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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986 신앙인의 특권과 그 이면

LNCK 2007. 11. 27. 13:09

 

◈신앙인의 특권과 그 이면             단10:11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


내게 이르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단10:11


다니엘 성경을 읽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였지요.


그 말씀이 눈에 뜨인 것은 "다니엘은 어떻게 해서 은총을 크게 받았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에는 그 본문을 놓고 설교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지요.


주님께서 왜 다니엘이 크게 은총을 받았는지,

나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은총을 받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신 깨달음은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은총은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니라!”


그리고 이어서 조금조금 종용히 이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은총 베풀기를 원하신다.

그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깨달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깊이 깨달을 때 생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눈을 밝히 떠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깨달아라!


그리고 보면 뭇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은총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시편8편에서 기자는 이와 같이 노래했지요.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 씌우셨나이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은총이고,

그 중에서도 구속받았으니 큰 은총을 받은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비교의식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분복을 감사하며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전도서12장의 말씀대로,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어지고 길거리 문들이 닫혀지고 살구나무가 꽃이 피고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져 흙은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하나님께로 돌아갈 날이 신속히 임하리니

이 땅의 작고 큰 아픔들에 궁극적으로 슬퍼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저는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서

무슨 선한 일들을 많이 하여 은총을 받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그에게 은총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렇지요. 만약에 다니엘의 선한 삶을 보고 하신 말씀이시라면,

“은총을 받은 자여”라는 말보다 “인정을 받은 자여”라는 표현이 적절하지요.


다니엘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고 은총을 베푸신 주님은

나에게 또한 그리합니다... (펀 글)



◑ 넘쳐흐르는 생수의 강 (요7:38)


강물은 그 원류가, 모르는 여러 곳을 스쳐간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의 가시적 삶이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우리에게서 생수가 흘러나와 세상 끝까지 축복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강물은 줄기차게 흐른다. 강물은 모든 장벽을 다 극복한다.

한동안 강물은 제 코스에 따라 꾸준히 흘러 내려간다.

그러나 조만간 장애물에 부딪혀 물결은 주춤거린다.

하지만 곧 그 장애물을 돌아서 물은 계속 흘러간다.


당신은, 어떤 사람들이 가진 큰 장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당신의 생애 속에 그런 장애물이 들어오면

당신은 아무 쓸모가 없는 듯이 스스로 여긴다.


그러나 강물에 당신의 시선을 집중하시라.

그러면 강물은 그 장애물을 돌아서 나가든지,

아니면 장애물을 넘어서 극복한다.


장애물이나 어려움에 당신의 시선을 두지 마시라.

당신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아무것도 들어서지 못하게 하라.

감정도, 경험도, 그 어떤 것도

거대한 주권적인 강물의 흐름으로부터 한눈을 팔게 해서는 안 된다.


저 멀리 도도히 흐르며 우리 영혼을 치유하고 대지를 살찌우는 강물을 생각해보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경이로운 진리들을 열어 보여 주셨다.

그가 열어 보이시는 진리들은

우리를 통해서 강물처럼 광범위하게 흘러갈 것이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엄청난 강물의 축복으로 당신에게 자양분을 공급하셨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펀글)



◑나의 왕좌는 강단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 선다.

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불멸의 영혼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고,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세주께서 내 곁에 서 계신다.


성령님께서 회중들 위에 임재하시며,

천군천사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천국과 지옥이 결말을 기다리고 있다


아! 이 얼마나 장엄한 광경인가?

아! 이 얼마나 막중한 책임인가?

...                          <매튜 심프슨의 설교학 강의 중에서 (펀 글)



◑색다른 개념의 왕직 수행

 

그러나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벧전2:9


우리는 일반적으로 왕하면 뭔가 모르지만 호화로운 궁전과 권력,

엄위와 힘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복음서에서 기대하는 것은

막연하게나마 화려함과 웅장함이 깃들어 있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통해 만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러한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만이 보여 집니다.


단지 ‘유대인의 왕’이라는 조롱 섞인 죄목만이

예수님이 왕이심을 보여주고 있을 뿐,

예수님의 엄위로운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환호와 박수 화려한 왕관과 왕좌는 고사하고 조롱과 모욕, 가시관과 십자가만이

십자가를 지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묘사하는 도구들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바로 우리가 이해하는 왕의 개념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왕이신 예수님은 세상의 왕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의 왕직을 수행한다는

사실입니다.


심판과 조롱 멸시마저도 각오하면서 걸어가신 길,

가난과 봉사의 왕직이 바로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입니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한가 하면 바로

오늘의 우리들이 수행해야할 기본사명인 왕직(봉사직)

바로 예수님의 이 모습 안에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왕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가난과 핍박, 희생과 봉사뿐 아니라 조롱과 멸시마저도 각오한다는 것이고

그러한 태도만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인 것입니다. (편 글)

 

▲사도바울은 그의 편지 서두에서 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파울로스 아포스톨로스 둘로스 예수 크리스투’ 헬라 말입니다.

바울, 사도, 종, 예수 그리스도. - 이게 뭡니까?

사도는 것은 높은 이름, 영광된 이름 입니다.

종은 낮은 이름입니다. 노예라는 것은 비참한 이름입니다.

이 두 이미지를 그대로 한 몸에 지니고 삽니다.

사도인 동시에 노예요, 노예인 동시에 사도란 말입니다. 이것이 그의 정체성입니다.


[주제별 분류] 꿈, 비전, 소명 http://blog.daum.net/bible3/13354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