 지형적으로 “동방의 관문”(gateway to the East)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그 당시 무시아, 루디아 그리고 브루기아의 세 지역이 서로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탈루스는 그 당시 꽃을 피우던 헬라문화를
동방 오지에 있는 성읍들에게 확산시키기 위해서
그곳에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는 “동방의 관문”이라고 불렸습니다.
이와 관련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린 문”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열린 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 빌라델비아는 지질학적으로 지진이 많았던 곳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화산 활동으로 인하여 종종 지진이 일어나던 곳이었습니다.
주후 17년에 있었던 대지진은 빌라델비아 도시 전체를 파괴해버렸습니다.
그 이후에도 빌라델비아에는 계속되는 여진이 있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집밖으로 뛰쳐나가야 했습니다.
지붕과 벽에 그 몸이 깔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있는 든든한 기둥이
되기 때문에 결코 다시 나가는 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빌라델비아는 산업적으로 포도가 많이 생산되던 곳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 주변의 농토에는 많은 화산재가 쌓여 있어서
포도를 재배하기에 적합했습니다. 이와 관련 빌라델비아는
그 수호신으로서 술의 신 디오니수스(Dionysus)를 섬겼습니다.
디오니수스는 헬라식 이름이고, 그 로마식 이름은 바쿠스(Bacchus)입니다.
빌라델비아가 그 수호신으로 술의 신을 섬겼으니까,
그들의 향락과 방탕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빌라델비아에는 이외에도 많은 신전들이 있었으며,
각종 종교적 행사들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는 “작은 아덴(아테네)”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로
아름답고 신실하며 충성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책망은 전혀 받지를 않고, 예수님의 칭찬만 받았던 교회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빌라델비아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바울의 에베소 체류 중 세워진 듯
빌라델비아 교회가 어떻게 해서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기록은 요한계시록에만 남아 있을 뿐,
사도행전에는 전연 나타나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행전에 있는 다른 기록을 통해서 추측해볼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제3차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3년간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대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서
바울은 복음사역의 장소를 두란노 서원으로 옮겼습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두 해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에 사는 자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아마도 이 기간 동안에 빌라델비아 교회가 세워졌을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사람들은 그 당시 가장 번창했던 도시 에베소에
사업차 왕래하는 일이 빈번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서,
빌라델비아에 돌아와 교회를 세웠을 것입니다.
▲성경 바깥의 기록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주후 2세기 초 안디옥 교회의 사자였던 이그나티우스는 로마에서 순교하기 위하여
빌라델비아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뒤에 그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그들을 칭찬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Ignatius, Ad Phil. 3, 5, 10).
또한 2세기 중엽, 서머나 교회의 사자였던 폴리갑이 순교했습니다.
그는 86세의 나이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 때 빌라델비아 교회에서 왔던 성도들 몇몇 사람들도
폴리갑과 함께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빌라델비아 교회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충성을 견실하게 유지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하시면서, 그들에게 많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1. 편지의 발신인 (3:7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①거룩하고 ②진실하사
③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계3:7
예수님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하실 때,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시지는 않으셨습니다.
“OOO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나 예수 그리스도가 가라사대...”
예수님은 이러한 표현을 단 한번도 쓰지를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각 교회의 사정에 맞추어서 자신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도 자신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자신의 모습을 세 가지로 묘사하셨습니다.
▲1. 예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이라는 단어의 뜻은 “구별되다”입니다.
본시 구약성경에서는 거룩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나 타락한 인간 세상과 온전히 구별되시기 때문입니다.
사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사43: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그런데 이 ‘거룩’이라는 단어가,
신약성경과 계시록에 예수님께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막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귀신들이 한 말)
눅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천사가 한 말)
요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습니다.(베드로가 한 말)
이와 같이 예수님에게는 귀신을 통해서도, 천사를 통해서도, 사람을 통해서도
“거룩하신 자”라는 하나님의 칭호가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거룩”이라는 최고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빌라델비아 교회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그만큼 교회의 거룩성을 잘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2. 예수님은 진실하십니다.
거룩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진실’이라는 단어도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에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칭호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에게 그대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다시 한번 예수님의 신성, 곧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65: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진실하시기 때문에, 거짓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판단은 언제나 옳습니다.
진실하신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시면서, 전혀 책망을 하지 않으시고
칭찬만 하셨습니다. 이 또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사22:22, 내가 또 다윗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유다 왕 히스기야 때였습니다. 그 당시 유다 나라의 제 2인자는 셉나였습니다.
그는 국고(國庫)를 맡은 궁내 대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사명에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폐하시고, 그 대신 충성스러운 엘리아김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다윗 집의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그 결과 엘리아김이 그의 가진 열쇠로 국고의 문을 열어줄 때만,
누구든지 그 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관련글 : http://blog.naver.com/kaikk/60012980851
그러면 ‘예수님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결정할 권세가
오직 예수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계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이처럼 예수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도 가지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지옥에 들어갈 사람도 결정하실 권세가 있으십니다.
결과적으로 오직 예수님만이 천국에 들어갈 사람도,
지옥에 들어갈 사람도 결정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 이외의 다른 이로서는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결코 없음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최고의 기준으로 판단하십니다.
예수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최고의 정확성으로 절대적인 판단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최고의 권세로 판단하십니다.
◑2. 빌라델비아 교회가 받았던 칭찬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①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②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③내 말을 지키며
④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3:8
▲1. “열린 문”의 축복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구원받는 자의 수가 날로 더하여 갔을 것입니다.
요10:9 내가 문이니....
바울은 종종 ‘복음의 문’을 열어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줄 것을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고전16:9 등
▲2.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언뜻 들으면 이는 칭찬이 아니라 책망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외관상으로는 그럴 듯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죽은 교회요, 생명력이 전혀 없는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겉보기에는 보잘것없었습니다.
모이는 사람들의 수도 적었습니다. 건물도 초라했습니다. 시설도 형편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능력이 있다고, 생명력이 있다고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살아 있었기에 성령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3. “내 말을 지키며” obedience
빌라델비아 교회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처럼, 귀가 가려워서
세상의 허탄한 이야기 듣기를 바라던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살아 있었기에, 그들은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요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요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며,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4.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loyalty
빌라델비아 교회는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타락한 세상의 유혹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믿음을 지키면서, 예수님에게 일편단심으로 충성했습니다.
◑3. 은혜1 : 영적 전쟁의 승리 보장 (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계3:9
서머나와 마찬가지로 당시 빌라델비아에는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여호와의 총회”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표면적 유대인들이요, 자칭 유대인일 뿐이었습니다.
영적인 견지에서 보면, 실상 그들은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거짓의 아비인 사단의 사주를 받아 온갖 거짓말로
빌라델비아 교회를 대적하며 핍박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의 실상은 사단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사단의 회”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동안 온갖 방법으로 빌라델비아 교회를 대적하며
핍박하던 자칭 유대인들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앞에 엎드려 자기들의 모든 잘못을 사죄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참 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높이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도 빌라델비아 교회에서 함께
예수님을 믿으며, 함께 구원의 복된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복음 전도의 축복을 허락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기독교를 비판하며 대적하던 자들이 다 회개하고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북한의 위정자들에게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4. 은혜2: 보호 (3:10)
①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②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3:10
▲1.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perseverance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친히 인내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인내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인내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인내하면서 자신들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인내하는 신자, 인내하는 교회만 복을 받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말씀을 지키며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2.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예수님은 인내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 어떠한 환난이 닥쳐오더라도
평안하여 든든히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교회를 붙드시며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하나의 특별한 보호를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장차 있을 시험의 때’를 면하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이 시험은 ‘미래적’입니다. 장차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시험은 ‘세계적’입니다. 온 세상에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 시험은 ‘제한적’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만 임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땅에 거하는 자들”은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내세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이 땅의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계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계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계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이처럼 “땅에 거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입니다.
장차 이들에게는 큰 시험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큰 환난입니다.
이 큰 환난에 대한 설명은 요한계시록에 자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계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아무튼 “땅에 거하는 자들”은 장차 모두 무서운 시험의 때를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 시험의 때를 면할 것입니다.
(*면한다 - IMF때 모두가 시련을 당해서 많이들 망했지만, 그 중에도 이긴 사람이 있음.
모두 다 시험을 통과하지만, 성도는 그 시험 중에서도 보호되고 극복하게 된다는 뜻.
아예 휴거되어서 면한다는 뜻은 아님)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지키시며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성도가 해야 할 일 : 네 면류관을 빼앗기지 마라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3:11
원문 성경을 보면, 오늘 본문에서 명령형으로 사용된 동사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굳게 잡아라.”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진 것,
곧 능력, 순종, 충성, 인내를 굳게 잡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속히 임하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아무도 예수님이 주실 면류관을 빼앗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1. 예수님은 속히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때로는 예수님이 더디 임하시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결코 더디 임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임하셔야 하실 때, 언제나 속히 임하십니다.
예수님은 속히 임하셔서 고난당하는 의인을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의인을 핍박하는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속히 임하실 것을 생각하면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들이 가진 것을 굳게 잡아야 했습니다.
▲2. 그들 가운데 아무도 예수님이 주실 면류관을 빼앗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에게 주실 면류관은 어떠한 면류관입니까?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실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우리가 쓰게 될 때,
우리는 온전히 의롭게 됩니다. 우리는 지극히 영광스럽게 됩니다.
또한 ‘영광의 면류관’을 쓸 때 - 우리는 영광스럽게 변화할 것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쓸 때 -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앞서 에베소 교회에도,
‘네 촛대를 옮기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차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각자가 자기가 받은 사명을 등한시하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성전 기둥, 하나님 나라의 기둥으로 버티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그것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해외선교의 사명(면류관) - 빼앗기지 마십시오.
북한선교의 사명(면류관) - 빼앗기지 마십시오.
교회봉사의 사명(면류관) -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불충성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내 대신 택하여 쓰실 것입니다.
◑6. 이기는 자에게 보장된 축복 (3:12)
이기는 자는
①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②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③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3:12
▲이기는 자
“이기는 자”는 “땅에 거하는 자들”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반면에 “이기는 자”는 이기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네 가지의 추가적인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앞서 약속하신 열린 문의 축복, 복음 전도의 축복, 보호의 축복은
이기는 자가 이 땅에서 누리게 될 일시적인 축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추가적으로 약속하신 4가지 축복은
이기는 자가 장차 하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축복입니다.
▲1. 성전 기둥이 되게 하리니...
바울은 갈2:9에서 ‘예루살렘에서 유명한 자들을 가리켜 기둥’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기둥은 ‘영광, 명예’를 뜻합니다.
옛적부터 한국교회는 ‘기둥과 같은 일꾼 되게 하옵소서!’라는 표현을 썼는데
여기서 나온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빌라델비아 도시는 지진만 일어나면 밖으로 뛰쳐나가야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결코 다시 나가지 않는”,
천국의 튼튼한 기둥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2, 기둥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함
이것은 하나님과 영원히 교통하는 축복입니다(personal relationship with God).
예수님은 이기는 자(기둥) 위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소유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교통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땅에 거하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엉뚱한 이름을 기록하게 됩니다.
계13: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계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짐승의 이름이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기록될 것입니다.
그 결과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짐승이 떨어질 지옥불에 함께 떨어져서,
그 짐승과 함께 영원토록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입니다.
▲3. 천국의 시민권을 영원히 보장받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기는 자가 천국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에서 그곳의 영원한 시민이 되어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살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자신의 “새 이름”을 기록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는 이기는 자가 예수님의 소유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 값으로 이기는 자를 사셨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이 ‘새 이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천국에서 부르는 ‘새 노래’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새롭게(신선하게) 기록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계2:1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이 땅에서의 삶은 곤고합니다. 이 세상에는 죄악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삶은 질적으로 완전히 새롭습니다. 영화롭습니다.
그곳은 빛과 사랑만 넘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소유이기에,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07.09.09.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편집
[주제별 분류] 교회론 http://blog.daum.net/bible3/12898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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