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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사흘 만에 부활하다

LNCK 2007. 10. 15. 13:00

 

◈사울이 사흘 만에 부활하다          행9:6~9

 

신자는 주님께 철저히 헌신하면, 주님께 쓰임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맞습니다.

그러나 진짜 제대로 쓰임 받으려면, 주님은 먼저 당신을 죽이실 것입니다.

물질에 대해 죽이고, 사람에 대한 기대에 대해 죽이고, 명예에 대해 죽이신 다음

주님이 당신을 쓰실 것입니다. 그 죽는 기간은 ‘사흘’(상징적 숫자) 걸립니다.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라

청년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매우 밝은 빛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고 즉시로 눈이 멀게 된다. 행9:3~5

 

그 때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신 후에

 

“일어나 (다메석)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9:6

 

사울의 일행은, 아무 것도 보지는 못했으나, 소리는 같이 들었다고 했다.

 

▲순종한 사울

사실 여행 중에, 객지에서 몸이 아프면,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가급적 급히 집과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야 치료가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울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까지, 그 고생을 감수하면서 다메섹에 들어갔다.

신자들을 핍박하러 가던 건장한 청년이

(이 때는 주후 33년 경, 예루살렘 교회 설립 약 3년 후, 사울 약 28세 추정) 

졸지에 남의 손에 이끌려 다녀야 하는, 가련한 소경 신세가 되었다.

 

▲눈이 즉시 떠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울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다메섹 시내에 들어갔다면,

사울이 다메섹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눈이 떠져야 했었다.

순종하면 다 잘 된다고 늘 가르치지 않는가!

 

그렇다면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 (9:6)가 즉시 나타나 그를 영접해 방도 잡아주고,

그에게 안수해서 그의 눈을 즉시 뜨게 만들어야 했었다.

 

하지만 사울이 순종해서 다메섹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약속하신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사흘간 다메섹에서 죽었던 사울

한 시간, 두 시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막연히 기다려야하는 사울의 심정이 과연 어땠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개선의 조짐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

그는 자기가 바보짓 하고 있다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는 동료들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님이 재차 나타나셔서 ‘더 기다리라’ 등의 계시를 주시지도 않았다.

그렇게 눈이 감긴 채로 사울은 막연하게 사흘을 기다렸다.

 

만약 ‘사흘만’ 기다리라고 했으면, 억지로라도 버티며 기다렸을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그가’ 언제 나타날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사울에게는 큰 고통과 절망이었다. 

 

사울은 너무 절망한 나머지 그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9:9

결국 사흘 후에 하나님이 보내신 아나니아가 그에게 찾아와 안수해서

그의 눈을 다시 보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즉시로, 세례를 받고, 다메섹 회당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사울이, 사흘을 고통 후에, 사흘간 죽었다가, 바울로 다시 부활한 것이다.

 

 

◑1. 죽었다가 부활하는데 ‘사흘’ 걸린다.

 

▲요나의 사흘 물고기 뱃속

우리는 여기서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지냈던 요나를 생각해 보게 된다.

 

예수님도 부활을 언급하실 때,

요나처럼 사흘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다.

 

요나는 사흘 동안 완전히100% 죽었던 것이다.

절망으로 죽었고, 흑암 가운데 죽었고, 회개 가운데 죽었다.

 

이제 더 이상 살 소망이 다 끊어졌을 때,

차분히 죽기를 기다리며 탈진해 있을 때,

그는 물고기로부터 토해졌고, 다시 부활한 것이다.

 

사울도 절망과, 흑암과, 회개 가운데

사흘 동안 완전히 죽었던 것이다...

완전히 죽는데... 사흘이란 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치 예수님의 사흘 만에 부활처럼)

 

이 글의 1주제는, 완전히 죽는 것도 사흘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고난을 순식간에 해결해 주지 않으신다.

완전히 절망 중에 사흘이나 지나도록 (상징적 기간) 내버려 두신다.

사흘 동안은 얼마나 되는 기간일까? → 완전히 죽는데 걸리는 기간이다. 

 

▲죽었다가 살아나야 한다.

자연인이 입교하면 세례를 받는다.

그것은 요나의 사흘처럼, 사울의 사흘처럼,

완전히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나는 상징적 체험이다.

 

때때로 하나님이 쓰시는 종은... 먼저 ‘완전히 죽이신다.’

숨이 시퍼렇게 펄펄 살아있는 배추로 김치를 만들 수 없듯,

그래서 소금물에 푹 담궈서 숨을 다 죽여서 배추를 먼저 흐늘흐늘하게 만든다.

그렇게 숨이 죽은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고

그것을 다시 절반 삭혀야(죽여야) 비로소 맛있는 김치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종은 ‘죽게 내버려 두신다.’

다 죽어서 ‘백 퍼센트 항복한 종’을 비로소 들어 쓰신다.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찬송이 I surrender you (주께 드리네, 71장 후렴)이다.

(한국에서 헌금송으로 부르나, 미국에서 설교 후 헌신할 때 자주 부른다.)

‘내가 주님께 완전히 항복합니다!’라는 뜻이다.

 

 

◑‘회복’에는 시간이 더 걸린다.

 

▲김칫독이 쌀독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에 그릇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을 때, 

겨우내 사용했던 김장독을, 김장 김치 다 먹고 나면,

봄에는 씻어서 쌀독 등 다른 용도로 사용했었다.

 

그런데 그 독에 김치 냄새가 배어있어서, 사실 괴로웠다.

쌀을 담아도, 물을 담아도, 거기에 김치 냄새가 배어나왔다.

김칫독에 김치 냄새가 사라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자연인이 은혜를 받고 크리스천으로 변화되어도,

하루아침에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김칫독에 김치 냄새가 천천히 빠지듯... 그것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사흘 죽은 후에, 다시 아라비아에 가서 3년 동안

회복되는 기간을 가진다. 그의 28~31세쯤이었다. 갈 1:17~18

 

 

*관련글 : ◑ 회복되는 데는 3년 걸린다.     왕하19:29~31

  rfcdrfcd.tistory.com/12805481

 

 

▲3년째 까지는 인내해야 한다.

너는 금년에 들에서 저절로 자란 곡식을 먹겠고,

내년에도 들에서 저절로 자란 곡식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3년째 되는 해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밭을 가꾸어서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다. 왕하19;29

 

과거에 제가 이 말씀을 읽을 때는, 이해가 부족했던 탓에

1년과 2년째가, 3년째보다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1~2년째(금년과 내년)는 ‘저절로, 수고 없이 은혜로’ 먹고

3년째는 ‘심고 거두며 수고해서’ 먹어야 하니,

수고로운 노동보다는, 공짜와 무노동을 더 좋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해석임을 금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1년째와 2년째는 ‘저절로, 은혜로’ 먹고 살게 해 주시지만,

<그 양이 매우 작다. 겨우 먹고 살수 있을 정도 이다.>

 

하기야 들에서 저절로 자라는 것들이, 추수가 뭐가 그리 많겠는가?

그저 굶어 죽지 않을 정도면... 감사해야 할 정도이다.

 

그런데 3년째는, 이제는 심고 거두는 수고를 해야 하지만,

거기에는 <대량수확, 풍요>가 보장되어 있다.

 

하나님을 열심히 진실 되게 섬기면,

1~2년은 회복되는 기간이다. 땅(환경)도 회복되고, 자기 자신도 회복된다.

그 기간 없이 하루아침에 확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3년째가 되면, 이제 하나님의 축복이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제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되어 지고,

풍성한 추수를 거두는 큰 기쁨도 누리게 하신다.

 

선교지에서 맨땅에 씨 뿌리는 분들,

교회개척하시는 분들,

오래도록 척박했던 북한 땅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모진 환난풍파 견디고 이겨내면, 1~2년을 인내하면,

이제 3년 째 되던 해에...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눈에 띠게 나타나게 된다.

<인터넷 설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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