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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1014 '고독'을 '독거'로 바꾸십시오

LNCK 2007. 12. 13. 13:01
 

◈'고독'을 '독거'로 바꾸십시오!         딤후1:15                       출처 

 


▲인간인 이상 극복할 수 없다는 고독이란 한계상황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을 생태적으로 ‘고독’한 존재로 분류합니다.

아무리 결혼하고, 자식과 친구가 많아도, 사람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독’은 인간이 절대 극복할 수 없는 ‘한계상황’으로 인정합니다.

결국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고독하게 살다가, 어쩔 수 없이 고독하게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절대 극복 못 한다는 고독

- 오직 신앙으로만 극복되어질 수 있습니다.

 

 

▲공부 많이 한 현대인의 문제 - 고독병

이웃나라 일본은 1999년, 1년 동안에 31,385명이 자살을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노인이 아닙니다. 멀쩡한 젊은이들이 자살을 했습니다.

왜 그럴 거 같습니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쉽게 생각하십시다.

지금 일본에 있는 그런 유행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비혼시대입니다.


되는대로 살고, 적당히 살고,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남자는 60%, 여자는 50%, 그 결혼한 50% 마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듭니다.

그래서 일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대로 가면 불과 몇 십 년 안 가서 인구가 팍 떨어지니까요.


왜 이런 현상이 생깁니까? 왜?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혼했다가 한번 싫어서 이혼하려면 엄청나게 손해 보니까...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한 척 하고, 교만하게 자기 관리를 했는데

결국은 고독이라는 병에 걸려서 자살하게 되더라 이거요. 이것이 현대인입니다.

이것이 현대인이 가는 운명이올시다. 이걸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은 봉사하면서, 또 봉사를 받으면서 살게 마련이요.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겠다, 결국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건 인간의 기본입니다. 봉사하면서 사는 선행이 있어야 됩니다.


▲외로운 독신 교수들의 후회

제(곽선희 목사님)가 오래 전에 버클리 대학 교수 딸 결혼식을

주례하러 갔던 일이 있습니다.

버클리 대학의 유명한 교수들이 거기에 결혼식장에 가득히 왔는데

결혼식 하는 동안 저는 그런 결혼식 처음 주례합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우는지...


마친 뒤에 알아보았습니다, 왜 우느냐고?

그 유명 대학 교수 중에 50%가 독신이에요.

젊었을 때 되는대로 사느라고 결혼 안 했어요. 매이고 싶지 않아서,

이제 나이 50이 넘어 가지고 친구 교수의 딸이 결혼식 하는데,

그게 부러워 가지고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고 앉아있어요.


답답한 인간들입니다. 진짜 이거 기가 막힌 얘기입니다.

다 늙어 가지고 이제 와서 그게 부러워 가지고,

‘저렇게 살아야 되는데, 난 이게 뭐냐?’ 라고 한탄합니다.

 

사람은 원래 결혼해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일부이지만 독신 은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 한다고 고독을 극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해도 여전히 인간은 고독합니다.

우리는 결혼하든지, 독신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홀로 서는 법을 가급적 빨리 터득해야 합니다.

 

 

◑독거의 영성


▲독거의 영성에 들어간 바울

딤후1:15절에 보면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당했습니다.

바울을 버린 대표적인 사람들이 부겔로와 허모게네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외로움을 느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믿었던 사람들이 그를 버렸더라도

그는 하나님과 여전히 교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버렸다고 할지라도, 그는 고독에 빠진 것이 아니라

'홀로 있음의 영성'인 독거 상태에 들어갔던 것이지요.


▲'고독'(loneliness, 외로움)과 '독거'(solitude)는 비슷한 말 같지만 다릅니다.

둘 다 혼자 있다는 사실에서는 같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고독한 상태에 있으면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독거 상태에 있으면 평안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고독은 내적으로 비어 있는 상태이고

독거는 내적으로 충만한 상태입니다.

고독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면서 하나님과 아무 상관도 없는 상태이지만

독거는 홀로 하나님의 은밀한 목소리를 듣는 영적 상태입니다.


▲예수님도 종종 독거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홀로 계셨습니다(마4:1-11).

12제자를 선택하시기 전 밤을 새우며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눅6:12).

새벽에도 ‘홀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막1:35)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습니다(마14:13).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다음에 외딴 데로 물러가서 기도하셨습니다(눅5:16).

이와 같이 독거야말로 예수님의 영성 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영성가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여전히 외롭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독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외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도 말했습니다.

"독거할 줄 아는 사람만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day together)와 '홀로 있을 때'(day alone)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디이트리히 본훼퍼는 말했습니다.

"독거 없이 교제만 원하는 사람은 말이나 감정이 공허해질 수 있고,

교제 없이 독거만 구하는 사람은 무상과 자기황홀, 실의의 심연에 빠져들 수 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에는 어울려야 하고,

홀로 물러나 명상에 침잠해야할 때에는 홀로 있을 줄 알아야 합니다.


▲독거라는 영성훈련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침묵훈련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이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말만 삼간다고 해서 침묵이 아닙니다.

침묵은 말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잘 분별할 줄 아는 지혜입니다.


우리가 홀로 있으면 온갖 주의를 하나님께로 기울여 침묵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초조하지 않고

뭔가 세상적인 것에 대신 의존하지도 않는 독거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고독을, 독거로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적 번민을 통해... 영성이 새로워진다.


▲성자도, 인자도 ‘영혼의 어두운 밤’이 있었다. 

세계적인 성자 마더 테레사가 생전에 동료 신부에게 쓴 서신에서

그 성자에게도 ‘영혼의 어두운 밤’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추앙했던 테레사 수녀가

하나님의 침묵 때문에 고민했다는 것입니다.

서신 내용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주께서 제 안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둠 냉담 공허의 현실이 너무도 커서 제 영혼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너무 큰 침묵과 공허함으로 보아도 보이지가 않고, 들어도 들리지가 않습니다.

기도를 할 때 혀는 움직이지만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테레사 수녀도 신앙적인 회의와 번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울부짖어도 철저한 침묵만 계속되었을 때

그녀 역시 잠시 흔들린 적이 있었던 것뿐입니다.

마더 테레사도 인간이었기에 때로 너무 힘들고 외로웠던 것이지요.


이와 같은 어둠과 번민과 회의와 고독의 순간을

16세기의 위대한 수도사 십자가의 성 요한(St. John of the Cross)은

'영혼의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이라고 불렀습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하나님의 절대 침묵, 철저한 방기(放棄)를 일컫는 말이지요.

그러나 위대한 성녀 마더 테레사 조차도,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조차도, 겟세마네에서, 갈보리 언덕에서 

이와 같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고독과 방기(방치)

이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건강하기 위해 시퍼렇게 살아있는 몸에 칼을 대고

피를 흘리는 수술을 받아야만 하듯이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할 때 찬란한 새벽빛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영혼의 어두운 밤'과 같은 절대 고독,

절대 침묵을 통하여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마더 테레사가 하나님을 부인했을 리가 없습니다.

다만 그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기에 외로운 적이 있었을 뿐입니다.


▲여러분, 고독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고독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독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항상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거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로부터 둘러싸여

행복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외롭고 쓸쓸할 뿐 아니라,

홀로 있을 때에는 불안과 초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항상 충만한 독거,

그런 홀로 있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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