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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오래 참음

LNCK 2007. 11. 22. 15:13

◈오래 참음                     딤전1:16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 진리 - 오래 참음

젊은 시절, 아이들이 어릴 때, 교회를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주된 관심이 되지 않았던 '오래 참음'이란 단어가

이제는 진한 감동으로 전해집니다.

 

▲바울이 깨달은 오래 참음

목회자였던 바울이 후배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써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딤전1:16

 

바울은 알았습니다.

당신이 오늘 사도가 되기까지 오래 참아 주신 예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바울의 이 고백을 읽고 바울의 일생을 살펴보니 그 말이 맞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기 전에 예수 믿는 이들을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는 증인을 섰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날도 그는 예수 믿는 사람 잡으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가 사도가 되기 전에 한 모든 일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예수님은 아십니다.

다 아시고, 다 보셨습니다. 그럼에도 참으셨습니다. 오래 참으셨습니다.

바울은 그 때는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성장하고 성숙해 지니 그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아, 예수님께서 나를 대하여 참 오래 참아주셨구나.

 

▲오래 참아주셔서 오늘 내가 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던지 우리에게도 오래 참아 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의 오래 참으심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도 차이는 있지만 과거가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우리를 대하여 참으셨습니다. 오래 참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참지 않으시고 우리의 행위, 그대로 갚으셨다면

우리 중 아무도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겁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해 오래 참아 주셨음이 느껴지면서 더불어 오는 은혜가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도 우리를 대해 오래 참아 준 이들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이 우리를 대해 오래 참아 주지 않았다면

역시 우리의 오늘은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를 대해 참아주셨습니다. 기다려 주셨습니다.

 

나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대하여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겁니다.

 

비단 우리를 대하여 오래 참아준 사람이 부모님 뿐은 아닙니다.

우리를 아는 많은 이들이 우리를 대하여 오래 참아주었습니다.

오래 참아야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았더니 성경의 역사가 오래 참음의 역사네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성경에 가득하네요.

 

지금도 어떤 분이

‘하나님이 있는데, 왜 이렇게 악을 행하는 이들이 득세하느냐?’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이 죽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참고 계십니다.

저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참고 계십니다.

 

▲오래 참으면 거기서 바울이 납니다.

만약 예수님이 바울에 대하여 오래 참지 않으셨다면

세계 선교의 초석을 놓은 바울은 없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 증인이 된 그에게 하나님이 참지 않으시고 불을 내리셨다면

바울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오래 참으심의 열매가 바울입니다.

오래 참으면 바울이 납니다.

 

▲오래 참으면 저절로 다 해결 된다.

참기가 쉽지 않지요?

세 번까지 참는 것은 어떻게 해 보겠는데 더 이상 참기가 쉽지 않지요?

오래 참기처럼 어려운 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참아야 합니다.

 

15살짜리 자녀가 30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최고, 최선의 길은

15년을 참고 기다리는 겁니다.

15년만 참고 기다리면 그는 서른 살처럼 생각하고, 서른 살처럼 행동합니다.

 

기다리면 되는 일도 의외로 많습니다. 그저 오래 참기만 해도 되는 일도 많습니다.

그냥 참으려고 하면 안 참아 집니다.

우리를 대하여 오래 참으신 예수를 바라보세요.

우리를 대해여 오래 참으신 예수를 생각하세요. 그러면 참아집니다.

 

▲사랑은 첫 번째로 - 오래 참는 것  고전13:4

성경이 사랑에 대해 정의를 하면서 첫 번째로 한 말이 오래 참음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그래요. 참는 게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책망을 해야 할 일도 그저 참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책망을 해서 될 일은 책망을 하세요. 그게 사랑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오래 참아야 할 일을... 대신에 남을 책망해선 안 됩니다.

 

▲오래 참는 부모 밑에서 훌륭한 자녀가 나온다.

가정에서 훌륭한 자녀들이 나옵니다. 오래 참아 주는 부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한 일 중에 큰일은 오래 참는 일입니다.

교회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오래 참아주는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으세요. 오래 참아주세요. 그러면 거기서 바울이 납니다.

세상 어떤 일도 오래 참음 없이 되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결혼 생활의 비결, 오래 참음

결혼 생활을 30년쯤 하신 분들에게 물어 보세요.

남남이 만나 30년을 어떻게 이렇게 잘 살고 있느냐고.

대부분 오래 참음이란 답을 들을 것입니다.

 

젊은 날엔 사랑이 오래 참음인 줄 모릅니다. 성경에 써 있어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이가 좀 들면 압니다.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알아집니다.

그래. 사랑은 오래 참는 거야. 예수님이 날 향해 오래 참으신 것 같이.

<인터넷 칼럼에서 펀 글

 

 

◑어느 때는 그냥 두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세요.

우리가 힘들어하는 것의 많은 부분은

'관심'이라는 간섭 때문입니다.

 

홀로서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외로움의 아름다운, 고난을 통한 아름다움,

눈물을 통한 아름다움이

얼마나 빛나는지 모릅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스스로 깨닫습니다.

어느 것이 좋은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다 알게 됩니다.

 

또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자라고

열매 맺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저 따스한 햇살로, 맑은 공기로

먼발치에서 넌지시 지켜봐 주십시오.

 

사랑이란 일으켜 세워주고 붙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 자랄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행복한 동행중에서-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얼마 전 배우 전도연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후

‘밀양’이라는 영화가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밀양에 나오는 교회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큰 고통을 다하고 있는 주인공 신애를 도우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고통의 진정한 해결책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오히려 고통의 자리에 묵묵히 함께하여 주는 남자 주인공을

고통의 동반자로 부각 시킨다.

 

여기에 나오는 교회의 모습은 분명 우리의 일면을 보여준다.

교회는 많은 프로그램과 행사로 사람들을 도우려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의 현장에 함께 참여하고 그곳으로부터 일어서게 하기보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방법과 그 프로그램으로 들어오게 한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 속에 들어가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해결책 속으로 사람들을 빨리 끌어와

나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것이 내게 쉽고 편한 길이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방법으로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번저 연구소에서 나온 책에는, 이것을 ‘상자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세상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고, 그 시각으로 온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그냥 두고 멀찍이 서서 지켜만 보세요!

오래 참으면 저절로 다 해결 됩니다. (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