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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남은 고난 채우기

LNCK 2008. 1. 23. 11:04

www.youtube.com/watch?v=pQwUN70jxfI&feature=youtu.be 

◈남은 고난 채우기               골1:24~29                김성수 목사님 설교 녹취.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4

 

 

고난의 의미를 꿰뚫고 있었던 바울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최근까지 그 진의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뭣이 부족합니까?

십자가에서 치르신 고난이 2% 부족한 것인가요? 물론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고난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 및 양육 사역에는 반드시 고난이 동반된다는 사실입니다.

 

남은 고난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골1:24
구속사역을 위한 고난은 끝났지만, 교회를 위한 고난은.. 아직 재림 때까지 남아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양육시키는데, 즉 교회를 위한 고난은..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했습니다.

 

 

◑ ‘고난’의 참된 목적

 

이런 생각 해 보셨는가요?

예수님은 이 땅에 죽으시려고 오셨으면, 그냥 쉽게 죽으시면 되지,

뭐 하러 꼭 그렇게 비참하게 무시당하시고, 수난 당하셔야 했나요?

 

공생애 생략하고, 십자가만 지셨으면... 좀 더 편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공생애 3년 동안 배반, 수모, 고난 이런 것까지 비참하게 당하셨는가요?

 

그 이유를 알아야, 우리가 이 땅에서 수난과 고난을 당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고난을 통과해야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 이루어진다.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2:10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5:8

 

이 구절들을 언뜻 보면, <주님은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되셨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보통 오해하기 쉽습니다.

전에 뭔가 부족한 분이셨는데, 고난을 통해서 온전하게 되셨다는 뜻은 옳지 않습니다.

 

주님은 영원 전부터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고난과 수난을 통과해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께 시키신 일, 그 사역이 온전하게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그러니까 고난과 수난은 하나님이 미리 작정하신 뜻이고,

그것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 정하신 뜻이란? (아래에 계속 설명)

 

▲고난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기회다.

예수님은, 자기를 돌로 치려는 자들을 향하여

사랑과 용서와 인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셨습니다.

 

자기를 낭떠러지에 밀어 떨어뜨리려고 했던 사람도... 품어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으로 원수들을 대한 것이... 바로 고난이었습니다.

 

우리가 워낙 물질주의, 성공주의, 쾌락주의에 빠진 세상을 살다 보니까

고난 하면 - 사업이 망하고, 가난해지고, 이런 것으로 이해하는데...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고난이란,

내가 정말 힘이 있고, 내 성질대로라면 저걸 확 밟을 수 있는데도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야 하는 자로서 그것을 참고,

도리어 그런 수욕의 고난을...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는다> 입니다.

 

▲고난을 통해 ...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5~11

 

 

예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자기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을 사셨더니

다른 말로 ‘고난을 당하셨더니’

위 본문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더라고 증거 합니다.

즉, 주님을 믿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계시록 11장에 두 증인이 세상에 살면서 입술로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 순교로 비참하게 죽었더니

남은 자들이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더라고 했습니다.  계11:13

이 구절도 빌2:11절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즉,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

두 증인의 순교의 고난을 허락하셨고, 예수님도 그런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미리 작정하신 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전도, 구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고... 성도에게 고난을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을 살다가 가셨더니,

‘많은 자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더라’고 했습니다. 빌2:5~11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도 그 자리로 부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

즉, 나를 비우고, 나를 죽여서,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천국에 가기 전에 벌써, 이런 삶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것을 반드시 행해야 한다는 - 율법주의, 윤리도덕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은, 이것이 반드시 자기 삶에 나타나게 되어있다는 - 당위성입니다.

즉 나의 고난(죽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나게 되는 역사입니다.

 

내 고난의 의미를 깨달으시라!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에 고난이 있다는 것은,

이 고난을 통해, 누군가가 지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은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나중에는, 여러분이 당하는 그 고난의 삶을 통하여

여러분이 용서하고, 인내하고, 참고 하는 그런 고난의 삶을 보면서

지금 누군가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 고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어지도록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습니다.

 

▲고난은... 여호와의 뜻을 성취한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53:10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그 수난의 삶을 주셨다고 합니다. 사53:10

왜 주셨는가요?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상함과 고난과 찔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런 수난과 고난의 삶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4:3

우리가 거룩해져야 그 나라는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거룩하다는 뜻은,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자꾸 나타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고난을 통해서, 또한 거룩해 집니다.

 

그러니까 모든 주제가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성도의 존재 목적=하나님께 영광=하나님의 뜻=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을 드러냄

=성도의 거룩함=고난을 주신 목적=죄인들이 돌아옴 

 

우리가 대단히 잘 나가게 되고, 큰 교회당 짓고,

크게 뭘 해내는 것이 (기독교의 일차적, 근본 목표가 결코) 아닙니다.   

 

 

 

◑1. 복음 전파에 따르는 고난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전파에 따르는 고난>

마태복음 10장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파송하시면서,

제자들이 당할 고난에 대해 구구절절 길고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돈 주머니 가지지 말라.

총독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그것은 도리어 이방인들에게 복음 증거의 기회다. 마10:18, 막13:9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면, 저 동네로 피하라... (이것도 복음 증거의 기회다)

 

예수님은, 거의 10장을 다 할애하다시피, 매우 길게 고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고난은, 복음 전파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내 삶에 지금 고난이 없다면... 복음 전파가 없다는 뜻입니다.

 

▲제자들, 고난을 복음 증거의 기회로 삼다.

실제로 12사도들은, 사도행전에 보면, 관원들과 재판정에 섰으며,

그들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도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벨릭스 총독, 아그립바 왕, 심지어 로마 황제 앞에 서기를 원했습니다.

그 모든 위기를 도리어 <복음 증거의 기회>로 삼았고,

실제로 시위대(고위직) 사람들 중에 결신자를 얻기도 했습니다.

 

역사의 기록에 보면, 초대교회 신자들은 원형경기장에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만 천하에, 사람들이 다 보는데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희롱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일부는 회개했습니다.

고난 앞에 의연한 크리스천들을 보면서, 그들 핍박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그리스도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복음전파는 반드시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고난의 의미>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나는 어떻습니까?

 

 

◑2. 제자를 세우는 데 따르는 고난

 

▲2. 바울 사도는, 제자를 양육하는 데는 남은 고난을 채워야 함을 강조합니다.

골1:24~29절을 읽어보면, 바울은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는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1:28

 

복음을 전파해서, 각 사람을 제자로 성숙시키는 데에는

아비가 자식에게 함 같이,

어머니의 해산하는 수고가

스승으로서 본을 보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일도 거저 쉽게 되는 일은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 나라의 일이, 마귀의 나라를 이겨 승리할 때 비로소 되는 일이

어찌 고난 없이 쉽게 되겠습니까!

 

입술의 고난이 아닙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바울이 ‘내 입술에 채운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입으로 고난 받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육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삶입니다.

 

내 삶으로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 비밀을 전하고 제자들을 양육시키면서

받는 고난을 기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이기적인 피를 쏟아내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귀한 피를 내 안에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이기적인 것을 쏟아 내고

그리스도의 그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난을 기쁨으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사도 바울은 내 스스로는 안 된다. 내가 의지하는 그분이 있다.

그분을 통해서 그 일을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9절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1:29

 

이 얼마나 소망이 되는 메시지입니까? 내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분을 따라 하십시오.

 

여러분 속에 역사하시는 이가 누구십니까?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충만 해서 그 일을 하십시오. 

 

그분을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입니다.

 

▲제자의 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그 목적이 대부분 ‘주님을 통해 큰 득을 보겠다’는 생각이라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부흥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고난의 의미’를 거의 무시하고 살아왔습니다.

 

븍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 건설에는 반드시 고난이 동반됩니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기꺼이 자기 몸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겠다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터넷 설교 편집

 

 

 

◑관련글 

 

▶3▶ 성경의 균형       http://blog.daum.net/bible3/6702807

 

나는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참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은혜, 영광, 복음, 사명, 헌신... 이런 멋있는 단어들 뒤에는

공통적으로 반드시 고난과 짝을 이루어 나온다.

 

은혜고난의 짝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 1:29)

 

영광고난의 짝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복음고난의 짝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

 

사명고난의 짝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사명)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딤후 2:3)

 

 

▶상당히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만약 우리가 은혜, 영광.... 이런 것들만 붙든다면 → 군중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 제자(↔군중)의 삶이란 → 언제나 고난이 함께 따라가는 삶이다.

 

십자가의 복음이란 반드시 고난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내가 십자가를 지려고 할 때

내가 나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할 때

내가 어떤 헌신을 하려고 할 때

그것 때문에 겪어야할 고난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주제별 분류] 고난의 신학, 영광의 신학 http://blog.daum.net/bible3/1386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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