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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989 달려 가면서도 읽게 하라

LNCK 2007. 11. 28. 20:51

◈달려가면서도 읽게 하라!         합2:2

 

 

이제 세상이 너무 바쁘게 되었으므로,

출퇴근 시간에 달리면서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강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달리면서 읽어야 하는 시대

 

구약 하박국 선지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달리면서 말씀을 읽게 하라’

고 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도다.

너는 이 환상을 기록하여 판들 위에 알기 쉽게 새겨

그(환상을 전해주는 자)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합2:2

 

혹자는 <일반 사람들이>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로 해석하지만,

혹자는 <환상을 전해 주는 사람(메신저)이>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해석합니다.

 

그 주어가 누구이든지 간에, ‘달려가면서 읽게 하라’는 뜻은 동일합니다.

 

▲오늘 이시대야말로 정말 달리면서 읽어야 할 때 입니다.

모두가 쫓기는 생활입니다. 직장에 가면 일에 쫓깁니다.

가정에 돌아오면 살림에 쫓깁니다. 교육에 쫓깁니다.

또 사람구실 해 보려니까 윗사람, 아랫사람 모두가 체면에 쫓겨 다닙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사실 5분, 10분 내서 성경 읽고 기도하기도 힘든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동분서주, 늘 바쁘게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달리면서 계시(말씀)를 읽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라디오 방송은, 운전자들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거기서 간혹 성경말씀을 직접 낭송해 주기도 하는데,

1분씩 듣는 말씀이 귀에 잘 들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방송에서도 ‘설교’ 편성 시간이 점점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대신에 뉴스나 다른 생활정보가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되겠습니다...

 

*요즘은 말씀을 휴대용 MP3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경이 압축된 소형 녹음기’라고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됩니다.

 

*요즘 서울에는 와이브로(이동 인터넷)가 되므로,

차량 안에서 운전하면서도 교회 인터넷 방송을 접속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가장 편한 방법으로는,

요즘 여러 교회에서 설교말씀을 MP3파일로 다운받게 해 줍니다.

그러면 그것을 전철이나 버스 속에서 이어폰으로 듣는 것입니다.

 

각자가 알맞는 방법으로 달리면서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듣는 것도 필요합니다.

원래 구약시대에는 책이 귀해서 성경도 많이 없었거니와

‘성경’이라고 하면 의례히 사람들이 ‘귀로 듣는 시간’으로 이해했습니다.

낭독자가 크게 외치고, 무리들이 조용히 귀로 들은 것입니다.

 

제가 편집해서 올리는 설교 문들도,

눈으로 읽는 것보다, 귀로 듣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제 경험상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병원에 심방가시면,

이 블로그 글 중에 마음에 드시는 것들을 뽑아서,

환우의 귀에 낭독해서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해설자도 필요하다

 

▲사도행전 8:29-30절에 보면, 달리는 중에 말씀을 읽은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이디오피아 내시입니다.

그는 마차로 달리면서 쉬다가, 이사야서 두루마리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빌립에게 내시가 탄 병거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지금 읽는 것을 깨닫습니까?”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행8:31

그러자 빌립은 마차(병거)에 올라 같이 앉아서 말씀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성경을 직접 읽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와 같이 말씀을 잘 풀어서 설명해주는 해설자(설교자)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읽다가 크게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저 단순한 감정적 의기투합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가까이 하고, 해석하고, 가르치는 분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심령의 부흥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너무 바쁜 일상 속에서

어쩌면 일주일 내내 성경 한 번 펴기도 힘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어떻게 심령의 부흥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집에서 안 되면, 달려가면서 읽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말씀에 사로잡혔던 루터

프린스톤 신학교의 유명한 성서 신학자인 오토 파이퍼라고 하는 분이 계셨는데

이 교수가 강의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하는 말씀이

"자네들, 그 종교 개혁을 마틴 루터가 일으킨 줄로 생각을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일세"

라고 점잖게 말씀하십니다.

 

학생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게 아니면 누가 한 거냐?

도대체 그럼 누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노교수께서는 다시 천천히,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종교개혁은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읽을 때,

루터가 그 갈라디아서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그 말씀이 그 안에서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진리가 그 사람을 폭발시켜서

루터는 그 진리를 전파하지 않고는 다른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네."

 

종교개혁은 루터가 한 것이 아니고 갈라디아서의 진리가 한 것이라고 아주 신중한,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교롭게 제가 프린스톤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 바로 마틴 루터의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때에 루터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께서는 다른 것은 전부 참고하게 하고

오로지 루터의 갈라디아 주석을 한 학기 내내 Page by page, 읽고 토론하고 연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루터는 갈라디아 주석을 두 번 썼습니다.

처음에 쓴 것은 좀 작고, 뒤에 쓴 것은 아주 큰데 신구약 성경보다도 큽니다.

이 갈라디아 주석을 읽어 나가노라면 루터가 얼마나 갈라디아서에서

불같은 은혜를 받았는지 엄청난 생명력을 경험했는지를 우리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주는 진리, 이 생명력이 그를 포로로 잡아서, 그를 사로잡아서

마침내 종교개혁을 이룬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가 나를 사로잡아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용히 순종할 따름입니다.

(이상 인터넷 설교 편집, 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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