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시라 출3:5~6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시는 순간,
모세, 이사야, 또한 스랍 천사는
모두 자기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와, 죄와, 죽게 된 고통을 토로했습니다.
모세는 신을 벗고 얼굴을 가리고, 스랍도 얼굴과 발을 가리고, 이사야는 화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임재를 경험한 분들의 공통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교회의 현실은, ‘하나님의 임재’를 외치고 있으나,
그들과 같은 통회 자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 변질된 ‘임재’보다는, 참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십시오.
거기에는 고꾸라짐, 통회, 자복이 반드시 수반된다는 Paul Washer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참된 예배일수록, 하나님의 임재가 잘 드러납니다.
우리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를 늘 사모합시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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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임재’란 표현을 종종 듣는다.
“오늘 저녁에 주님의 임재the presence of God가 이 자리에 임했습니다!”
“주님의 놀랍고도 강력한 임재가 지금 이 시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배시간에 찬양인도자와 설교자들이 종종 이런 표현을 남발한다.
나는 그들에게 엄중하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이 느끼는 가벼운 ‘하나님의 임재’와,
성경에 나오는 진짜 ‘하나님의 임재’를 한 번 비교해 보시라고!
모세, 스랍천사, 이사야의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자.
▶모세는 광야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신기하게 나무가 불살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거기에 가까이 나아가서, 타는 불꽃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을 뵈었다.
그 때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기 신발을 벗고 맨발로 나아갔다. 출3:5
또한 모세는 두려움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 출3:6
하나님의 거룩하심=임재는, 그것을 만난 사람들을 먼저 깨어지게 한다.
강력한 회개와 자기부정을 경험케 한다.
성경에 하나님은 불꽃 가운데 임재 하셨다고 하는데,
오늘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는 사람들은
강력한 불꽃이 아니라, ‘산들바람, 약간 뜨거운 기운’ 등을 두고,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고 떠들어댄다.
하나님은 약간 뜨거운 공기나 시원한 바람으로 임재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임재하실 때 “강력한 불”로 임하신다.
(미국 부흥사 중에 ‘뜨거운 공기’로 임재를 체험했다는 분이 있음)
(註. 그럼 우리가 기도하거나 예배드릴 때,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또는 좌중이 갑자기 숙연해지는 등의 느낌은, 명백히 ‘불이 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임재가 아닌가?
물론 Paul Washer 목사는, ‘하나님의 임재’를 남발하고 남용하는 분들에 대해 경고하면서,
더 높고 고상한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설교문을, 일각에 대한 비판으로 쓰지 말고, 미래를 위한 건설적, 보완적으로 받아야 하겠다.)
그 불은 스스로 타 없어지지 않으며,
그 앞에 모든 unholy한 것들을 다 살라버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것은 어쩌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사야가 환상 중에 스랍을 보았을 때,
그들은 각기 여섯 날개가 있는데, 둘은 그 얼굴을 가리고, 둘은 그 발을 가리고
날개 둘로 날며 창화하며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였다.
스랍에 대해 우리는 그 존재의 본질을 잘 알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스랍도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피조물 중에서 가장 능력이 많고, 가장 거룩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스랍은,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에서 섬기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들이 스랍처럼 하나님 가까이 나아갔다가는 당장 멸망당할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장 거룩한 피조물이라는 스랍들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그들은 자기 얼굴을 가리고, 자기 발을 가리고, ‘거룩하다’를 계속 찬양한다.
그렇게 큰 능력을 가진 스랍 천사 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얼굴을 가리고, (그 영광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발을 가리고 (너무 미천함과 더러움을 가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였다.
하물며 스랍보다 말할 수 없이 추한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 태도가 어떠한가?
▶어느 날 어떤 교회 집회에 가니까
인도자가 “하나님의 임재가 이 자리에 계십니다!” 하기에
나는 “아니요, 하나님은 이 자리에 안 계십니다”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만약 하나님이 정말 이 자리에 계신다면,
여기 청중들 중에 절반 이상은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왔을 때
“화로다, 나여, 이제 죽게 되었도다!” 라고 외쳤다. 사6:5
누구든지 참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오면,
자기가 죽을 죄를 지닌 절망적 상태임을 절감하며
자기의 죄를 처절하게 고백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가벼이 ‘하나님의 임재’를 외치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워십할 때 두 가지 균형을 가져야 한다.
*이사야가 느꼈던 통회하고 자복하는 의식
하나님의 임재 앞에 완전히 고꾸라져서, 자기의 형편과 처지를 통회하는 것이다.
*가나의 혼인잔치 같은 축제 의식이다.
손을 들고 기쁨의 환성을 지르는 행위이다.
註. 후자(축제)는 잘 하고 있지만, 전자(고꾸라짐)가 매우 약하고 균형을 잃었다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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