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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7 디딤돌, 걸림돌

LNCK 2008. 1. 9. 13:44
 

◈디딤돌, 걸림돌



◑메시야를 기다렸으나, 정작 오시고 나니...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하박국 이후,

유대 사람들은 메시아 대망사상 Messianic Expectation 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그저 메시야만 오면 다 해결될 줄로 알아서

간절히 기다리는데, 때와 장소, 인물까지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베들레헴에 오실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믹5:2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예언에 따라,

메시아가 동정녀의 몸에 오실 것이라 생각하고       사7:14

베들레헴에는 메시아를 낳아보겠다고

시집 안 가고 기다린 처녀도 수 백 명 많았답니다.


그만큼 동정녀에서 난다는 것과

베들레헴에서 난다는 것과

그리고 이때쯤 오시리라는 것까지 다 알고 간절히 메시아를 기다렸어요,

나라가 망해서 탄식할 때도, 경제적인 빈곤 속에서도 메시아만을 기다렸어요.

그들의 모든 초점은 메시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정작 오셨어요. 오시고 나니 어떻게 합니까?

헤롯왕은 당장 그 아기 예수를 다짜고짜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 자기 보좌를 내놓고 싶지 않으니까요.


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즉 성경만 전문으로 연구하던 사람들 역시

메시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데 주동이 됩니다.

왜? 현실에 안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기 기득권과 위치를 내놓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나라가 이제 임한다며, 먼저 회개하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소망도 있었고, 기대도 있었는데,

정작 메시아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없었습니다.

마음의 회개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모퉁이돌(기초석)로 오셨으나,

사람들은 그 위에 건축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걸림돌stumbling block이 되고 말았습니다.



◑끊임없이 본질을 추구해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신학자, 사상가 - 이런 사람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신학자, 사상가는

끊임없이 기독교의 본질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할 본질적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런 신학과 사상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디딤돌 stepping stone 이 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 stumbling stone이 됩니다.

 

(이 글에서 모퉁이돌이나 디딤돌은 그 위에 뭣을 세운다는 점에서

같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서구의 탁월한 신학자, 사상가, 선구자들을 볼 때,

예를 들면 빌 하이벨즈, 릭 워렌, 레노바레, 내촌감상 등 (힐송 포함)

어떤 사람들은 이들을 디딤돌로 여겨서 딛고 올라설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이들을 걸림돌로 여겨서 비판만 하다가 걸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비판을 하면 그들의 장점을 전혀 못 배울 뿐더러, 내게 성령이 소멸됩니다. 

다만 내게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받아들이면 됩니다.

 

현대신학의 원천은 1919년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이라고 합니다.

현대신학에서도 만약 배울 점이 있으면, 찾아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적 기독교의 본질>을 추구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배척했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처럼 되면 안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의 머리'로서 우상화되면 안 되겠습니다. 

 

혹자는 교회에 유익하면 뭐든지 가리지 않고 수용하면서,

만약에 교회에 해로우면 그것이 진리라도 거부합니다. 

 

어떤 분은 신학과 철학과 성경을 연구해서

이론과 학문적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추구합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기독교의 진리를 실제로 자기 몸으로 실천하고 체험합니다.

그런 가운데 기독교의 본질을 발견하고 전파하는 분도 있습니다. (실천신학자)

성 프랜시스나 마더 테레사, 또한 목회자들은 실천신학자라 볼 수 있습니다.

 

이론과 실천 양쪽이 모두 필요합니다.

예수님처럼 양쪽을 다 가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국은 세계 선교의 첨병 사명을 지금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본질적 기독교를 전파해 주어야 합니다.

성공주의, 현세주의, 율법주의, 신비주의, 샤머니즘적 기독교를 전파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시대적 중요한 사명입니다. 

  


◑정채봉선생의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60년대 서울에 올라온 한 시골 청년이 고향 친구에게 편지를 합니다.

‘서울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오직 일자리를 구하는데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일자리를 찾느라고 애쓰고 있다.’


70년대 들어와서 이 청년은 다시 고향 친구에게 편지를 합니다.

‘서울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돈에 있는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눈에 비친 서울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80년대 들어서 이 청년은 친구에게 다시 편지를 합니다.

‘지금 서울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권력에 있는 것 같다.

권력을 잡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경주한다.

권력이면 모든 일이 다 될 것처럼 생각한 나머지

그 권력을 잡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쓴다.’


90년대 들어와서 다시 편지를 합니다.

‘서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곧 스피드다.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단 1분의 시간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달린다.’

(그래서 성공주의와 자기 계발self development 등이 당시에 유행했습니다.) 


60년대부터 각 십년(decade)마다

교회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세상과 비슷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넷 설교 참조 편집

  

[주제별 분류] 기독교 사상 http://blog.daum.net/bible3/13735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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