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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9 6번째 나팔

LNCK 2008. 1. 16. 15:16
 

◈6번째 나팔          계9:12~21                         *출처 : 휘발되어 없어졌음 

 


▲9:12절, 요한이 본 환상은 역사적, 시간적 순서가 아니다.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계9:12


이런 구절을 시간적으로 해석하면 안 좋다.

이것은 요한이 본 환상의 순서지, 역사적 사건의 순서(일 수도 있지만)가 아니다.★

요한이 본 첫째 환상이 지나간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간혹 여러 꿈과 환상을 자주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보는 꿈과 환상의 순서가, 꼭 시간적 순서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13절, 하나님은 반드시 먼저 경고하신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 경고하신다는 뜻이다.

*뿔 - 권세를 상징한다.



▲14절, 유브라데로 심판하신다.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유브라데 강의 상징적 의미

사람 1/3을 죽이기로 예정된 네 천사가 유브라데 강에 지금 묶여있다. 계9:14~15


유브라데 강은 실제로 존재하는 유프라테스 강이다.

이 강은 구약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였다.

그 강 건너편에는 앗수르와 바벨론이 있었다.

구약에서 큰 강 유브라데는, 하나님의 편이 아닌 악한 세력을 상징한다.

즉, 앗수르와 바벨론의 동의어가 유브라데였다. 註1)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 유브라데 강은, 로마제국과 파르티안 민족의 경계였다.

당시 파르티안은, 로마제국이 매우 두려워했던 (바벨론 같은) 이방 기마민족이었다.


사도 요한이 유브라데 이미지를 차용해서 6번째 나팔 재앙을 예언한 속뜻은,

유브라데는 - 하나님의 대적이자 동시에 하나님 백성들의 대적이라는 뜻이다.

이는 매우 무서운 존재인데,

그래서 요한도 ‘사람 1/3을 죽이는 천사’가 거기에 묶여 있다고 했다.


이사야 8:8절에 그 때에 그 (유브라데 강) 물이, 샛강을 뒤덮고...

그 유브라데 강물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내줄 것이다.

그러나 혼을 내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신다...


이사야 8:9절에, 너희 민족(앗수르)들아.., 

하나님은 앗수르 민족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혼내 주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품어서 보호하시고,

앗수르 인들은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된 후...

자기들 스스로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즉, 유브라데는 이사야서에 '하나님 백성의 심판' 이미지인데,

실제로 앗수르와 바벨론이 유브라데를 건너와서 이스라엘을 심판했다.

사도 요한은 그 심판의 이미지를, 6째 나팔 예언에, 차용하고 있다.


△심판은, 의인에게는 돌이킴을, 악인에게는 멸망을 준다.

죄인들의 심판을 한 번 잘 생각해 보자

왜 사람들이 서로 공격하고 서로 심판하고 그러는가?

각자 자기 안에 있는 악 때문이다.

세상은 각자 자기 안에 있는 악 때문에 서로 물고 뜯고 한다.

그러다가 죄인들은 결국 자멸한다.


반대로 의인들은,

심판 때에 반드시 돌이킨다.

6째 나팔의 경고는 - '망해라'가 아니라, 의인들에게 '돌이키라'이다. 



▲15절, 재앙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1/3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9:15

유브라데 강에서 올라온 네 천사(마귀의 세력)들이 사람들을 죽이는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다.

인류의 역사를 포함한 이 우주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히, 자연 법칙에 의해 운행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 사도 요한은 알려주고 있다.



▲16절, 이만만 - 숫자가 많다는 상징적 표현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9:16


문맥상 네 천사(악한 천사)는 아마 이 마병대의 리더라고 볼 수도 있다.

이만만 군대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2억이니, 중국과 인도 연합군 쯤 해석된다.


2차대전 때 전 세계에서 동원한 군대는 7천만이다.

그런데 2억의 군대를 동원하기란 사실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성경에서 <아주 많은 숫자를 표현할 때> “천천이요, 만만이다”는 표현을 쓴다.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시68:17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계5:11


이렇게 볼 때, 마귀의 세력을 ‘2만만’으로 표현한 것은

그 숫자가 중다하게 많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 숫자가 많아도, 한정된 숫자이다. 무제한은 아니다. 註2)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숫자는 - 셀 수 없는 무제한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7:9



▲17절, 무서운 심판의 때가 작정되어 있다.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 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9:17


*불과 연기와 유황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표현들이다. 창19:23, 소돔과 고모라. 신29:23.

즉, 마치 지옥 같은 심판을 나타내는 단어다.


즉 심판을 뜻하는 단어들이 그 말들의 입에서 나온다.

이것은 말들의 세력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를 지칭하는 상징이다.



▲18절, 심판의 재앙 때, 하나님은 악한 세력을 사용하신다.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1/3이 죽임을 당하니라   9:18


악인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심판의 도구’로 쓰임 받을 때이다.


하나님은 마귀(영적세력)를 도구로 쓰시는가, 악인(현실세력)을 도구로 쓰시는가?

둘 다 쓰신다.

마귀가 악인에게 역사하여, 그 둘이 함께 악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19절, 마귀가 주는 환란은 무척 강력하다.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19:19


당시 유브라데 건너편의 파르티안들은, 상대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말의 꼬리에 뱀의 모양을 장식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말 타고 달려오면서도 활을 쏘고, (정지 상태가 아니라 달리면서)

말 타고 도망가면서도 뒤돌아보면서 활을 쏘았다고 한다.


머리가 사자 같고(말이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드는 모습, :17),

꼬리가 뱀 같은 것이 쏜다는 사도요한의 표현은

고대 파르티안의 전투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마귀의 수는 중다하며, 매우 무시무시하다는 표현이다.

이런 마귀를 통한 심판은, 매우 끔찍하고 무시무시하다.


 

▲20~21절, 악인은 재앙의 날에도 회개치 않는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9:20~21

 

하나님의 경고의 (6번째) 나팔이 울려지면,

모든 사람들에게 어려운 재앙이 닥치지만,

그 때 신자들은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지만,

악인은 절대 회개하지 않는다. 도리어 더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더 원망한다.



◑적용 : 경계하고 정신 차리시라!


유브라데의 네 천사와 마병대에 의해 결국 죽거나 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는 자’(불신자, 악인)이다.

그들만 죽임을 당한다.


5째, 6째 나팔은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십계명을 어긴 자들 (계9:20~21이 십계명의 내용임)

이들이 받을 심판을 예언하고 있다.


▲고난을 통해서 의인은 돌이키고, 악인은 더 배반한다.

구약에도 보면,

그렇게 재앙으로 죄인들이 포로로 끌려갈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회개하고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의 재앙들을 통해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신다.

“나의 백성들아, 회개하고 돌아오라!”


내가 너희에게 나팔을 부는 것은,

너희들이 회개하고 나에게 돌아오라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에게 주는 은혜이며, 배려이다.


그 마병대 말들이 쏟아내는 불과 유황으로  사람 1/3이 죽는데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더라!

- 이 구절이 의도하는 바는, 하나님은 <회개를 의도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은,

그 재앙 속에서 맞아 죽더라는 것이다. 돌이키질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타락했더라도, 환란 때) 회개하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재앙이 임했을 때,

너희들은 왜 너희에게 그런 재앙이 임했는지 정확하게 깨달아 알고,

나에게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복이다.)


1/3만 죽는 다는 의미도 - 여전히 회개하면, 돌이킬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다 죽고 망하지 않는다. 돌이키는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풀 수도 있다.


 

세상을 버리라고 환란을 주신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일생을 통해, 이 땅의 것들을 차츰 놓고, 손을 털고

저 천국의 영원한 것들을 더욱 소망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 감각 세계의 것들을 추구하는 우리 인간의 욕심은

‘메뚜기에게, 전갈에게, 이만만의 마병들’에게

우리를 환란 가운데로 내어주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서,

그런 세상 것들을 오히려 손에 쥐어 주겠다고 장밋빛 약속하는 것이

어떻게 옳은 가르침이겠는가?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고 싶으면, 잠 조금 줄이고 더 열심히 뛰면 된다.

육으로 심는 것은, 육으로 거두는 원리도 엄연히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해서, 내가 육의 것들을 얻어내겠다는

그런 시늉은 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것은 참된 기독교가 아니다.


우리가 달콤한 이 세상 것들을 하나, 하나 버리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 순간에 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이 그들의 욕심과 죄로 말미암아 당하는

그 재앙 속에 자녀들을 함께 노출시켜 두신다. 같이 당하게 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환경을 당하면, 자포자기하고, 절망하고, 결국 망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때마다 한 겹 한 겹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고 놓게 된다.

오히려 우리의 진정한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조금씩 조금씩 더 의뢰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로는, 그런 고난과 우리에게 닥치는 재앙들은

성화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섭리요,

죄악의 삶을 버리라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다.



▲세상을 포기 못하면, 마귀에게 끌려가서 망한다.

6번째 나팔에서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결국 마귀의 세력에 의해 사망으로 끌려가게 되는 자들은

그런 세상세계, 물질세계의 것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절대 포기 못하는 자들이다.


자기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

이 감각세계, 물질세계인 사람들은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녔다 할지라도,

결국 사망으로 끌려간다는 것이다.

- 그런 교훈을 본문은 우리에게 주고 있다.


 

▲1달란트 받은 자가 되기 마시라 ★

여러분, 크리스천은, 이 땅에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5달란트로 10달란트 만들고,

2달란트로 4달란트 만든 종들은,

10달란트, 4달란트 "모두" 아낌없이 주인께 되돌려드렸다.


반면에 1달란트 가진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두었다.

어차피 제게 돌아올 이익이 없을 거니까, 원금 되가져가세요! 그랬다.


나머지 종들이 열심히 주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 때,

1달란트 가진 자는 뭐했겠는가? -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일했을 것이다.

주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기 싫었던 것이다.

일해 봐야, 어차피 자기 것 안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주인은 그에게

바깥 어두운 데로 쫓아내서,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갈게 하라고 명령했다.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 나라의 유익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 유익만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엄한 경고이다.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이란,

‘주인의 유익’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것에 자기 관심과 시간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어차피 자기 것이 안 될 것이라며... 그런 이기적 마음을 갖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말로는... 가진 1달란트도 빼앗기고,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전갈, 메뚜기, 2만만의 군대의 독침에 쏘이면 안 된다.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 있고,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어떤 재앙을 만나도, 오히려 나에게 유익으로 삼는다.


우리는 메뚜기에게 쏘이면 안 된다.

전갈에게 쏘이면 안 된다.

2만만의 마귀의 군대에게 당하면 안 된다.

우리 세속적 세계관을 바꾸어야 한다.


세상의 것이 내게서 사라질 때, 자포자기하고 절망하는 사람은

아직 ‘이 세상 것이 나의 힘이다’ 라는 세속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 힘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없어지니까, 자포자기하고 절망한다.

(후략)


註1)

렘51:63~64절에, 예언의 책에 돌을 달아 유브라데 강에 던져버리고,

이처럼 바벨론이 다시금 일어나지 못할 것을 예언한다.

- 유브라데 강 속에는 무시무시한 바벨론이 묶여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사야8:7절에, 내가 힘있고 거대한 유브라데 강물, 곧 앗수르 왕과 그 군대를 보내...

앗수르 사람들이 물처럼 강둑 위로 솟아올라 그 땅에 흘러넘칠 것이다.

- 이 구절도 유브라데=앗수르를 의미한다.


註2)

즉, 네 천사와 마병대는 -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이는 마귀를 가리킨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은, 중국과 인도의 2억 군대를 예상하는데.., 


그러나 이만만의 군대를, 2억은 아니더라도, ‘천천이요 만만이라’는 표현처럼

‘아주 많은 실제적 군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는 일단, 안전하게, 상징적+문자적 해석을 모두 포괄적으로 본다.

종말 전쟁은 상징적(영적)+문자적 전쟁으로 본다. 편집자의 의견.


[주제별 분류] 6번째 나팔 http://blog.daum.net/bible3/1305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